[정진명의 어원상고사] ‘패수’고
[정진명의 어원상고사] ‘패수’고
정진명 시인, 어원을 통한 한국의 고대사 고찰 연재 '47-‘패수’고’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3.08.03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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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각출판사의 영인본 고구려본기 동명왕 부분.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두 나라가 국경을 맞대고 있을 때 그 사이에 흐르는 강이 있다면 양쪽에서 거기에 붙이는 이름은 각기 다를 것입니다. 한국사에서 끝내 풀리지 않은 문제가 바로 ‘패수’입니다. 고구려와 수당이 싸울 때도 살수와 패수라는 이름이 등장하고, 그 이전 고조선에서도 패수는 늘 문제가 되었습니다.

중국 측에서 이 강에 붙인 이름은 요하(遼河)입니다. 조선 측에서는 뭐라고 붙였을까요? ‘패수’라고 붙였습니다. 요하와 패수는 같은 강이라는 말입니다. 문제는 조선 측에서는 문자가 없어 기록하지 못하므로, 자기네 말을 한자로 적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표기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조선’은 ‘박달’입니다. 퉁구스어로는 ‘아사달’이죠. 그러니까 ‘박달, 배달’은 지배층의 언어가 아니라 피지배층의 언어라는 뜻입니다. 지배층인 퉁구스어로는 아사달이라고 했고, 피지배층이 쓰던 그 어떤 토착 언어로는 ‘박달, 배달’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밝’은 뜻을 적기도 하고, 음을 적기도 하였습니다. 소리를 적으면 ‘발(發), 발(潑), 발(勃), 패(浿), 불(沛)’이 됩니다. 발조선(發朝鮮), 발해(渤海), 발해(勃海), 패수(浿水), 불수(沛水). 이와 달리, 경상도 말처럼 기역(ㄱ)이 살아나면 ‘박(朴), 북(北), 박(樸), 박(泊)’으로 적히기도 합니다. 박달(朴達), 박혁거세(朴赫居世), 대박산(大朴山), 우북평(右北平), 북경(北京=北平). 뜻을 적으면 ‘백(白), 적(赤), 홍(紅), 창(蒼), 창(滄), 청(靑)’으로 나타납니다.

‘발’은 ‘ᄇᆞᆰ’에서 기역이 떨어진 것인데, ‘발, 벌, 불, 빌’로 발음됩니다. 이것이 냇물에 붙으면 ‘발물’이 되고, 이것을 한자로 적으면 ‘발수(渤水), 패수(浿水), 불수(沛水)’가 됩니다. 중국 측에서 적으면 ‘발하(渤河)’도 될 텐데, 아직 이 말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바다 이름에 그 자취가 남았습니다. 요동 반도와 산동 반도가 감싸안은 그 안쪽의 바다를 발해(渤海)라고 하는데, 이 말은 ‘발하, 발수가 흘러드는 바다’를 뜻합니다. 황해(黃海)는 ‘황하(黃河)가 흘러드는 바다’를 뜻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입니다.

이렇게 원고를 정리하고, 이책 저책 뒤적거리는데, 반갑게도 ‘발하’가 눈에 띕니다. 『신당서』 고려전에, 고구려가 망한 뒤 겸모잠(鉗牟岑)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근행이 발로하(發盧河)에서 두 번 싸워 만 명가량을 포로로 잡았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백과사전류에서는 겸모잠이 패수에서 싸웠다고 정리한 것으로 보아, 이 ‘발로하’는 ‘패수’가 분명합니다. ‘발수’가 ‘발하’로도 적히고, ‘패수’로도 적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발로하’가 실제로 어디에 있는 강이든, ‘발해’의 연관어임은 확실해졌습니다. ‘로’는 리을(ㄹ) 받침을 따로 적은 향찰표기입니다. ‘낙랑’처럼. 만약에 구당서의 이 말이 지금의 평양에 있는 대동강을 가리킨 말이라면, 이때쯤에 ‘발수’는 ‘발해만’을 떠나서 고구려인들을 따라 한반도로 옮겨왔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중국인들은 발수가 아니라 발하라고 여전히 부른 것입니다.(아니면 이때까지도 고구려는 고조선의 옛 땅인 난하 근처에 있었을 것입니다.)

