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어원상고사] 『어원으로 본 한국 고대사』
[정진명의 어원상고사] 『어원으로 본 한국 고대사』
정진명 시인, 어원을 통한 한국의 고대사 고찰 연재 '69-어원으로 본 한국 고대사’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4.01.11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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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명의 어원으로 본 한국 고대사 표지.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저는 지금 어원으로 한국 상고사를 살펴보는 중입니다. 이 글을 제대로 읽으려면 역사학과 언어학에 상당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이 글을 연재하던 중에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저의 글을 여기저기 퍼 나르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그런데 그 퍼나름이 어느 날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당연한 일이고, 익히 예상한 일입니다. 이것은 제 글의 어려움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쓴 글은 일반인이 읽기에 매우 어렵습니다. 역사는 일반인이라도 관심만 있으면 지식이 꾸준히 늘어나서 역사학에서 말하는 내용을 어느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어학은 그와 다릅니다. 언어학에는 언어학에서 쓰는 특수한 발음기호와 용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전문가들이 아니고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의 글이 어렵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점을 감안하여 저는 연재 글에 발음기호를 될수록 적게 쓰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그게 제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고대 인명 지명 국명 관명 부족명 같은 것이 저의 뜻대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말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전문 용어와 발음기호를 쓰지 않을 수가 없죠.

제가 어원을 통해서 추적한 한국 상고사의 개념은, 지금까지 다른 그 어느 역사학자도 언급한 적이 없는 낯설고 새로운 모습입니다. 우리는 2,000년 전의 사회나 환경을 지금의 우리와 똑같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고구려 때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와 같은 말을 썼을 거라는 식이죠. 이런 생각은 불과 백 년이 채 안 된 아주 가까운 시절에 형성된 관념입니다. 즉 민족주의 관념이죠. 민족주의는 서구에서도 겨우 200년 전에 나타나서 자본주의와 결합하며 식민지 개척의 도구로 활용된 사상입니다. 동양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날 한반도와 만주 요동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어떤 나라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그 땅에 사는 백성이었죠. 자기 땅에서 제 말을 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 위로 외부에서 우르르 몰려든 사람들이 지배층을 형성하며 나라를 만든 것입니다. 당연히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언어가 달랐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생각을 안 하고 2,000년 전의 그곳 주민들이 오늘날 우리가 쓰는 언어를 썼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는 사극에서 그대로 엿볼 수 있습니다.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에서 배우들은 오늘날 우리가 쓰는 말 그대로 씁니다. 단군도 주몽도 김유신도 요즘 우리말을 씁니다. 과연 그랬을까요? 이런 의문을 던지는 사람은 한국에 아무도 없습니다. 역사학자들조차 당시의 사람들이 어떤 말을 썼는지는 아무도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이번에 연재를 통해서 이에 관해 의문을 던진 것입니다.

연재를 시작할 무렵에 한 가지 고민이 생겼습니다. 이 연재를 통해서 제가 다룰 문제는 역사보다는 언어학의 관점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역사 얘기를 하기보다는 언어 얘기를 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갈 것이고, 역사학 지식이 별로 없는 일반인들로서는 읽기가 더더욱 어렵게 될 것이었습니다. 이런 고민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같은 이야기를 두 버전으로 써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지금의 연재물은 그대로 진행하고, 일반인들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역사 지식을 좀 더 곁들인 어원 상고사를 하나 더 써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동시에 두 가지 원고를 쓰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지금 연재하는 『어원상고사』이고, 다른 하나는 단행본으로 구상하여 쓴 것으로 이 연재가 끝나갈 무렵에 책으로 나왔습니다. 제목은 『우리 역사 이야기 : 어원으로 본 한국 고대사』입니다.

저는 원래 문학지의 추천으로 1987년 등단하여 시집을 10여 권 낸 시인입니다. 그런데 1996년에 『우리 활 이야기』라는 책을 학민사에서 냅니다. 『우리 ○○ 이야기』라는 제목은 학민사에서 즐겨 쓴 제목이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로 활쏘기 안내서를 낸 것이죠. 그런데 제가 뜻하지 않게 이런저런 산문을 쓰면서 계속해서 학민사에서 이와 비슷한 제목을 붙여서 내게 되었습니다. 『우리 침뜸 이야기』, 『우리 시 이야기』, 『우리 붓 이야기-한국의 붓』, 『(청소년을 위한)우리 철학 이야기』…….

이러다 보니 이번 연재의 자매 편으로 나온 글에도 저는 『우리 역사 이야기』라고 제목 붙였는데, 출판사에서 제목의 상투성을 염려하여 ‘어원으로 본 한국 고대사’라는 곁제목을 붙인 것입니다.

저는 본업이 시인인데, 어쩌다 보니 이런 잡문까지 많이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시가 아닌 산문을 쓸 때는 꼭 지키는 원칙이 있습니다. 새로운 내용이 없다면 절대로 책을 만들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내용이 없는 책은 쓰레기입니다. 홍보용 제 자랑이죠. 이런 행위는 환경오염만 가중시킬 뿐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내용 없이 남의 글만 뒤섞어서 쓰고 거기다가 제 이름을 붙여 내는 책들을 저는 혐오합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책으로 낼 때 저의 원고를 판정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새로운 내용이 최소한 전체 책 내용의 15%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새로운 내용이 15%가 안 된다면 그것은 자료로서 가치가 없는 것이고, 굳이 그걸 책으로 내야 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앞서 제가 쓴 모든 책은 이런 원칙에 따라 판단하고 낸 것들입니다.

