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우리 어원 나들이] 태껸과 태권도
[정진명의 우리 어원 나들이] 태껸과 태권도
정진명 시인, 우리말 어원 고찰 연재 '6-태껸과 태권도’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4.03.21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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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껸의 스승' 송덕기 옹(서울 황학정, 1958년 성낙인 찍음)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말은 버릇이어서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습니다. 그렇게 길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많듯이, 한번 든 버릇이 고쳐지는 데도, 길드는 데 걸리는 시간만큼이나 많이 걸립니다. 그런 말 중에서 앞서 알아본 ‘김, 금’, ‘과, 꽈’ 이외에 또 하나 쉽게 눈에 띄는 것이 있습니다. 태껸과 태권도가 그것입니다.

태권도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유학한 학생들이 오키나와의 맨손 무예인 가라테를 배워와서 우리나라에서 도장을 열면서 붙인 이름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 민족 고유의 발재간이 곁들여지면서, 가라테와는 다른 몸짓이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우리나라에서도 ‘공수도(空手道)’, ‘당수도(唐手道)’라고 했는데, 일본어로는 둘 다 ‘가라테’라고 발음됩니다. ‘공수’는 맨손 무예라는 뜻이고, ‘당수’는 당나라에서 비롯한 무예라는 뜻입니다.(김용옥, 『태권도 철학의 구성 원리』) 뜻은 다르지만, 소리는 같죠.

당수도는 중국에서 전래된 오키나와의 옛 무술을 근대 일본에서 스포츠로 만든 것이고, 그것을 우리나라 유학생들이 배워와서 발기술을 덧붙여 새로운 무술을 만든 것이 ‘태권도’입니다. 처음에는 태수도(跆手道)라고 했다가 태권도(跆拳道)로 바꾸었습니다.(최홍희, 『태권도와 나』) 아마도 일본말을 피하려고 그런 것 같은데, 중국무술에서 주먹질하는 것을 권법이라고 하고, 무예도보통지에도 그렇게 나오니, 이것은 적절하게 잘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이것을 ‘태권도’라고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태꿘도’라고 하죠. 태권도가 구사하는 기술을 많이 본 사람들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태권도 전에는 ‘태껸’이 있었죠. 우리가 맨몸으로 싸움박질하는 것을 누구나 ‘ 태껸’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그 뒤에 나타난 비슷한 몸짓 무예를 덩달아서 저도 모르게 그렇게 부르는 관성이 생긴 것입니다.(『태권도 철학의 구성 원리』) 이 관성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요?

원래 태껸에 관한 첫 기록은 구한말의 『해동죽지』라는 책이고, 거기에 ‘탁견(托肩)’으로 나옵니다. 송덕기 옹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타끼언’으로 발음되다가 ‘태껸’으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ㅣ모음 역행동화’라고 하죠. 태껸계에서도 그렇고 국어학계에서도 그렇고 왜 이 무예가 태껸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제가 처음으로 그 가능성을 제기한 적 있습니다.(『국궁논문집』, 『활쏘기의 어제와 오늘』) 간단합니다. 아이누어에서 온 말이기 때문에 오늘날의 언어 감각으로는 알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아이누어에서 태껸과 비슷한 말로는 ‘ték(手), téke(腕), téknum(拳), tékpet(指)’가 있습니다.  이 말들은 우리말의 '두드리다'의 '둗', '닫다'의 '닫'과 같은 뿌리를 보여주고 있죠. 일본어에서 두드린다는 말은 'tataku'여서 역시 같은 뿌리를 보여줍니다.

태껸과 관련하여 보면 아이누어에서 팔목이나 팔(腕)을 뜻하는 'téke'가 가장 많이 닮았습니다. 이것을 현재의 발음으로 옮기면 '테케'쯤이 되니, '태껸'과 다른 점이 있다면 뒷글자의 끝소리가 유성음인 'ㄴ'으로 끝난다는 점입니다만, 주먹을 뜻하는 아이누어 'téknum'을 보면 끝에 'm'으로 끝나서 유성음화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이제 태껸은 아이누어에서 유래하여 우리말의 저층에 정착한 말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조선 시대 내내 돌싸움과 이런 싸움박질을 말려야 한다는 조정의 논란이 많았는데, 끝내 금하지 못했습니다. 백성들의 풍속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습니다. 『국궁논문집』 제5집은 2006년도에 나왔습니다.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죠. 이 정도면 태껸하는 사람들도 많고 그래서 태껸이라는 말의 유래가 어디서 온 것인지를 다들 알 만도 한데, 이상하게도 인터넷을 뒤져보면 태껸의 어원에 대해서 계속 헛소리들을 합니다. 학자들조차도 주먹구구로 개똥철학을 열심히 내세웁니다. 언제까지 이러실지들 지켜보는 재미를 주십니다. 하하하.

