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어원상고사] 한문의 기원 갑골문
[정진명의 어원상고사] 한문의 기원 갑골문
정진명 시인, 어원을 통한 한국의 고대사 고찰 연재 '70-갑골문’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4.01.1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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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춘태의 '갑골음으로 잡는 식민사학 동북공정' 표지.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사람이 잘난 체를 하면 뒤통수를 한 대 맞는 법입니다. 제가 지금 그 꼴입니다. 저는 되지도 않을 얄팍한 어원 지식으로 우리 상고사 전체를 흔들어 놓으면서 중국 중심으로 동양사를 바라본 기존의 사관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자세를 취했는데, 이 연재를 마칠 무렵에 돌이켜보니 저 또한 아직도 중국을 중심에 놓고 역사를 보는 한심한 짓에서 못 벗어났습니다.

한자 문제입니다. 중국 역사의 시작은 은나라이고, 은나라는 갑골문을 썼습니다. 동양에서 처음으로 문자를 만든 나라입니다. 이 문자는 주나라의 금문과 이후 한문으로 이어져 오늘날 중국의 공식 문자가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합니다. 은나라는 동이족이었습니다. 이것은 온 세상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나중에 ‘한자’라는 이름을 얻은 이 글씨는 동이가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동이족인 은나라의 갑골문을 화하족인 주나라가 쓰면서 자신의 문자로 만들어 간 것이 중국 문명의 출발이고 중국 역사의 걸음걸이입니다. 한자의 시작은 갑골문이고, 갑골무는 동이인 은나라 사람들이 들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중국 사관을 벗어나야 한다고 떠들며 연재를 해온 셈이었습니다. 연재가 다 끝나갈 무렵에 최춘태의 책 『갑골음으로 잡는 식민사학 동북공정』을 읽으며 퍼뜩 이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생각해보니 주나라의 조상인 고공단보는 서융이 살던 중국 서북쪽의 사막지대에서 유목 생활을 하다가 황하를 따라 서서히 내려와서 중류 유역에 자리 잡으며 세력을 넓히다가 후손들이 호경과 낙읍에 나라를 세우고 은나라를 멸망시킵니다. 이건 뭐냐면, 원래 중국 땅은 화하족이 아니라 동이족으로 가득한 곳이었는데, 한 줌밖에 안 되는 오랑캐인 화하족이 점차 세력을 확장하며 중원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결국 주나라는 은나라와는 다른 문화를 지닌 작은 세력이었는데 자신의 문화 속으로 주변의 거대한 동이족을 빨아들이며 덩치를 불려 황하문명의 주역이 된 셈입니다.

이 과정에서 은나라에서 쓰던 갑골문을 자신들의 문자로 바꾸었고, 그 문자는 우리가 아는 ‘한자’와 ‘한문’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갑골문이던 시절의 문자와 주나라가 자신의 언어로 환골탈태시킨 문자는, 같은 글자라도 소리가 달랐을 것임을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중국어를 볼 때 선진시대의 상고음, 수당시대의 중고음, 송명 이후의 현대음으로 나누어 발음을 정리합니다. 이것이 음운학의 관행이죠.

이렇게 같은 한자의 소리가 시대에 따라 다른 것은 세월에 따라 저절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 갑골문입니다. 갑골문이 금문으로 넘어가는 시기는 은나라를 멸망시킨 주나라가 들어서며 자신만의 전통과 문화를 새롭게 만들어 가던 때였습니다. 본래 동이족이던 우리에게 익숙한 갑골음이, 오늘날의 한자 전통을 만든 중국의 음으로 급격하게 변하던 시기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자의 음에는 갑골음의 기억이 깔려있고, 갑골음을 파고들면 이 변화의 소용돌이를 엿볼 수 있습니다.

저는 미처 이 생각을 하지 못하고 한자는 화하족의 문자라고 여긴 채, 우리 상고사를 건드리고 아는 체했다는 자괴감을 지금 고백하는 중입니다. 그런 점에서 뒤늦게 읽은 최춘태의 책은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다룬 주제에서 이런 반성이 주는 문제점은 이것입니다. 즉, 사마천의 『사기』를 비롯하여 제가 중요한 자료로 삼은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읽을 때 어디까지 갑골음을 적용해야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당연히 은나라 때 만들어진 지명 인명을 갑골음으로 읽어야겠지요. ‘단군 환웅 환인’ 같은 이름이 그렇습니다. ‘금미달, 아사달, 신단수, 궁홀, 백악, 신시’같이 단군신화에 나오는 모든 이름은 그렇게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단군신화는 4,000년 전의 이야기를 전하는 내용입니다. 그 시기에 중국에서는 은나라가 갑골문을 쓰고 있었죠. 그러니 그 영향이 이런 이름에 알게 모르게 남았을 것입니다. 당시에 지어진 지명이나 인명을 갑골음으로 읽는다면 정확한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한 무제의 흉노 공격으로 촉발된 2,000년 전의 동북아시아 상황은 좀 복잡합니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당시의 상황이 잘 정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나온 4사(한서, 후한서, 삼국지)에는 『사기』에는 없는 이름들이 무수히 나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대방 임둔 낙랑 현도 진번...... 이 이름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4,000년 전의 갑골음으로 읽어야 할까요? 2,000년 전의 한자나 알타이어로 읽어야 할까요?

