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어원상고사] 어원 역사 논의의 뒷목
[정진명의 어원상고사] 어원 역사 논의의 뒷목
정진명 시인, 어원을 통한 한국의 고대사 고찰 연재 '64-논의의 뒷목’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3.12.07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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윷가락.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윷가락.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에 떨어진 나락 따위를 ‘뒷목’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짧은 지식으로 이런저런 시비분별을 해왔는데, 그 와중에 미처 못 다룬 내용 몇 가지가 있어서 이렇게 뒷목으로 정리해둡니다.

①금과 김

‘金’을 읽는 소리는 ‘금’과 ‘김’ 두 가지입니다. 보통 쇠를 뜻하는 말로 쓸 때는 ‘금’이라고 읽고, 성씨를 뜻하는 말로 쓸 때는 ‘김’이라고 읽습니다. 이것은 성씨로 읽을 때의 특수성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이에 대한 설명은 아주 그럴 듯하여 반박의 여지가 없는 듯이 인터넷 여러 곳에 자리 잡았습니다. 설명은 이렇습니다.

이성계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웠습니다. 당연히 자신의 왕국을 무너뜨릴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이 일지요. 누구일까요? 당연히 왕 씨이어야 하지 않나요? 이에 위협을 느낀 왕 씨들이 점을 하나 더 찍어서 옥(玉) 씨가 되고, 위에다가 지붕을 씌워서 전(全) 씨로 바꾸었다는 설화도 있기는 합니다만, 민간어원설일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날벼락을 맞은 성 씨가 또 하나 있습니다. 김 씨입니다. 음양오행론에 따른 상극의관계로 설명됩니다. 즉, 조선을 세운 이(李) 씨는 나무(木)이니, 나무를 극하는 것이 금(金)이어서 금 씨들에 대한 탄압이 예상되었고, 이를 피하려고 ‘금’이라고 하지 않고 ‘김’이라고 바꿔 불렀다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것은 어이없는 궤변으로 만들어진 민간어원설입니다. 발음을 바꾼다고 해서 쇠가 쇠 아닌 것으로 달라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오행의 상생상극은 발음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대상의 실체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것은 설명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한 마구잡이식 풀이에 불과합니다. 이런 논리를 그럴듯하다고 여기는 역사학계의 수준이 한심합니다.

‘금’과 ‘김’은 우리나라 지명을 보면 또렷이 구분됩니다. 한국전쟁 말기에 남북이 다투었던 김화 지역 전투는 유명합니다. ‘金化’를 이곳에서는 금화와 김화라고 둘 다 읽습니다. 대체로 한강 언저리를 경계로 해서 그 위쪽은 ‘금’이라고 읽고, 그 아래쪽은 ‘김’이라고 읽습니다. 위의 오행론에 기대면 이런 현상도 조선 시대가 열리면서 나타난 것이라고 봐야 할 텐데, 누가 봐도 이건 무리죠. 그 전부터 한강 이남에서는 ‘김’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金’을 달리 읽는 이 기이한 현상의 원인은 가락국입니다. 가락국 김수로왕은 인도 드라비다에서 온 사람입니다. 이들이 낙동강 하구에 다다라서 나라를 세우고 세력을 확장하여 경상도 지역을 거의 다 차지합니다. 바로 이들의 언어 즉 드라비다어에서 금(金)을 ‘cinna’라고 합니다. ‘알’도 ‘cinai’라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김수로왕은 황금알에서 태어납니다. 이런 것을 한 발음으로 하면 ‘신, 친’쯤이 되겠지요. 그래서 그것을 한자로 빌어 적으면 ‘진국(辰國)’이 됩니다. 이 진국을 삼한의 하나로 표기할 때 ‘진한’이 되는 것입니다. 김수로왕이 세운 가야가 금관국(金官國)인데, 이것을 드라비다인들이 ‘금’이라고 읽지는 않았을 겁니다. ‘신’이나 ‘진’, 또는 ‘친’쯤으로 읽었을 것입니다. 여기에 중국에서 막 들어온 한자음 ‘금’이 결합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게 바로 ‘김’입니다.

