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하준의 직설] 자수성가는 없다
[조하준의 직설] 자수성가는 없다
지나친 능력주의 신봉 풍조가 천민자본주의를 낳는다
  • 조하준 기자
  • 승인 2023.12.08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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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인국공 사태 당시 20대들의 반응.(출처 : KBS 뉴스 영상 갈무리/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소위 인국공 사태 당시 20대들의 반응.(출처 : KBS 뉴스 영상 갈무리/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아마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자기개발서라는 책을 읽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필자 또한 20대 때는 자기개발서를 탐독했다. 직접 사서도 읽었고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은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군가가 나에게 추천할 만한 자기개발서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 책 자체를 읽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그 이유는 자기개발서에 담긴 문제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를 꼽는다면 지나친 ‘능력주의’ 신봉이 아닐까 싶다. 문재인 정부 치세였던 2019년 소위 조국 사태라는 것이 발생한 후 한국 사회의 주된 담론 중 하나로 떠오른 것이 ‘공정’이었다. 당시 대학생들은 조국 전 장관 일가를 보고 ‘불공정’에 대한 분노를 느꼈다며 온갖 집회를 열곤 했다.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그 때 집회를 열었던 대학생들 중에 김건희 여사의 논문 표절에 대해 분노를 표하며 집회를 연 사실이 있었던가? 조국 전 장관의 자녀가 ‘불공정’한 입시 혜택을 받았다면 김건희 여사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김건희 여사가 그 표절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면 누군가는 준수한 논문을 쓰고 심사에서 탈락해 학위를 받지 못했을 테니 ‘불공정’한 것은 매한가지다.

또 그 20대들은 인천국제공항공사 보안요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서도 ‘불공정’을 입에 올렸다. 그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정당한’ 시험을 치르지 않고 ‘특혜’를 봤다는 뜻에서였다. 이렇게 입만 열면 불공정을 운운하던 그들은 결국 ‘공정과 상식’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윤석열 후보를 열성적으로 지지했다. 그런데 지금 윤석열 정부의 행태가 과연 ‘공정과 상식’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지 그들에게 한 번 묻고 싶다.

이런 공정 담론이 오르게 된 계기 또한 20대들에게 만연한 능력주의 신봉에 있다고 본다. 어떻게 보면 이들의 능력주의 신봉 태도는 반동적이고 퇴행적이기까지 해서 한 세대 선배의 입장에서 보면 좀 무서울 정도다. 대부분의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조금이라도 능력주의에 대해 비판할 경우 엄청난 비추천 세례와 비난이 쏟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능력주의에 찌든 20대들을 향해 '공정충'이란 멸칭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 이들이 능력주의에 경도된 원인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지(智), 덕(德), 체(體)가 실종된 채 입시 위주의 교육만 반복하는 교육 시스템이 원인일 것 같다. 입시 위주의 교육은 학생들을 ‘시험’ 이외엔 다른 것을 보지도 생각하지도 못하는 기계로 만들고 있다. 두 번째는 20대들에게 인기가 많은 자기개발서와 자수성가(自手成家) 숭상 풍조에 있다고 본다.

한국 사회에선 자수성가를 한 사람을 높이 치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으로 현대의 왕회장이라 불린 故 정주영을 ‘자수성가의 표본’처럼 내세우며 배워야할 위인처럼 모시는 것이 있다. 자기개발서 또한 이런 자수성가한 사람들을 높이 추켜세우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노력을 통해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지적했듯이 필자 또한 나이가 들면서 “자수성가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정주영 회장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크게 성공한 사람이었던 것은 맞다. 그러나 현대라는 굴지의 기업을 일궈낸 것이 오로지 정주영 한 사람이 이뤄낸 업적이었을까? 또 그가 ‘현대그룹 회장’ 소리를 듣는 동안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았을까?

절대 그럴 리 없다. 정주영 회장 역시 젊은 시절 수없이 많은 사업실패를 겪었던 사람이었다. 그가 일제 강점기 시절 서울 마포구에 아도 서비스(ART SERVICE)라는 자동차 수리공장을 운영했을 때 화재가 발생해 건물과 수리 중인 자동차들이 전소해 버린 일이 발생했다. 당연히 이로 인해 막대한 빚을 짊어지게 됐는데 그 때 후원자 한 사람이 정주영을 눈여겨 보고 거금을 빌려준 덕에 재기할 수 있었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지만 만약 이 때 어느 누구도 정주영을 돕지 않았더라면 과연 ‘현대그룹 왕회장 정주영’이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필자가 이 이야기를 한 것은 그 자수성가한 사람들도 알게 모르게 남의 도움을 받아서 그 자리에 올랐던 것이지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그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란 걸 말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필자는 ‘자수성가’란 말을 믿지 않는다.

또 소위 자수성가한 사람들 중에선 그다지 본받을 만한 위인이 없다. 오히려 자수성가한 사람들 중에 천민자본가가 더 많다. 가까운 예로 이명박 씨가 있을 것이다. 그 역시도 정주영 회장처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를 축적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다스 실소유주 논란 및 사자방 비리 그리고 관련자들의 전언 등을 통해 볼 수 있듯이 돈을 품위 없게 벌었고 품위 없게 쓰는 천민자본가였다.

