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서울 한복판 500년 전 조선과 만나다
2011년 서울 한복판 500년 전 조선과 만나다
공감만세와 함께하는 서울 북촌으로의 공정여행
  • 이선희
  • 승인 2012.07.11 14: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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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마당 안에 있는 수령 600년 된 재동백송.

사람 사는 곳 어디든 역사와 이야기는 존재한다. 그것만으로도 공간은 지켜져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 북촌은 그런 의미에서 큰 가치를 지닌 공간이다. 북촌 어디든 역사가 아닌 곳, 이야기가 없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누구의 집터, 어떠한 일이 일어난 곳. 북촌을 거닐다보면 무수히 많은 표지판과 안내문을 볼 수 있다. 무심코 지나쳐버릴 수도 있지만 표지판을 들여다보고 그 속에 담긴 정보 속에서 이야기를 상상해 보는 것은 북촌을 여행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북촌 계동길 끝에는 이러한 여행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재가 하나 있다. 바로 중앙고등학교 교문 뒤에 서 있는 수령 500년 된 은행나무이다.

보호수 제 512호 지정된 나무 앞에 있는 표지판에 따르면 ‘이조 초기부터 자라온 이 은행나무는 이 고장의 수호신으로 숭앙되었기에 매년 가을이면 이곳에 오곡백과를 차려놓고 은혜에 감사하고 소원을 기원했다’고 한다. 이조 초기부터 자랐다니 그야말로 조선의 500년 역사를 품고 있는 나무인 것이다.

중앙고 교문 뒤 서있는 은행나무와 수령 600년 된 헌법재판소 재동백송
한 자리서 묵묵히 역사 지켜본 산증인

중앙고등학교는 학교 자체로도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100년이라는 세월을 지나오면서 겪었을 무수한 이야기 중에 가장 의미 있는 일이 3·1운동이 바로 이곳, 중앙고등학교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학교 교정 동쪽 언덕 밑에 서 있는 3·1운동 책원비에는 ‘1919년 중앙고등학교 교장이던 송진우, 김성수, 그리고 교사이던 현상윤 등이 이 학교 숙직실에 모여 독립운동에 필요한 독립선언문 작성 등 3·1운동 계획을 세우던 곳’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동쪽 언덕 위에 서 있는 강당을 지나 좀 더 가면 기와로 지붕을 올린 한 채의 작은 건물을 볼 수 있는데 ‘三一紀念館(삼일기념관)’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이 건물이 바로 당시의 중앙고보 숙직실이다.

500년 된 은행나무 앞에 서서 계동길을 내려다보며 이 길을 따라 탑골공원까지 나라의 독립을 품에 안고 달렸을 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중앙고등학교 교문 뒤에 서 있는 수령 500년 된 은행나무.

지금은 이 길을 따라 수많은 관광객들이 올라온다.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일본인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들르는 필수 코스인 것이다. 학교 앞 문구점에서는 학용품 대신 한류 스타들의 사진을 판매하고 있다. 관광 상품 앞에 우리의 역사가 가려지는 것이 못내 아쉽다.

중앙고등학교 은행나무 못지않게 오랜 역사를 지켜본 또 한 그루의 나무가 있다. 바로 헌법재판소 구내에 있는 재동백송이다. 건물이 주는 위압적인 분위기 때문에 감히 구내에 들어갈 생각을 못할 수도 있지만, 입구에 있는 안내소에 재동백송을 보러 왔다고 말하면 쉽게 들어갈 수 있다.
헌법재판소 건물 오른편으로 돌아가면 수령이 600년이나 되었다고 하는 재동백송을 만날 수 있다. 이 나무가 지켜본 역사는 얼마나 깊을까.

풍양 조씨 신정왕후 조 대비의 친정 집터, 연암 박지원의 손자이자 개화파의 스승이라 불리었던 환재 박규수의 집터, 1880년대 외교통상 사무를 관장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던 외아문(外衙門)이 있던 곳,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광혜원(후에 제중원으로 이름이 바뀌었음)이 세워졌던 곳, 이밖에도 민영익, 홍영식, 이상재, 최린의 집터가 백송을 둘러싸고 근방에 위치해 있었다 하고 헌법재판소가 들어서기 바로 전에는 경기여자고등학교를 거쳐 창덕여자고등학교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철 기둥에 의지해 서 있기는 하나 백송이 뿜어내는 위엄은 대단하다.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공간이 드나드는 것을 모두 지켜본 백송은 헌법재판소가 제 옆에 들어서는 것을 환영했을까?
얼마 전에는 박규수의 집터를 표시하는 표지석 앞에 테니스장이 들어서기까지 했다. 한 나라의 역사를 품고 있는 자리에 굳이 테니스장을 만들었어야만 했는지. 백송의 심기가 불편하지는 않았나 하는 걱정을 해 본다.

1919년 독립선언문 작성 등 3·1운동 계획이 세워진 중앙고보(현재의 중앙고등학교) 숙직실. 지금은 ‘三一紀念館(삼일기념관)’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공간의 모습이 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테다. 하지만 변화가 필요한 때가 오면 적어도 공간이 지니는 가치를 진지하게 검토해보았으면 좋겠다.
북촌은 관광명소이기 이전에 우리나라의 역사를 품은 곳이다. 역사는 흘러가면 되돌릴 수 없지 않은가. 북촌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 북촌의 내일을 가꿔야 할 것이다. 거기에는 북촌 주민들, 북촌의 행정을 담당하는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북촌을 보러 가는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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