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우리 어원 나들이] 과와 꽈
[정진명의 우리 어원 나들이] 과와 꽈
정진명 시인, 우리말 어원 고찰 연재 '4-과와 꽈’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4.03.0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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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우리가 쓰는 말에는 무심코 쓰는 것들이 많아서 그 속에는 그렇게 된 까닭이 잘 알려지지 않은 채로 천 년을 흘러갑니다. 마치 무의식 속에 저장된 기억이 갑자기 현실로 나타나는 것과 같습니다. 예컨대 우리는 金을 ‘금’과 ‘김’ 2가지로 소리 낸다는 사실 같은 것이 그런 것입니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데, 그 안을 살펴보면 그럴 만한 사연이 있고, 그 사연은 오랜 역사와 문화가 만들어 낸 잠력 같은 것입니다.

金을 ‘김’과 ‘금’ 둘로 발음하는 사실은 이미 제가 설명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어원상고사』를 연재하며 말씀드렸죠. 지명에서 금과 김으로 나뉘는 북한계선이 한강 언저리입니다. 한국전쟁 때 남북 간에 격렬한 전투지역이었던 ‘金化’는 ‘금화’와 ‘김화’라고 둘 다 읽습니다. 하지만 경상도로 가면 ‘金川’을 ‘김천’이라고 읽죠. 이것은 황금을 친(čin)이라고 발음하던 인도 드라비다 언어의 영향입니다. 가락국의 지배층이 드라비다어를 썼습니다. 이들 해양 세력이 한반도의 북부로 세력을 확장하다가 한강 언저리에서 북쪽에서 내려온 다른 초원 세력과 만나서 대치한 자취이죠. 

이렇게 새로운 설명을 해놓으면 그냥 받아들이지 못하고 꼭 탈을 잡는 놈들이 나타납니다. 전라도의 ‘금구’나 경북의 ‘금오산’은 뭐냐는 식이죠. 이런 질문을 하는 놈들의 머릿속에는 똥만 가득하여 입만 열어도 구린내가 진동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코를 움켜쥐는데도 저만 홀로 그걸 모르죠. 제가 방금 북방 초원 세력과 남방 해양 세력이 만나서 대치했다고 했습니다. 대치의 결과는 어찌 되었을까요? 그런 질문은 대치의 결과를 전혀 생각지 못하고 말꼬리만 붙잡으려던 것임을 이런 질문이 보여줍니다. 해양 세력이 한강 이북까지 진출했다가 다시 떠밀려 철수한 증거라고 보면 안 될까요? 이게 제가 사정을 해야 할 일일까요?

어찌 되었거나 이런 기억들은 우리의 무의식에 남아서 아직껏 영향을 미칩니다. 역사 용어도 그렇고 우리의 일상용어도 그렇습니다. 이제 설명할 ‘과, 꽈’가 그렇습니다.

우리말에는 ‘사이시옷’ 현상이 있습니다. 순우리말이 만나면 느닷없이 ‘시옷’이 끼어듭니다. 예컨대, 시내와 물이 만나면 ‘시내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시낸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나무와 골이 만나면 ‘나무골’이 아니라 ‘나뭇골’이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갑자기 끼어든 이것을 사이시옷이라고 합니다. 

사이시옷은 우리말이 다른 말과 결합할 때도 나타납니다. ‘화로(火爐)’와 ‘가’가 만나면 ‘화롯가’가 되죠. 이렇게 우리말이 어떤 결합을 할 때 마치 부레풀처럼 두 말을 찰싹 달라붙게 하는 것입니다. 외래어끼리 붙을 때는 사이시옷이 끼어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순우리말이 아닌 외래어끼리 붙을 때도 이럴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말 중에 과(科)가 있습니다. 예컨대 병원에 가면 선택을 해야 합니다. 외과와 내과. 이건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까요? 몸에 칼을 대느냐 안 대느냐에 따라 나뉩니다. 몸에 칼을 대는 수술을 하면 외과, 칼을 대지 않는 방법을 쓰면 내과. 심장 내과가 있고 외과가 있다면 심장을 놓고서 수술을 하느냐 약물을 쓰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는 ‘외과’라고 읽지 않습니다. 외과라고 써놓고서는 ‘외꽈’라고 읽죠. 왜 그럴까요? 아무도 이에 대한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어쩌면 제가 소견이 좁아서 못 본 것일 수도 있죠.) 그래서 이에 대한 제 나름대로 답을 하려고 이 글을 씁니다. 