한강 이남에서 ‘金’을 ‘김’이라 읽은 버릇은, 가락국의 영향입니다. 쇠를 수출하여 막강한 왕국을 이루었던 가락국의 말이 중국 측으로부터 밀려드는 말의 소리를 바꾼 것입니다. 그것이 한강 이남에서 ‘김’이라고 발음되는 까닭입니다. 이 소리값은 오직 우리나라에만 있습니다. 강원도 금화 지역은 가락국의 영향이 미친 북한계선일 것입니다. 그래서 금화와 김화가 둘 다 쓰인 것이죠.

② 황금과 쇠

가락국에서 쓴 드라비다어로 금(金)을 ‘cinna’라고 했고, 이에 따라 나라 이름도 ‘진국(辰國)’이라고 했다면, 이 말뜻은 ‘황금의 나라’입니다. 조금 더 훗날의 이야기지만, 이런 점을 감안하면 쉽게 풀리는 문제가 있습니다. 즉, 신라를 다녀간 서역 상인들이 묘사하기를, 신라는 길거리에 황금으로 가득 찼고, 황금이 길바닥에 떨어져 있어도 아무도 주워가지 않는다고 기록했습니다. 실제 사실이기보다는 나라 이름이 주는 이미지를 적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 말에서 이상한 건 또 있습니다. 우리말에는 골드(황금)와 아이언(쇠)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금덩어리’라고 하면, 골드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쇠와 골드를 구분할 때 기껏 앞에 색깔을 뜻하는 말을 덧붙입니다. ‘황’은 노랗다는 뜻이죠. 골드는 ‘노란 쇠’이고, 아이언은 그냥 ‘쇠’입니다. 이것은 쇠가 청동에서 철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입니다. 청동은 노랑에 가깝습니다. 녹이 슬어서 청이 된 것입니다. 불에 녹는 온도를 보면 황금, 구리, 쇠 순입니다. 제련하기에 편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골드는 무르기 때문에 장식용으로나 쓰입니다. 높은 신분을 나타내는 데 쓰일 각종 치레 거리를 만들기 때문에 값이 비싸죠. 그래서 황금은 비싼 것을 나타내는 말로 자리 잡았습니다.

가락국의 상황을 보면 우리말에서 골드와 아이언이 구분되지 않는 까닭을 알 수 있습니다. 김수로왕은 인도 드라비다 출신이고, 이들이 한반도에 가져온 축복은 2가지였습니다. 벼농사와 제련법이죠. 가락국은 이 두 가지 기술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지역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며 쉽게 여섯이나 되는 작은 왕국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가락국이 백제나 신라와 현저히 다른 특징은, 이들이 상업을 국가의 부를 창출하는 방법으로 생각했고, 나라의 세력을 육지로 확장한 것이 아니라 바다로 넓혔다는 것입니다. 그 기반이 되는 것이 바로 제철 제련입니다. 가야인들이 쇠를 다루는 기술은 다른 민족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이들은 각종 도구를 만들기 좋게 쇠를 일정한 크기로 만들어서(鐵釘) 팔았습니다. 한반도 내의 모든 부족은 물론이고, 바다 건너 왜에서도 이들의 쇠를 최상품으로 여기고 비싸게 사 갔습니다. 가락국은 쇠를 통해서 어마어마한 부를 이룬 나라입니다.

황금은 장식용으로 필요한 것이지만, 쇠는 생활 도구를 만드는 데 필요합니다. 그 쇠를 팔아서 만든 부는, 결국 왕족과 귀족의 사치품인 황금을 낳게 됩니다. 굳이 쇠와 황금이 구분될 필요가 없는 것이죠. 가야인들에게 쇠는 곧 황금이었던 셈입니다. 골드와 아이언이 굳이 구별될 필요 없는 세상이 가락국이었고, 이들의 이런 언어 습관이 현재의 우리에게도 이어져 쇠와 황금을 구분하지 못하는 버릇을 남겨놓았습니다.

앞서 말한 청동기 또한 이런 경향을 부추겼다고 봅니다. 청동을 우리 말로는 ‘놋쇠’라고 합니다. ‘놋’은 노랑을 뜻하는 말입니다. 불에 달아서 일그러지는 것을 ‘눌다’라고 하는데, 원형은 ‘눋다’입니다. 노랗게 변한다는 뜻이죠. 이 ‘눋’이 ‘놋’으로 바뀐 것입니다. 어떤 것이 불로 누를 때에 색이 노랗게 변하지요. 이런 현상 때문에 쇠에 ‘놋’이 붙어서 ‘놋쇠’가 된 것인데, 원래는 그냥 쇠였다가, 철이 나오면서 그것과 구별하려고 ‘놋’을 덧붙인 것이겠지요. 놋쇠.