한 가지 더 짚고 가겠습니다. 우리나라의 가장 많은 무술 이름이 ‘도’일 것입니다. 태권도, 국선도, 선무도, 합기도, 해동검도..... ‘도’가 들어가는 이름 중에서는 기원을 단군 시대부터 삼국 시대까지 올려잡는 주장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도’라는 말은 1930년대 일본제국주의 문화의 산물이라는 것을 모르고 하는 주장입니다. 일본제국주의가 일본의 전통 문화를 제국주의 교육용으로 재편성하여 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말이 ‘도’입니다. 유도에서 처음 시작되었죠. 원래는 ‘유술’이었던 것을 일본제국주의 교육으로 편입되면서 ‘유도’라고 한 것입니다.

이후 쇳덩어리를 들어올리는 스포츠에도 ‘도’가 붙어서 ‘역도(力道)’라고 하기에 이릅니다. 일본에서는 꽃꽂이까지 ‘화도(華道)’라고 합니다. 이들 일본인이 말하는 ‘도’는 우리 사회에서 통념으로 받아들이는 ‘도’와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일본의 도는 형식과 절차를 말하고, 한국의 도는 진리의 깨달음을 말합니다.(『활쏘기의 나침반』)

이런 것들은 어차피 외국에서 들어와서 우리 사회에 정착한 것이니, 뭐 그럴 수 있다고 치겠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궁도’입니다. 활쏘기는 우리나라가 종주국입니다. 활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데, 가장 멀리 날아가고 가장 정확합니다. 지금 활터에서 쏘는 활을 들고 대충 쏴도 300미터는 너끈히 날아갑니다. 그래서 우리 활을 세계 활쏘기의 최고라고 말하고, 그런 위대한 유산을 보유한 우리나라를 활의 종주국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활터에서 쓰는 말은 ‘궁도’입니다. 궁도인들이 활터를 차지하고 입에 ‘궁도’라는 말을 달고 삽니다. 궁도는 우리말이 아닙니다. 일본말입니다. 일본제국주의의 산물이죠. 이런 궁도가 해방 70여 년을 맞는데 아직도 우리 활터에서 버젓이 쓰입니다. ‘활쏘기’, ‘궁술’, ‘국궁’ 같은 다른 말로 대체하려고 하면 난리가 납니다. ‘궁도’를 사수하려고 온갖 노력을 멈추지 않습니다. 참 희한합니다. 그런 애정으로 ‘활쏘기’를 키우면 될 텐데요. 우리말을 안 쓰기 위한 이 애잔한 노력은,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 내린 ‘우리말 구박 운동’의 연장선일까요?

한마디만 더 하고 갑니다. ‘태껸’이라고 치니, 글자 밑에 붉은 줄이 나타납니다. 맞춤법 오류를 알려주는 신호죠. 그래서 오른쪽 마우스를 클릭해서 보니 ‘택견’으로 바꾸라고 나오네요. 이 국어학자놈들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난 백 년간 표준어가 ‘태껸’이었는데, 몇 년 전에 ‘택견’도 표준어로 허락한다고 지들 멋대로 결정하더니, 이젠 ‘태껸’을 ‘택견’으로 바꾸라고 지랄하네요. 한국인이 한국에서 한국어를 하며 산다는 것은, 정말 미칠 일입니다.

지랄이라니, 말이 너무 심하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 않아도 될 짓을 하는 이런 짓을 지랄이라고 하는 겁니다. 전라도 사투리로는 옘병인데, 염병을 그렇게 발음하는 겁니다. 염병이 뭔가요? 간질을 말하는 겁니다. 간질 발작을 옛날에는 ‘지랄’이라고 했고, 그것을 전라도 사투리로 염병이라고 했습니다. 태껸을 태껸으로 하라고 밑줄을 쳐주는 ᄒᆞᆫ글의 맞춤법 지적질에 비하면 옘병이나 지랄은 차라리 애교 수준입니다. ‘우리말 순화 운동’을 해도 모자랄 판에 ‘우리말 구박 운동’을 하시는 국어학자님들의 짓거리는 욕을 먹어도 쌉니다. 이 정도면 육두문자를 날려야 하겠으나, 그나마 어원 어쩌고 하는 곳이니, 이쯤에서 그쳐주는 겁니다.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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