이 ‘패수, 발수’는 중국의 동쪽에, 조선의 서쪽에 있습니다. 기자조선의 지배층이 쓴 몽골어로 오른쪽(西)은 ‘baragvn’이라고 합니다. ‘바라간’도 ‘밝’과 비슷한 소리입니다. 그래서 우리 땅의 오른쪽에 있는 물줄기라는 뜻으로 ‘패수’라고 적은 것입니다.

이상은 소리로 어원을 추적해본 것입니다. 이제 뜻으로 갑니다. ‘ᄇᆞᆰ’은 ‘밝다, 붉다, 파랗다’로 음운변화를 합니다. ‘밝다’로 일어난 음운변화를 적은 것이 ‘백(白), 적(赤), 홍(紅)’입니다. 난하 옆의 냇물 이름 백하(白河)이고, 요하 문명의 유적지가 늘어선 ‘적봉(赤峰)’과 ‘홍산(紅山)’은 ‘박달’을 적은 것입니다. 산과 봉우리를 뜻하는 말이 몽골어와 퉁구스어로 ‘달(達)’입니다.

홍산문명이 발굴되는 지역의 도시 이름이 적봉과 홍산인데, 언론에서 이 지역의 이름을 두고 설명하는 것을 보면, 이렇습니다. 즉, 그 지역의 흙이 붉은 빛깔을 띄어서 지역 이름에 붉다는 뜻의 ‘적’과 ‘홍’이 붙었다는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지역의 요동 땅 전체가 다 붉지는 않습니다. 이름이 그렇게 된 것은 땅의 빛깔이 붉은 것만이 아니라, 그 지역이 단군의 도읍지인 ‘박달(ᄇᆞᆰᄃᆞᆯ)’이었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아마도 둘 다 해당하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처음엔 땅이 붉어서 그렇게 이름 붙었다가 나중에는 그것이 도읍이나 나라를 가리키는 일반 명사로 굳은 것이라고 봐도 된다는 말입니다.

중국에서 볼 때 ‘패수’는 동쪽에 있습니다. 동쪽은 음양오행설에 따라 색깔로 치면 파랑입니다. ‘파랑’은 ‘팔+앙’의 짜임이고, ‘팔’이 ‘패(浿)’로 적힌 것입니다. ‘팔’과 ‘발’은 중국어에서 같은 소리가 납니다. 이것을 적은 것이 ‘발(渤), 창(蒼), 창(滄), 청(靑)’입니다. 발해(渤海)의 다른 이름이 ‘창해(蒼海), 창해(滄海)’인데, 중국의 동쪽이기에 ‘파란 바다’라고 한 것입니다. 예군 남려가 끌고 온 28만 명을 한나라에서는 연나라와 제나라 사이(燕齊之間)에 두고 이름을 창해군(滄海郡)이라고 붙였습니다. 창해는 발해를 말합니다. ‘파랑’의 어근‘팔’의 소리를 ‘발(渤)로 적고, 뜻을 ‘蒼’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어원으로 보면 창해군은 한반도에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땅도 마찬가지 방식이어서 조선을 예부터 청구(靑丘)라고 했는데, 동쪽의 나라를 뜻하는 말입니다. ‘발해’나 ‘패수’는 중국인들의 평소 버릇대로 붙인 이름입니다. 자신들은 중앙인 노랑으로 표현했죠. 황하(黃河)의 ‘황’도 흙탕물의 뜻이기보다는 중앙의 뜻이 강합니다. 황하가 있는 땅이 중국(中國)입니다. 세상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이 느껴지는 말이죠.