자살 기업으로 악명 높은 대만의 애플 하청기업 폭스콘의 모습. 비인간적인 노동 환경으로 인해 자살하는 노동자들이 속출하자 환경 개선은커녕 그물망 설치를 자살 방지 대책이라고 내놓았다.(사진 출처 : 나무위키)
자살 기업으로 악명 높은 대만의 애플 하청기업 폭스콘의 모습. 비인간적인 노동 환경으로 인해 자살하는 노동자들이 속출하자 환경 개선은커녕 그물망 설치를 자살 방지 대책이라고 내놓았다.(사진 출처 : 나무위키)

그리고 대만의 폭스콘(Foxconn)이란 기업의 회장인 곽태명(郭台銘)도 이 예시에 부합하는 인물이다. 그 역시도 자수성가로 그 자리에 올랐다고 알려진 인물인데 문제는 그의 회사 폭스콘은 비인간적인 노동 환경으로 인해 자살자가 속출했던 ‘자살 기업’이란 것이다. 그러나 곽태명은 그런 비인간적인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는커녕 “인간의 몸은 그 정도로 부서지지 않는다. 내가 그 증거다”고 했다.

이들이 이런 모습을 보인 이유는 소위 자수성가했다는 사람들이 자신의 성공에 취해 타인에게도 자신만의 방식을 강요하며 타인을 멸시하는 독선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젊었을 때 가난함을 트라우마로 여겨 더욱 돈에 집착하는 수전노(守錢奴)가 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나친 자수성가 숭상 풍조는 도리어 천민자본주의를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그리고 이런 자수성가 숭상 풍조를 더욱 심화시키는 것이 자기개발서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많은 자기개발서에 담긴 가장 큰 문제점은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고 있고 해결책으로 정신력 또는 의지, 사고의 전환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문제의 크기가 거대한데도 정작 문제의 원인을 보는 관점이 작아지고 있으며 문제는 문제대로 악화되고 있다. 결국 독자가 강해져서 사회의 부조리를 통과하고 '혼자서 오롯이' 성공하라는 내용에 불과하다.

그러나 아무리 정신력이 강하고 의지가 투철하다고 해서 가난한 집안에서 떨치고 일어나 부유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앞서 말했듯이 자수성가의 표본으로 꼽히는 그 현대의 왕회장 정주영도 은인의 도움을 받았다. 그 은인이 없었다면 오늘날 현대의 왕회장은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많은 사람들이 거리의 노숙자들을 보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삶의 의지도 없고 벗어날 노력도 하지 않는 인생의 패배자 더 심하면 인간쓰레기들로 멸시하는 경향이 강한 것이 현대 사회의 모습이다. 필자 또한 20대까지만 해도 노숙자들을 그렇게 바라보며 살았다.

하지만 노숙자들에 대한 탐사 보도 방송을 보고 얼마나 잘못된 생각을 했는지 깨달았다. 노숙자들이 처음부터 “난 오늘부터 노숙을 할 거야!”라고 거리에 앉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들도 나름의 사연이 있어서 그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이다. 필자가 본 방송에 나온 노숙자 중에는 과거 중소기업 사장이었던 사람도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 사람도 한 때는 ‘사장님’ 소리 듣던 사람이었고 잘 나가던 시절엔 노숙자들을 멸시하곤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날 사업에 실패했고 눈을 떠보니 자신도 그토록 무시했던 노숙자가 돼 있었노라고 했다. 달리 말하면 누구나 삐끗하면 노숙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노숙자들이 현재의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개인의 노력이 미약해서라기보다는 노숙자들에 대해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사회적 풍조가 더 클 가능성이 높다. 노숙자들을 향해 “사지육신 멀쩡하면서 일할 생각도 안 하는 놈”이라고 욕하면서 정작 그 노숙자들이 일자리를 구하려 하면 뽑아주질 않는데 과연 어느 노숙자가 마음 고쳐먹고 제대로 살아보려 할까?

이렇듯 개인의 노력과 의지가 아무리 충만하다고 한들 사회 구조의 한계로 인해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지점이 있지만 대부분의 자기개발서는 그저 개인의 노력과 의지만을 강조한다. 이런 책을 탐독하다 보면 결국 소위 ‘인생의 실패자’라 불리는 사람들을 더욱 노력과 의지가 부족한 사람으로 매도하는 사고를 가지게 된다.

더 나아가면 가난에 허덕이는 후진국들 사람들 또한 노력과 의지가 부족한 사람으로 매도하는 사고를 낳게 된다. 실제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어른들이 가진 주된 편견 중 하나가 “열대지방 사람들이 게으르다”는 것이었다. 더운 날씨 때문에 사람들이 열심히 일을 하지 않아 게으르고 그래서 나라가 가난하다는 것이다.

실제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은 아프리카나 동남아, 중남미 등 열대지방에 많이 분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과연 여기 속한 나라들이 가난에 허덕이고 경제 발전이 정체된 이유가 정말 그 사람들이 게을러서였을까? 그렇지 않다. 이들이 가난에 허덕이는 이유 또한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더 크다.

필자가 자기개발서 구독을 끊으라고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천민자본주의를 더욱 심화시킬 우려가 있고 또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돌리는 경향을 야기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병행해야 할 것이 자수성가를 숭상하는 지나친 능력주의 신봉 풍조를 개선해나가는 것이다.

어차피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는 동물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 우리 집엔 붓글씨로 ‘더불어 숲’이라고 쓰인 족자가 하나 있었다. 그 말이 맞다. 나무가 모여서 숲이 되듯이 사람이 모여서 사회가 이뤄지고 국가가 이뤄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잘 살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 현대 사회가 풀어나가야 할 일이다. 소위 사회자본주의이다.

이 사회자본주의의 최대 적이 바로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천민자본주의이고 천민자본주의는 반드시 없어져야 할 적폐라 할 수 있다. 천민자본주의를 없애려면 먼저 능력주의 신봉 풍조부터 없어져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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