③윷놀이

신채호가 부여의 4출도를 상징한 것으로 본 윷놀이에 관해서도 한마디하고 가겠습니다. 부여는 지배세력이 모두 다섯이었고, 이들의 회의를 통해서 중대사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나라가 운영되었으며, 중앙의 왕을 제외한 벼슬 이름이 있었습니다. 마가(馬加), 우가(牛加), 저가(猪加), 구가(狗加)가 그것이죠. ‘加’는 유목민족에게 공통으로 임금이나 우두머리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 말 앞에 짐승 이름이 붙었습니다. 윷말과 똑같죠.

윷놀이는 ‘놀이’이고, ‘윷’은 형식입니다. 윷가락 넷을 던져서 엎고 잦힌 상태로 숫자를 셈하여 말을 태우는 놀이이죠. 이것을 역사 현상의 근거로 본다는 것은 참신한 발상이기는 하지만 위험성도 뒤따릅니다. 현재로서는 신채호의 주장을 부인할 만한 근거도 인정할 만한 자료도 없어서 일단 다양한 가설 중의 하나로 남겨두고 숙제를 풀어가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윷놀이에 대한 정설은 ‘윷’을 ‘쇼’의 변화된 형태로 보는 것입니다. 즉 ‘쇼>ᅀᅭ>유’의 진행으로 보고, 뒤의 ‘놀이’ 때문에 사이시옷이 붙어서 ‘윷놀이’가 되었다는 것이죠. 윷말의 이름이 ‘도, 개, 걸, 윷, 모’여서 ‘윷’은 우리에게 친근한 가축인 ‘소’의 변형이라고 저절로 유추하게 된 것입니다. ‘소’의 시옷이 떨어지는 것은 낯설지 않습니다. ‘외양간’의 ‘외’가 ‘쇠’입니다.

터키어로는 ‘윷’을 ‘öč’라고 하여 거의 같고, 만주어로는 ‘주사위’를 ‘dʒǝu-tsï’라고 하는데, 이것이 ‘ᅀᅲᆾ’으로 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놀이의 성격으로 보면 같은 형식에서 찾아보는 것이 가장 좋은데, 이 경우가 매우 합당하죠. 게다가 몽골어로 ‘가축’은 ‘mal’이어서 ‘윷말’의 ‘말’에 적당합니다. 따라서 윷놀이는 유목민족의 특성이 많이 반영된 놀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목 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놀이인 만큼 말도 여러 겨레의 말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지금의 ‘도, 개, 걸, 윷, 모’로 자리 잡은 것이 아닌가 추정됩니다. ‘도’는 ‘돝, 중톳, 도야지, 돼지(豚)’임을 금방 알 수 있고, ‘개’는 ‘가히(犬)’인 것도 보이죠. ‘걸’은 드라비다어로 ‘가축’을 ‘kāli’라고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윷’은 터키어로 ‘sigïr’이 ‘소’여서 우리의 옛 기록 ‘쇼’와 비슷함을 볼 수 있습니다. ‘모’는 몽골어로 ‘말’이 ‘mori’여서 한눈에 봐도 닮았습니다. 문제는 이 윷말을 가리키는 말에 드라비다어, 몽골어, 우리말이 뒤범벅되었다는 것입니다. 일관성이 조금 부족하다는 뜻이죠. 

이런 점에서 언어 계열의 일관성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오히려 숫자를 나타낸 말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터키어가 그 일관성을 보여줍니다. 도(tek, 單一), 개(iki, 2), 걸(güč, 3), 윷(dört. 4), 모(beš, 5)와 정확히 대응합니다. ‘걸’은 몽골어와 더 정확히 대응합니다. 몽골어로 ‘3’은 ‘gur-ban’입니다.

윷놀이는 정말 뿌리 깊은 민속놀이입니다. 유구한 세월 속에서 우리 겨레가 이어온 풍속이라는 점에서 역사와 깊은 연관을 맺었습니다. 사실이 어떻든 신채호가 무의식에 깃든 윷놀이의 틀을 통해서 부여의 통치구조를 밝혀보려고 했던 노력은 실로 감탄과 존경을 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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