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설화(雪花) ⑳
[연재소설] 설화(雪花) ⑳
  • 유석
  • 승인 2015.07.15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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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유석 김종보] 그때마다 지수에게 여자를 붙혀주어 미란에게 정을 떼도록 만들어주고도 싶었으나 성격이 받아들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무작정 행동에 들어 갈수도 없었다. 미란이 하는 짓을 봐서는 당장에라도 그렇게 해서라도 보란 듯이 살게 하고 싶었지만 미리 앞서가다 자칫 더 큰 화를 초래할 것만 같아 생각을 접게 되었던 것이다.

미란은 여전히 변명으로 맞섰다. 무능력한 남자 때문에 환경의 지배를 받다보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특히 재혼녀 에게는 그럴 수밖에 없다며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상황 따라 돈의 색깔을 구별해 들어주고 거절하는, 한마디로 달면 삼키고 쓰며 뱉어버리는 꾼의 여자였다.
홧김에 서방질 한다고 지수가 어디 가서 계집질 하고 다닌다면 그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되묻자 입을 다물었다.

또 한 번 실패한 재혼남의 인생은 너무나 가혹했다. 그럼에도 그녀 역시 두 번째 남자를 가치 없다며 마구 흔들어 내치다가도 자기 입맛대로 주워 맞추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지수는 지금까지 당해오면서 깊게 패인 상처가 아려오자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만 싶었다.
미란은 한동안 말이 없다가도 더 이상 주점에 나간다는 자체가 명분이 서질 않게 되자 어떤 술수를 써야만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다희 아빠가 나하고는 살지도 않을 테고… 또 말한다고 하지 말고 나 전세방 보증금이나 해줘!”
그 버릇은 두었다 봐도 여전했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식이었다. 금희는 또 한 번 홍두깨를 맞는 기분이다 보니 기가 막혔다.
숯검댕이가 되어버린 가슴팎에 밝은 창문은커녕 여전히 끝없는 터널 속에 갇혀 어느 쪽으로 빠져 나가야 할지 기약 없는 나날들이 진흙 벌에 빠져 헤어날 수 없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세상의 모든 일이 끝이 있다 했어도 언제까지 자신 앞에서 버티고 있는 가혹한 운명의 놀음에서 벗어나야 할지 몰라 그녀 역시 생의 욕질만 넋두리처럼 해대고 있었다.
차라리 순탄한 가정에서 권태기에 오는 현상이라면 이해 할 수 있었다. 냉기가 철철 흐르는 사랑의 협착증에 걸려 멈춰 버렸다 해도 차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지난 날 타다 남은 그 사랑을 불태우고자 만났던 악처에게 철저하게 다파먹히다보니 처참한 몰골은 마치 흩어진 강정부스러기 같았고 단물을 빨아먹고 거리에 내 버려진 나무젓가락 같은 인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금희가 터져 나가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요즘 세태가 그러한데도 지나칠 정도로 확고하고 완벽한 사랑만을 고집하는 그 자체가 더 이상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시대에 뒤쳐져 살고 있는 그를 향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었다고 치부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남들처럼 다른 여자를 만나 단 며칠이고 한 달이고 진정한 사랑을 나누면서 덧없이 흘러가는 자신의 행복을 찾아 주기만을 바랐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지금 세상이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돌연변이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이 보면 볼수록 철부지처럼 보였다. 세상에 그런 남자는 더 이상 없을 것 이라는 생각에 이것저것 신경쓰지 않고 홀로 어디론가 도망치고만 싶었다.
반면에 지수는 내일 세상에 종말이 와도 두 번 결혼까지 실패했다는 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의지가 분명해 보였다.

일찍이 그런 착각을 거두어 주기를 바랐으나 말릴 수 없는 고집에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금희는 지금 너나 할 것 없이 삶은 오늘뿐이라며 내일이 없는 하루살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가운데 그 틈새에 끼지 못하고 스스로 인생 낙오자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동생을 못난 사람으로 치부하기조차도 부끄럽고 억울하다보니 도피하고만 싶은 생각은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렇다고 지수를 무작정 도피 시킬 수도 없었다. 막상 미란에게 내어 줄 돈도 없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능사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때 아니면 다를까. 기다렸다는 듯 3천 소리가 또 다시 터져 나왔다.
갑자기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어차피 다희는 내 새끼가 아니니까… 그녀는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식이었다. 이어 입양 이야기가 또 다시 터져나왔다.

내친김에 다희를 입양 보내자며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갔다. 그냥 보내자는 것이 아니었다. 무언가 있는 게 분명했다. 침묵이 모두를 얼어붙게 하고 있을 때였다.
“입양을 보내데 돈을 받고 보내!”
경악을 금치 못할 말이었다. 미란이 제 속으로 낳은 어린 딸까지 팔아 돈을 챙길 셈이었다.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지금 비밀리에 그렇게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었다. 미친 여자가 따로 없었다. 아무리 남자의 경제능력이 바닥났다 해도 제 뱃속으로 낳은 자식까지 팔아 돈을 만드는 도구로 삼을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런 말은 주위에서 듣긴 했어도 자신에게 그런 일이 닥치리라고는 예상도 못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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