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책으로의 여행] 광장이냐 밀실이냐
[임영호의 책으로의 여행] 광장이냐 밀실이냐
  •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 승인 2024.02.27 09:4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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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최인훈

[굿모닝충청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이면서, 숨을 쉰다.”

최인훈(1936~2018)의 《광장》은 1960년에 처음 발표되었습니다. 6·25 전쟁이 끝난 후, 7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아 아직도 전쟁의 상처가 생생할 때입니다. 좌파와 우파 사이의 이념문제와 분단문제를 다룬 《광장》은 6·25 전쟁 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된 포로 이명준이라는 한 젊은이가 중립국 인도로 향하는 배 안에서 고단했던 과거에 대해 회상하며 시작합니다.

이명준은 3,000톤급 배 <타고르 호>를 타고 크레파스보다 진한 바다가 펼쳐져 있는 동지나해(東支那海)의 공기를 헤치며 중립국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이명준은 철저한 공산주의자 빨갱이 이형도의 아들입니다. 이형도는 박헌영과 더불어 남로당을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월북한 사람입니다. 은행 지점장인 아버지의 친구 집에서 기숙하던 명준은 비록 아버지가 월북하기는 했으나 자신은 이념에 대해 무관심한 철학도입니다. 그는 친구 태식의 동생 영미를 통해 윤애와 사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명준은 고고학자이자 여행가인 정 선생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겼고, 그에게 본인이 살고있는 남한 사회체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쏟아냈습니다.

남쪽에는 좋은 아버지이지만 인민의 나쁜 심부름꾼 같은 개인만 있고, 인민의 삶을 꾸릴 광장에는 정작 사회적 정의가 구현되는 푸른 광장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그의 눈에는 밀실만 푸짐하고 국민은 없는 죽은 사회였습니다.

광장은 똥오줌에 쓰레기만 더미로 쌓여있고, 탐욕과 배신, 속임수와 교활함, 부정과 비굴함이 넘치는 공간으로 있는 것이라고는 타락할 수 있고 게으를 수 있는 자유와 같은 부도덕한 자유가 허락되는 어두운 밀실뿐입니다.

이념으로 대치된 남북 상황은 이명준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이북에서 요직으로 있던 아버지가 평양 방송을 통해 남한을 자주 비방하는 방송을 하게 되자, 아들 이명준은 경찰서 사찰계에 불려 가서 고문을 당하게 됩니다.

이명준이 철학과를 다닌다고 하자 형사는 "그래 철학과면 마르크스 철학도 알갔군?" 하며 그에게 주먹질을 했으며, 아버지 이름을 꺼내면서 “네 애비가 열렬한 빨갱이니깐 어렸을 때부터 공산주의 영향을 받았을 게 아냐? 하며 모욕을 주었습니다.

“그 속에 목숨을 묻고 싶은 광장을 끝내 찾지 못할 때,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일을 당한 후 명준은 희망도 기쁨도 없는 세상에서 두려움과 환멸만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명준은 인천에 있는 여자 친구 윤애를 찾아가 그녀의 집에 묵으면서 한여름 동안 바닷가를 이리저리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선술집에서 우연히 이북으로 가는 밀선을 알선해주는 사람의 제안을 받아 보다 삶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기대하며 여자 친구 윤애에게 간다는 말도 없이 북으로 떠났습니다. 이명준의 부친은 이북에서 선전 책임자로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새 장가를 들었고, 정원이 있는 아담한 적산(敵産) 가옥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명준은 아버지의 추천으로 노동신문의 편집부 기자가 됩니다.

월북 후 그곳에서 이명준이 본 것은 인민을 억압하는 무거운 공기뿐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불만을 그대로 쏟아냈습니다. "이게 무슨 인민의 공화국입니까? 이게 무슨 인민의 소비에트입니까? 이게 무슨 인민의 나라입니까? 제가 남한을 탈출한 건 이런 사회로 오려던 게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끝내 묵묵히 듣고만 앉아있었습니다.

명준이 보는 북한에는 혁명은 없고 혁명의 빈껍데기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당이 모든 주체가 되어 판단하고, 느끼고, 한숨지을 테니 위대한 동무들은 복창(復唱)만 하라는 식이었습니다. 개인의 자유는 없고 구호만 난무하는 공산주의 선전장의 광장만이 존재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명준은 야외극장 짓는 일에 자원해서 노동 현장으로 나갔습니다. 그는 거기서 발을 헛디디면서 떨어져 다치게 되고, 입원해 있는 동안 위문 공연을 온 국립 극장의 발레리나 은혜를 알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퇴원한 명준은 취재 명령을 받고 중국의 집단 농장으로 갑니다. 거기서 그가 발견한 것은 아무런 욕망 없는 무겁고 무기력한 분위기였습니다. 명준이 그것을 그대로 기사화하자 그는 반동적인 생활감정에서 자신을 청산하지 못했다는 당의 비판을 받게 됩니다.

