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어원상고사] 우리 말의 뿌리를 찾아서 2
[정진명의 어원상고사] 우리 말의 뿌리를 찾아서 2
정진명 시인, 어원을 통한 한국의 고대사 고찰 연재 '66-양주동·이남덕’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3.12.21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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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덕의 한국어 어원연구 표지.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② 양주동

말의 뿌리 얘기가 나왔으니, 양주동을 말하지 않고 지나갈 수 없습니다. 양주동은 스스로 국보 1호라고 자랑하고 다녔다는데, 이런 건방진 행태에 저는 콧방귀를 뀌다가 『고가 연구』(일조각)라는 그의 책을 보고서 그럴 자격이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고가 연구』라는 책은, 신라 시대의 향가를 풀이한 책입니다. 일연의 『삼국유사』라는 책은 한문으로 쓰였습니다. 당연히 한문 문법으로 풀이하면 다 해석이 되는 책이죠. 그런데 그 안에 한문 문법으로 풀이가 안 되는 곳이 11군데 있습니다. 이게 뭔지 알 수가 없는 채로 고려 이후 일제강점기까지 내려온 것이죠.

그런데 그 중의 한 구절을 일본의 학자 시라도리 구라키치(白鳥庫吉)가 번역합니다. 그게 그럴듯합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한자를 쓸 때 훈과 음을 따로 쓰지만, 일본어는 때에 따라서 편한 대로 훈과 음을 섞어 씁니다. 그래서 일본 사람이 명함을 건네주면 반드시 어떻게 읽는지 물어봐야 합니다. 그러니까 『삼국유사』의 해석이 안 되는 부분을 일본어 읽듯이 읽어본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놀랍게도 의미가 통하며 풀이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간단히 정리하여 발표했습니다. 이것이 향가 해석의 효시입니다. 일본인이 처음으로 향가에 손을 댄 것입니다.

이 사실에 충격을 받은 양주동은, 서점에서 옛 책을 한 지게 사서 지고 골방에 처박혀 오래도록 구라키치가 한 방식으로 연구를 한 끝에 『고가 연구』라는 두툼한 책을 냅니다. 이렇게 해서 『삼국유사』 속에서 천 년 동안 잠자던 신라 시대의 노래가 우리 곁으로 돌아옵니다. 우리가 국어 교과서에서 배우는 향가는 이렇게 하여 알게 된 것입니다. 그 뒤로도 많은 학자가 달려들어 향가를 연구했고 훌륭한 업적을 쌓았지만, 향가에 관한 한 양주동 혼자 한 일이 그 후에 이루어진 일보다 훨씬 더 높고 큽니다.

이 책에서는 향가에 쓰인 모든 한자의 용례를 일일이 정리하여 그것이 뜻으로 쓰일 때와 음으로 쓰일 때의 차이점을 밝히고, 그 일관성을 바탕으로 원문을 풀어보는 방식이었습니다. 예컨대 「서동요」에는 ‘善花公主主隱’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善花公主는 선화공주이지만, 主隱은 뭐냐는 겁니다. 이것은 님(主)과 은(隱), 그러니까 ‘님은’을 적은 것이라는 거죠. 님은 뜻으로 적고, 은은 소리로 적은 겁니다. 이런 식의 풀이는 한문에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일본어에서나 가능한 일이죠. 그래서 그 장구한 세월 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이 향가를 해석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요즘은 컴퓨터가 발달하여 이런 작업은 순식간에 할 수 있습니다. 자료를 입력하고 글자에 따라 가나다순 배열을 하라고 명령한 다음에 엔터키만 툭 치면 몇 초 내로 다 화면에 뜨죠. 하지만 양주동이 살던 일제강점기에는 스티커 같은 좁고 긴 종이에다가 일일이 써서 가나다순으로 정리한 다음에 거기서 일일이 사전 찾듯이 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시간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작업이 되죠.