제 생각에는 둘 다 적용하여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단군이 나라를 세운 4,000년 전의 언어가 2,000년 동안 변화를 겪어서 나타난 것이, 지금부터 2,000년 전의 한-흉노 조선 전쟁 시기입니다. 이 두 언어로 견주어 보면 당시의 역사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지난 한 해 어원상고사를 연재하면서 한자 상고음과 알타이어에 초점을 맞추어 떠들었습니다. 성과가 없진 않았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인 말들이 많습니다. 여기에 갑골음을 적용해 본다면 좀 더 많은 성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뒤늦게 최춘태의 책을 접한 것은, 얄궂은 운명의 얼굴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더 이상 역사에 관해 아는 체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는 너무 늙었습니다. 이젠 누군가 나서서 이 작업을 해주기를 기대하면서, 저는 활이나 쏘면서 살다 가렵니다.

단군조선은 4,000년부터 2,000년간 있던 나라입니다. 우리는 ‘단군’이 이 왕조의 임금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알았는데, 2,000년 세월을 겪으면서 소리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할 것입니다. 같은 한자라도 1,000이 흐르면 다른 소리로 바뀝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뜻은 안 바뀝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좀 더 정확한 뜻을 나타내는 글자로 바꿔서 쓰면 되죠. ‘가새’라는 말을 쓰는 충청도 사람에게 굳이 ‘가위’라고 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가새’와 ‘가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두 말이 전하고자 하는 ‘자르는 도구’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2,000년간 유지된 왕조에서 왕을 가리키는 말이 세월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그것을 적은 한자의 소리가 세월 따라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한자를 다른 걸로 바꿔서 표현하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 나타난 말이 ‘환인-환웅-단군’입니다. 최춘태의 갑골문 연구에 따르면 이 셋은 같은 소리를 나타내는 말로, 모두 ‘ᄀᆞᄉᆞᄅᆞ’, 또는 ‘ᄀᆞᄅᆞᄉᆞᄅᆞ’입니다. 음운 표기로 하면 ‘gəsər’입니다. 이와 똑같은 갑골음을 나타내는 한자가 많습니다. 조선(朝鮮) 환(桓) 단(檀) 예(濊) 금(金) 청(靑)이 갑골문에서 모두 같은 소리를 냅니다. 그러면 단군신화에 나오는 ‘금미달 아사달 신시 백악 궁홀’같은 말들도 갑골음으로 재구하면 좀 더 또렷해질 것 같습니다. 이것은 최춘태의 책 『갑골음으로 잡는 식민사학 동북공정』을 읽어보십시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지난 4,000년이나 언어가 변해왔으니, 원래는 같은 말이 1,000년 2,000년 지나면서 다른 말뜻으로 바뀌고 기록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환인 환웅 단군이 갑골문으로 따지면 ‘ᄀᆞᄅᆞᄉᆞᄅᆞ’를 적은 말이고, 이것은 조선(朝鮮)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앞서 삼한과 조선이 같은 말이라고 설명드렸는데, 갑골문에서 후대로 내려오며 뜻과 기록이 갈라진 것뿐입니다. 즉 ‘三=朝 ; 韓=鮮’의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ᄀᆞᆯ’이 셋(三)과 나뉨(分)으로 인식된 것이고, ‘ᄀᆞᆯ’의 기역이 떨어져나간 ‘ᄋᆞᆯ, ᄋᆞᆺ’이 아침을 뜻하는 ‘ᄋᆞᄉᆞ’(朝)로 바뀐 것입니다. ᄋᆞᄉᆞ=ᄀᆞᄉᆞ. ‘ᄀᆞᄉᆞ’에 임금을 뜻하는 ‘간, 칸’이 붙으면 ‘거서간’이 됩니다. 삼한을 이런 식으로 읽으면 ‘ᄀᆞᄉᆞᄏᆞᆫ>아사한’이 되겠네요. 이것은 조선도 마찬가지입니다. ᄀᆞᄉᆞᄅᆞ(朝鮮)>ᄀᆞᄉᆞᆯᄒᆞᆫ>거슬한(居瑟邯)>거서간.

따라서 ‘조선’은 3,000년 전 갑골문으로 적은 한자이고, ‘삼한’은 우거가 위만의 공격을 피해 달아난 2,000년 전 한반도의 토착민 언어이고, ‘거서간’은 2,000년 전의 퉁구스어로, 모두 같은 말을 각기 달리 기록한 것입니다. 퉁구스족은 제 나라 이름을 ‘조선, 주신, 숙신’이라고 하고, 왕을 ‘거서간’이라고 한 것인데, 이것들이 원래는 같은 말이었다는 것입니다. 거서간을 몽골족들은 해모수라고 했고, 터키족들은 제네스(genes< jenup;單于)라고 했음은, 앞선 글에서 이미 설명드렸습니다. 원래는 같은 말(알타이어족)이었던 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민족마다 다른 언어(터키어 몽골어 퉁구스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어원으로 역사를 보는 일은 이제 막 시작입니다. 최근 전원철의 『고구려 발해인 칭기스칸』(2016)이 그 모범을 보였고, 최춘태의 『갑골음으로 잡는 식민사학 동북공정』(2017)이 또 다른 문을 열었습니다. 머지않아 역사에서 이름의 뜻을 몰라 헤매는 일은 없는 시대가 올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면 고대사의 논란도 잦아들 것입니다.

언어는 역사의 유물이고 유적입니다. 이걸 모르는 역사학이 비극을 자초하는 것이죠. 저는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와 강길운의 『한국 고대사의 비교언어학적 연구』라는 잔칫상에 슬그머니 숟가락을 얹었을 따름입니다. 그 숟가락질의 결과가 『어원으로 본 한국 고대사』입니다. 지금 연재하는 이 글은 그 책의 또 다른 버전입니다. 좀 재미스럽게 풀어보는 중이죠.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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