밖에서 마음을 둘 곳 하나 없었던 명준은 유일한 탈출구인 은혜와의 사랑으로 정서적 안정을 찾습니다. 3월 중순 어느 날 저녁, 오겠다는 그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으며 이튿날 저녁 신문에서 모스크바 예술단으로 은혜 일행이 떠난 사실을 알았습니다.

마침내 6.25가 터졌습니다. 명준은 인민군 정치보위부 장교 신분으로 서울에 와서 우익 사상범을 다루던 중 옛날 부친이 월북한 후, 홀로 남은 자신의 생활을 보살펴 주었던 아버지 친구의 아들 태식을 만났습니다.

태식은 소형 사진기를 가지고 공산군의 군사 시설을 찍은 혐의로 체포되어 있었습니다. 명준은 태식을 면회하러 온 윤애를 만나게 되었고, 윤애는 뜻밖에도 태식과 결혼해 있었습니다. 명준은 잠시 증오심이 불탔으나 나중에 그 둘을 탈출시키고 자원하여 낙동강 전선으로 나갔습니다.

이 낙동강 전선에서 그는 뜻밖에 간호병으로 와있는 은혜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자기들만의 밀실인 동굴에서 밀회를 즐겼습니다. 전세(戰勢)는 나날이 북한군에게 불리해져만 가고, 머지않아 총공격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은혜는 죽기 전에 열심히 만나자고 속삭였습니다. 그날 밤 명준은 은혜를 두 시간 가까이 기다렸으나 그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날은 낙동강에 물이 아니고 피가 흘렀다고 할 정도로 유엔 공군기의 폭격이 심했습니다. 이날 임신한 은혜는 죽었고, 명준은 포로가 되었습니다.

- “동무는 어느 쪽으로 가겠소?”
- “중립국”

종전이 되고 포로 석방 절차가 진행되어 송환 등록이 시작될 무렵, 명준은 어디로 갈지 갈팡질팡했습니다. 명준은 자기가 살아왔던 북쪽에는 사적 영역인 밀실이 전혀 없고 오직 사회적 영역인 광장만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종교에 대한 믿음 없이 절하는 것이 고통스럽듯, 자기가 살아본 북쪽의 스탈리니즘 사회에 대한 믿음 없이 정치의 광장에 서는 것도 두려웠습니다.

명준이 제3국을 택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그것이 바로 자기를 위해 마련된 조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북과 남 양측의 설득자들은 서로 제 나라를 택하라고 권유했지만, 명준은 끝내 남한도 북한도 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무도 자신을 알지 못하는 그런 곳에서 될 수 있는 대로 마음 쓰는 일이 적고 단순히 반복하면 되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중립국으로 가는 인도 선박 타고르 호에 올라탔고, 뱃머리에서 회상에 잠겼던 명준은 자기가 참으로 오랫동안 무엇인가에 홀려있음을 깨닫습니다.

명준은 그가 총으로 쏘려고 겨누었던 크고 작은 두 마리의 갈매기가 윤혜와 윤혜가 임신했던 자기 딸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갈매기들, 자유롭고 아름다운 생명에게 겨누었던 자신의 총이 그토록 많은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가게 한 이념의 잣대라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 “무슨 일이냐?”
- “석방자 한 사람이 행방불명됐습니다.”

그는 이념을 통해서는 유토피아를 찾을 수 없고 오히려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는 유토피아가 어디에 있는지 깨닫고 이내 바다로 뛰어듭니다. 그가 그토록 찾기 위하여 헤매던 푸른 광장이 그에게는 사랑하는 은혜와 딸이 갈매기가 되어 날고 있는 바다이며 이것이 진정한 유토피아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최인훈의 《광장》은 이렇게 끝납니다.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이명준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삶이란 광장과 밀실 간 상호관계와 작용 속에서 균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밀실은 내밀한 개인적인 삶의 공간이며, 광장이란 사회적 삶의 공간을 의미합니다. 명준은 철학도로서 광장은 없고 개인의 밀실만이 있는 남한에서 광장을 찾아 월북했으나, 찾아간 북한의 당 중심의 광장에 절망한 후 은혜와 밀실을 나름대로 꿈꾸었지만 결국, 명준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였습니다.

이명준의 고민은 분단의 현실에 사는 우리의 무거운 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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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배기 2024-02-29 06:57:03
이념에 대한 회의가 난무하는 요즈음, 많은 이들이 한번쯤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에 깊이 공감합니다.
늘 좋은 글 남겨 주심에 고마움을 느끼고 발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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