이런 구조는 도서관에서 도서 카드를 찾는 방법으로 연결되는데, 제가 대학에 들어갔던 1980년대에도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 이렇게 빌렸습니다. 1990년대 들어 컴퓨터가 생기면서 1층 도서관 홀에 가득했던 그 카드 함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양주동의 이 업적은 국어교육과를 선택한 저로서는 당연히 향가를 배울 때 접했고, 양주동의 책을 직접 사서 읽었습니다. 우리말의 뿌리가 보여주는 상상에 행복했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합니다. 하지만 비교언어학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고대 문자의 해석은 오류를 범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도 또렷이 알려주었습니다. 역사에서 나타나는 언어는 우리만의 언어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산 여러 언어의 산물입니다. 그래서 많은 언어를 적용해야만 제대로 의미가 드러납니다.

③ 이남덕

제가 어원에 제대로 매달리기 시작한 것은 1985년입니다. 국어교육과에 진학하여 국어 공부를 시작하면서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은 어원에 관심은 한층 깊어졌습니다. 1989년의 일입니다. 서울 광화문의 교보문고에 갔다가 『한국어 어원 연구Ⅰ』(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이라는 책에 눈길이 꽂혔습니다. 그리곤 집어들고 한 시간이 넘게 거기 빨려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제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 Ⅱ까지 세트로 샀습니다.

그 책을 읽으며 그 동안 내가 얼마나 한심하게 어원에 관해 생각했는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낱말 하나의 뿌리가 어떤 것일까 하고 생각해보고 사전을 찾아서 비슷한 말들의 어근이나 어간을 찾아 대조해보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남덕의 책은 낱말 하나의 차원이 아니라 언어의 줄기를 찾아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즉 원형어, ‘가르다’, 인체어, 식물 어휘 하는 식으로 한 줄기를 잡아서 문법과 조어의 원리를 찾아 관련 언어를 모조리 동원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제가 나무 한 그루를 보고 있었다면 이남덕은 나무의 여러 갈래를 보고 있던 셈이었습니다. 어원을 바라보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낱말 하나를 끄집어 내면 나머지 관련 낱말들이 고구마 덩굴처럼 주욱 달려 올라왔습니다. 게다가 비교 언어학의 정보까지 동원하면서 그런 연유를 하나하나 밝혀나갔습니다. 그제야 안심이 되었습니다. 나 같은 무능력한 사람이 굳이 달려들지 않아도, 어원사전이 나오는 것은 시간 문제겠구나!

이남덕의 이 책은 Ⅰ권부터 Ⅳ권까지 나오면서 우리나라 어원 연구의 신기원을 열어놓았습니다. 지금도 제 기억 속에서는 강길운의 비교 언어학에 의한 연구 빼고서는 이 책을 능가할 만한 업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에는 제가 대학생 신분이었고, 방학이면 아파트 현장에서 공사 막일을 하면서 학비를 벌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돈 한 푼 아까운 그 때에 시중의 서점에서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돈 주고 살 만한 그런 책이 아니었는데도, 무언가에 꽂혀 대뜸 산 것입니다. 4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책꽂이에서 그 책을 다시 꺼내어 보니, 속표지 첫 장에 이런 메모가 적혔습니다.

“기모 삼촌이 준 돈으로 교보문고에서 구하다. 
4322. 3. 28. 鄭鎭明.”[빨강도장꾹]

아하! 돈이 궁색하던 시절에 기모 삼촌에게서 용돈을 받은 모양이고, 그 용돈으로 이 어려운 책을 산 모양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8남매였는데, 고모는 한 분이고 나머지는 모두 삼촌들이었습니다. 기모는 막내 삼촌인데, 우리는 ‘김모 삼촌’이라고 불렀습니다. 한자로는 基謨였는데, 이것을 왜 ‘김모’라고 미음을 겹쳐 발음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동네 사람들 모두 그렇게 불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하하하.

재미있는 것은 제 책임을 표시하려고 인감에나 올릴 법한 둥근 도장을 꾹 찍어놓았다는 것입니다. 책이 소장욕을 자극했던 모양입니다. 서지 사항 밑에 쓰인 책값을 보니 8,500원입니다. 이때 짜장면값이 보통 1,000원이 안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니 8,500원은 보통 비싼 게 아니었지요. 이 큰 돈을, 나보다 두 살밖에 더 먹지 않은 삼촌이 주신 것입니다. 갑자기 추억이 회오리칩니다.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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