그러면 이번에 연재한 내용은 어떨까요? 앞선 사람들이 언급하지 않은 새로운 내용이 전체 내용 중에서 얼마나 될까요? 제 생각에는 한 절반 즉 50%는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책의 절반 가량은 앞사람이 말하지 않은 내용을 제가 처음으로 머릿속에서 꺼내어 글로 정리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새로운 내용이 50% 정도라면 그 분야에서는 정말 굉장한 발견입니다.

그러면 나머지 50%는 어디에서 얻은 내용일까요?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와 강길운의 『한국 고대사의 비교언어학적 연구』(1990)를 비롯한 어원 관련 책들입니다. 특히 역사에 대한 저의 어원 지식은 강길운의 업적에 힘입은 바 큽니다. 심하게 말하면 강길운의 연구 성과에 저의 지식을 조금 더 보탠 정도라고 해도 될 정도로, 강길운은 어원으로 역사를 보는 저의 눈을 열어주었습니다.

이번에 나온 『어원으로 본 한국 고대사』는 이번 연재에서 보여준 어원 지식을 정리하되, 동양 역사의 흐름 전체를 추가로 설명한 것입니다. 즉 역사학에서 설명하고 발견한 정보들을 동원하여 저의 어원이 찾아낸 지식과 결합함으로써 읽는 이의 편의를 도와주려고 한 것입니다.

특히 중국 동부인 황하 하류와 발해만 유역에 널리 퍼졌던 몽골어와 터키어 퉁구스어를 쓰는 사람들이 중국의 세력 확장에 동쪽으로 밀려나 이합집산하면서 고대 국가가 탄생하는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언어의 이동 과정을 더듬다 보면 역사학의 여러 주장 중에서 이런 이동과 일치하는 학설을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역사학계의 윤내현이나 북한의 리지린 학설이 그나마 제가 살펴본 어원과 많이 겹치는 주장이었습니다. 이 중에서 특히 윤내현의 업적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 고대사를 살펴보니,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로 펼쳐지는 고대사의 흐름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각 국가의 지배층이 쓴 언어가 정리되면서 역사학에서 애매모호하게 설명하고 넘어간 부분들이 깔끔하게 이해되었고, 우리가 국사 시간에 배웠지만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었던 여러 가지 문제도 저절로 알게 되었습니다. 가야가 신라와 결합하면서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한다는 것이나, 신라에서만 여왕이 나왔다는 특이한 사실 같은 것이 그것입니다.

특히 신라 문제는 지금까지 신화나 억측으로 가득 찼는데, 그것이 신라 지배층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이었음이 저절로 드러났습니다. 신라는 초기 퉁구스어를 쓰는 부족이 지배하다가 나중에는 터키어를 쓰는 세력이 합류하면서 변화가 생겼고, 그것이 관명이나 지명에 반영되었던 것입니다. 특히 진한 6촌이 신라 6부로 바뀌게 되는데, 이때의 명칭 변화가 터키어 중심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을 『어원으로 본 한국 고대사』에서 처음으로 밝혔습니다. 지금까지 역사학계에서는 누구도 이 점을 어원의 차원에서 살펴보지 않았습니다. 않은 게 아니라 못한 것이겠죠. 터키어는 흉노족들이 쓰던 언어이고, 신라는 명실공히 흉노의 후예가 세운 왕국임이 언어 고찰을 통해서 드러난 것입니다.

이번 연재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한 것이 가야입니다. 가야를 포함하면 한국 고대사는 3국이 아니라 4국사가 되어야 하는데, 가야가 배제되었습니다. 여기서 못 다룬 이 이상한 현상을 이 자매 편 책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었습니다. 가야가 한국사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가야가 신라로 통합된 까닭도 있지만, 가야의 핵심 세력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천황가로 합류함으로써 가야는 한국의 역사에서 제외된 것입니다. 고대의 사관들은 가야사를 일본사로 생각한 것이 분명합니다. 한반도에 남은 가야 세력이 신라의 진골로 진입하여 이후 신라는 터키계와 드라비다계의 연합 정권을 이룹니다.

터키계는 성골, 드라비다계는 진골, 나머지 토박이 백성은 육두품 이하의 계층이죠. 순수한 터키계 혈통이 더는 없자 마지막 남은 순수혈통인 여성이 왕을 하기에 이른 것이 신라 왕실에서만 여자 왕이 나온 이유입니다. 여자마저 순수혈통이 끊어지자, 혼혈인 진골에서 왕이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드라비다계의 정체성도 사라질 무렵에 신라가 망합니다.

이 문제를 다루고 가야와 일본의 관계를 설명해야 우리 역사가 꼬리뼈까지 가지런히 드러나는데, 이런 작업도 벌써 강길운이 다 해놓았습니다. 『한일 고대 관계사의 쟁점(2011)』이 바로 그 책입니다. 저의 책에서는 굳이 이 내용을 되풀이할 필요가 없어서 조금 소개하는 것으로 가야사를 마무리했습니다.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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