패수는 중국의 외세 확장으로 요하와 더불어 계속 동쪽으로 옮겨갑니다. 그래서 중국 땅에 남은 말이 ‘백하, 발해, 패수, 불수’입니다. 백하(白河) 옆의 조하(潮河)는 심지어 송나라 때 ‘조선하’라고도 불렸답니다. 대릉하는 고대에 ‘백랑수(白狼水)’로도 불렸음은 북조선의 리지린이 입증한 것이라고, 소련의 역사학자 유 엠 부찐은 자신의 저서 『고조선: 역사 고고학적 개요』에서 말합니다. 리지린은 『수경』에 묘사된, 동남쪽으로 꺾이는 물길임을 입증하는 방식으로 증명합니다. 하지만 리지린도 유 엠 부찐도 ‘백랑수’가 ‘발수’라는 사실은 몰랐던 모양입니다. 어원을 모르니 그럴 수밖에 없죠. 어원을 보면 이 둘의 관계는 아주 간단하게 입증됩니다.

‘백랑’은 현대 중국어 발음으로 ‘빠이랑’인데, ‘랑’은 한자음 표기의 반절(反切) 법에서 받침 ‘ㄹ’을 표시한 것입니다. ‘낙랑’도 그렇게 표시된 말입니다. 이렇게 보면 ‘백랑’은 ‘밸’ 또는 ‘밝’을 표시한 것이고, 백랑수는 ‘발수, 발하’가 되는 겁니다. 이게 ‘패수’와 발음이 똑같죠. ‘白(bái)=浿(pái)’. 앞서 보았듯이 ‘수’가 붙은 물줄기 이름들은 조선 쪽에서 붙인 것입니다. ‘대릉하’는 중국에서 붙인 이름이고, ‘백랑수’는 조선에서 붙인 이름입니다. ‘하’에 남은 중국인들의 말버릇과 ‘수’에 남은 조선인들의 말버릇이 만든 차이죠.

‘대릉하’와 ‘백랑수’의 짜임을 잘 비교해보면 더욱 또렷해집니다. ‘大=白’이고, ‘陵=狼’입니다. ‘릉=랑’은 같은 소리이니 볼 것도 없죠. 大는 우리말로 크다는 뜻인 ‘한’이고, 白은 희다는 뜻인 ‘흰, 하얀’입니다. 大와 白은 우리말의 ‘한’을 뜻으로 옮겨적은 것입니다. ‘太白山, 大田, 長白山, 白頭山’ 같은 말에서 이런 자취를 또렷이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大와 白은 ‘한’을 적은 것이고, ‘陵’은 리을(ㄹ) 받침을 적은 것입니다. 합치면 ‘할’이 되죠. ‘할아버지’의 ‘할’은 크다는 뜻의 ‘한’이 변화된 말이고, 전국의 지명에 ‘할티’라는 지명이 많습니다. 높은 재를 뜻하는 말이죠. 대릉하는 ‘할수, 발수’를 적은 향찰표기입니다. 발음은 이렇지만, 뜻은 ‘큰 강물’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지명들은 모두 조선이 동쪽으로 옮겨가면서 여기저기에 남겨놓은 자취입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직후에 당나라에서 신라까지도 직접 지배하려고 수작을 부립니다. 그래서 한판 전쟁이 벌어지는데, 당나라가 견디지 못하죠. 그래서 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국경을 ‘호로하’에서 ‘철관성’까지 정하여 합의를 봅니다.(『구당서』) 이제 좀 보이시나요? 아직도 안 보이는 것은 역사의 장님이기 때문입니다. 철관성은 랴오닝성에 지금도 ‘철령’이라는 도시 이름으로 쓰입니다. 원명 교체기에 철령위를 설치한 그 ‘철령’입니다.

‘호로하’. 이것을 어떤 한자로 표기하든 ‘ᄒᆞᄅᆞ하, ᄒᆞᆯ하, 할하’입니다. 조선어 ‘할수’를 중국어식(河<水)으로 표기한 것이죠. 그러니 앞서 살펴본 대로 ‘호로하=대릉하’의 등식이 성립합니다. 문제는 대릉하가 한반도가 아닌 발해만에 있다는 거죠. 그렇다면 통일신라도 발해만 근처까지 와서 고구려의 옛 땅을 통째로 먹으려 당나라와 한판 싸움을 하다가 당나라의 양보로 대릉하를 경계로 삼았는데, 해동성국 발해가 일어나 고구려의 옛 영토를 회복하자, 하는 수 없이 한반도로 철수한 게 아닐까요? 그리하여 이른바 ‘남북국시대’가 열리는데, 역사학계에서는 뭐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어원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대릉하=백랑수=호로하’가 성립한다면 ‘패수=발로하=요하’가 될 것입니다. 『당서』의 ‘호로하’와 ‘발로하’를 굳이 한반도 안에서 찾아야겠나 싶습니다.