대학 생활을 하다 보면 이상한 걸 발견합니다. 학과의 사무실을 ‘과사무실’이라고 하는데, 발음은 ‘꽈사무실’이라고 합니다. 이 ‘꽈’는 ‘학과’의 영향입니다. 학과를 ‘하꽈’라고 발음하는데, ‘하’를 빼고 난 뒤에도 기역을 물려받은 ‘과’가 ‘꽈’로 발음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렇게 계통의 한 갈래를 가리키는 말에 ‘科’라는 한자가 붙는데, 이것을 무심결에 ‘꽈’라고 읽는 것입니다. 

이런 기이한 현상은 사이시옷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느닷없이 끼어드는 것들은 꽤 있습니다. 예컨대 ㅎ종성체언도 그렇습니다. ‘땅’의 옛 모습은 ‘ᄯᅡㅎ’입니다. 보통은 ‘따’로 쓰이다가 토씨 ‘ㅣ’를 만나면 ‘따히’가 됩니다. 이것이 홀로 쓰일 때는 ‘따’인데 다른 것과 결합하면 꼭 자기 정체를 드러냅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ㅎ이 ㅇ으로 변하여 ‘땅’으로 자리 잡습니다. 

‘조’와 ‘쌀’이 만나면 ‘좁쌀’이 됩니다. 여기서는 갑자기 비읍이 튀어나오죠. 그래서 15세기 표기에서는 ‘ᄡᆞᆯ’로 나타납니다. ‘저’와 ‘때’가 만나면 ‘접때’가 됩니다. 15세기 훈민정음 표기에서는 ‘ᄣᅢ’로 나타납니다. 

문자 표기와 그것을 발음하는 현실 음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가 없는 것이 가장 좋은 문자입니다. 하지만 완벽한 문자는 없죠. 이렇게 표기와 발음 사이에 틈이 벌어졌을 때 어원을 연구하는 사람은 바짝 긴장해야 합니다.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릅니다. 적의 낌새를 더듬는 검객처럼 칼코등이를 민 엄지에 힘을 바짝 주고 온 신경을 뻗쳐서 살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틈새를 보면 한순간에 엿 먹이고 달아나는 게 어원입니다. ‘엿 먹인다’는 말이 촌스럽다고 느껴지는 분은, 이 글을 읽을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당신을 로그아웃시킵니다. 으하하하.

말이 나온 김에, ‘엿’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갈까요?

우리가 안 좋은 상황을 말할 때 쓰는 말 중에 ‘엿 먹다’는 말이 있습니다. ‘엿’이 먹을거리를 가리키는 줄 알고, ‘엿 먹으라’고 권하며 웃기도 하는데, 그 엿이 아닌 것은 다들 아실 겁니다. 

‘엿이 쓰인 말은 이뿐이 아닙니다. ‘엿보다, 엿듣다’ 같은 말이 있죠. 언뜻 보면 ‘엿’이 ‘옆’과 같은 말로 보이는데, 내용을 잘 보면 ‘엿’은 ‘몰래’이 뜻이 있습니다. 몰래 보는 것이나 몰래 듣는 것이죠. ‘엿 먹다’도 이것의 연장선에서 이해하면, ‘그 사람이 모르게 방해될 만한 것을 집어넣다.’는 뜻이 됩니다. ‘골탕 먹다’와 똑같은 말이죠. 저절로 일이 어그러지도록, 당사자 모르게 어떤 조건을 만들어 둔다는 뜻입니다. 

‘엿’의 옛 표기는 ‘여ᇫ’인데, 이 말에 대응하는 한자는 ‘狙, 伺, 窺’입니다. 뭔가를 노리고 조용히 살펴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엿 먹다’는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조건 때문에 일이 어그러졌을 때 하는 말입니다. ‘엿 먹이라’고 하는 것은, 당사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일을 어그러뜨리라는 것이죠. 이렇게 보면 ‘엿’에서 다른 겨레의 말 냄새가 풀풀 나는데, 아직 거기에 대응하는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죄송!

‘여ᇫ’은 이 밖에도 ‘여우’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여우의 옛 표기가 ‘여ᅀᅵ’입니다. 그래서 지방에 따라 ‘여우, 여수, 여시, 여사’처럼 다양하게 발음됩니다. 여우의 특징이 뭐냐면 얄밉다는 것입니다. 정체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죠. 그래서 분명히 자취는 남았는데 실체는 알 수 없는 짐승이기에 이름이 그렇게 붙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엿’도 ‘엿보다’의 그 ‘엿’과 똑같습니다. 

‘골탕 먹다’의 ‘골탕’은 ‘곯+앙’일 텐데, 히읗이 티읕으로 바뀐 모양새입니다. 아마도 뒤의 움직씨 ‘먹다’ 때문에 ‘설렁탕, 곰탕’에서 보이는 음식을 가리키는 말로 전의된 것이 아닌가 추정합니다. 골탕 먹었다는 말은 뭘 하기는 했는데, 결과가 헛것이 되어 보람이 없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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