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쳐 인사이드] 저출생이라는 말이 진보적인가?
[컬쳐 인사이드] 저출생이라는 말이 진보적인가?
  •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23.12.15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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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저출산이라는 단어를 쓰면 의식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을 받게 되었다. (자료사진: 게티이미지뱅크/ 굿모닝충청=김갑수 기자)
어느 순간 저출산이라는 단어를 쓰면 의식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을 받게 되었다. (자료사진: 게티이미지뱅크/ 굿모닝충청=김갑수 기자)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어느 순간 저출산이라는 단어를 쓰면 의식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언론은 물론이고 정치인들까지 저출산이 아니라 저출생이라는 단어를 입에 오르내리게 한다. 나아가 저출생이라는 단어를 기재한 법안이 여러 건 국회에 제출되기도 했다.

저출산이라는 말 대신 저출생이라는 단어가 부각이 된 이유는 여성이 출산의 수단 또는 도구화되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여성이 아이를 낳는 기계가 된 듯싶은 어감이 있는 데다가 출산율이 낮아지는 것이 마치 여성의 책임인 것으로 간주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용어의 변화를 주장하는 이들은 신생아 수가 적어지는 이유가 여성 탓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점을 든다. 이러한 지적은 일견 타당할 수밖에 없다. 출산을 감내해야 하는 여성의 처지가 제대로 반영이 되지 않아 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가가 인구수를 늘리기 위해 여성에게 출산을 강요하다시피 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권위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한 유물론적인 국가 철학과 세계관과는 맞지 않는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출산과 출생은 그 개념이 다르기에 분별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칫 여성을 아이 출생에서 배제할 수 있다. 출산이라는 말은 분만, 해산이라는 말과 같다. 즉, ‘아이를 낳는다’라는 뜻이다. 생물학적으로 아이를 낳는 것은 누구인가? 현재까지 아이를 낳는 것은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의 관점에서는 출산이 맞다.

‘여성이 출생을 하다’라고 할 수는 없다. 출생은 아이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다. 아이가 출생했다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즉 자녀의 관점에서는 출생이 맞는 것이다. ‘여성들이 출생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출산을 안 하는 것’이라고 표현해야 한다.

따라서 여성들이 임신을 안 하려는 원인에 대한 연구에서는 출산이라는 표현이 맞는 것이다. 나아가 오히려 여성의 적극적인 주도권을 고려하여 출생보다는 출산이라는 개념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 학계에서는 더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즉, 저출생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낡은 느낌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학계 입장에서는 사실 고출생이건, 저출생이건 그것을 좌우하는 것은 다름 아닌 주체적인 여성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출산을 출생으로 무분별하게 바꿔 사용하면 지역이 배제될 수 있다. 국가 전체적으로 신생아 수가 적기 때문에 출산을 출생으로 기재하자는 것인데 지역에 따라서 다른 상황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 전체적으로 신생아가 줄었지만, 충남 아산시는 지난 1년간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최고였다. 2023년 6월 30일까지 1년 동안 1991명의 아기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이가 많이 태어나고 있는 아산지역 여성들이 출산을 피동적으로 했기 때문이라고 표현할 수 없다.

출산 대신 출생으로 표기하자는 주장이 나온 맥락대로라면 신생아가 많이 태어나고 있는 지역에서는 출생이 아니라 출산이라고 해도 무방한 셈이다. 저출산도 없고 누구도 저출산의 탓을 여성에게 전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출산에서 출생으로 명칭을 바꾸자는 개념에는 개인보다는 사회 구조적인 측면에서 원인을 부각하려는 세계관이 반영돼 있다. 개인적인 요인보다는 사회 구조적인 원인을 찾아서 대응해야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믿음 체계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사회구조가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오히려 원인은 물론 행동 주체가 모호해질 수 있다. 개인과 개인이 모여 사회를 이루기 때문에 개인에 주목하는 것이 당연하기도 하지만, 아울러 사회적 요인을 부각하면 개인의 의사 선택에 관한 연구와 분석이 소홀해진다.

1970~1980년대 사회학이 유행을 하다가 1990년대 이후 심리학에 부각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내밀함은 지금은 뇌과학과 유전자 연구에 이르고 있다. 물론 그 내밀함은 사회와 분리되면 곤란하지만 이런 흐름이 나타난 것은 모든 현상을 사회구조에서 찾을 때 해결되지 않는 사례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미 아기를 낳는데 여성 혼자만 낳는다고 볼 수도 없다. 임신과 육아에 배우자의 동의도 현실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딩크족의 출현은 괜한 것이 아니다. 즉, 출생이라는 개념이 오히려 이런 가족 관계성을 간과할 위험성이 있다. 무분별한 출생 개념의 적용은 한국 사회의 변화상을 반영하지 못하는 이전 관념의 소산인 것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카이스트 미래 세대 행복위원회 위원.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카이스트 미래 세대 행복위원회 위원.

출산을 출생이라는 개념으로 전환 시키는 것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여성에게 임신과 육아의 프레임에 갇히게 한다. 여하간에 개인과 더불어 가족들의 최종 판단 선택을 하는 것이며 그렇게 가야 하기에 출산인가 출생인가는 근본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신생아 감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학계의 관점이다.

다만, 출산이 일본식 어투이기 때문에 국립국어원 등에서는 해산으로 순화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고해산율, 저해산율이라는 말도 익숙하지는 않다. 차라리 저출산‧저출산율을 저신생아‧저신생아율로 바꾸는 것이 나을 수 있다. 덧붙여 저신영아‧고신영아율도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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