‘대릉하=할수’를 아직도 못 믿겠다는 놈들을 위해서 돌주먹으로 턱주가리를 한 대 날려드리지요. 대릉하를 우리말로 달리 적으면 또 ‘한수’가 됩니다. 한강을 백제 때는 ‘한수(漢水)’라고 불렀죠. 이제 패수 한강설이 또 등장하겠네요. 하하하. ‘한’이 또 왜 ‘발’이냐고요? 크다는 뜻의 ‘한’은 ‘해’에서 나온 말입니다. ‘환하다’ 같은 말이죠. ‘환하다’와 ‘밝다’는 우리말에서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한’과 ‘밝’은 호환성이 짙다는 말입니다. 白과 大와 渤(浿)은 같은 말입니다. 그것을 ‘한’이라고 읽었느냐 ‘발’이라고 읽었느냐는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말이죠. 이래도 못 믿겠죠? 안 믿으려 드는 놈을 설득할 방법은 없습니다. 혜성이 지구와 충돌한다는 증거를 대도, 정치공작이라고 떠드는 게 사람입니다.

한국 사학계의 패수는 청천강입니다. ‘패수=청천강’은 맞는 말입니다. 청천강의 이름이 ‘청천(靑川)’인 것은, ‘청구(靑丘)’와 똑같은 이유입니다. 소리로 적은 ‘패수’를 뜻으로 번역한 것이 ‘청천’입니다. 하지만 이 ‘패수’는 발해만 근처에 있던 고조선의 평양(박달)이 한반도로 옮겨오면서 따라온 말이죠. 발해만 근처에 있을 때는 강 이름도 ‘발해’와 어울리는 ‘패수’가 적당했는데, 발해를 떠나자 ‘패수’라는 말이 짝을 잃고 어색해져서 저절로 ‘청구’와 짝을 이루는 ‘청천’으로 번역된 말을 쓰게 된 것입니다.

음운변화 과정에서 첫소리 ‘p, b’는 ‘f’를 거쳐서 탈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변화과정이 지명에 반영되면 일목요연한 질서를 보이며 나타납니다. ‘패수, 발수’의 ‘발, 팔’에서 피읍과 비읍이 ‘f’로 변하면 ‘할수, 호로하’의 ‘ᄒᆞᆯ, ᄒᆞᄅᆞ’가 되고, ‘f’가 약화되어 떨어져 나가면 ‘ᄋᆞᆯ, ᄋᆞᄅᆞ’가 됩니다. 이래서 ‘아리수’가 되는데, 이것을 ‘알’로 인식하면 압자(鴨子)로 기록됩니다. 압자는 ‘새 새끼’의 뜻이고, 새가 낳은 새끼는 새의 알입니다. ‘새알(鴨子)’이죠. 압록강이나 압자하 같은 말들은 이런 과정에서 나타난 지명입니다. ‘알’은 알타이 제어에서 황금을 뜻합니다. 그래서 황금을 뜻하는 말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여진어로 황금은 ‘안춘’인데, 이것이 ‘안출호, 안출수, 엄체수, 시엄수’ 같은 말로 표기되는 것이죠. 요동과 만주에서 보이는 여러 물줄기 이름이나 지명은 이런 연관성을 지닙니다.

‘패수’(조선어)는 ‘요하’(중국어)와 함께 황하 옆의 영정하에서부터 시작하여 만리장성 밖 동쪽으로 점차 밀려온 이름입니다. 그러니 패수를 청천강 한 곳에 못 박는 것은 서울 사는 김 씨와 부산 사는 김 씨를 혼동하고 같은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바보들이나 그런 소리를 하는 겁니다.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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