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우리 어원 나들이] 머리
[정진명의 우리 어원 나들이] 머리
정진명 시인, 우리말 어원 고찰 연재 ‘9-머리’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4.04.1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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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이미지. 사진=픽사베이/굿모닝충청
머리 이미지. 사진=픽사베이/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상투’는 아직 어원이 또렷이 밝혀지지 않은 말입니다. 그런데 ‘감투’란 말이 있어서 서로 비교해보면 이 두 말의 성질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말에 똑같이 들어간 ‘투’는 아무리 봐도 ‘털’의 변화일 듯싶습니다. 그렇다면 ‘상’과 ‘감’의 뜻만 밝히면 되겠네요.

‘감투’와 비슷한 말은 만주어에 있는데, ‘kamtu’로 우리말과 똑같습니다. 이것으로 보면 우리가 만주어를 택한 것이 아니라, 만주어가 우리말을 가져간 것 같습니다. 머리가 흩어지지 말라고 전체를 덮는 얇은 망사 같은 것이니, 정수리를 아예 도려내는 여진족들에게는 크게 필요치 않은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 사회에서 이 감투가 벼슬의 지위를 나타내는 표지물로 자리 잡은 뒤에, 신분을 나타내려고 만주족들이 가져다 쓴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감’을 순우리말로 본다면, 크게 2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상감, 대감, 영감’에서 보듯이 ‘감’은 신이나 고귀한 신분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머리에 쓰는 것이라는 뜻이 첫 번째일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는, ‘감싼다’고 할 때의 ‘감’입니다. 흩어지는 머리칼을 감싸서 가지런히 한다는 뜻이니, ‘투’와 어울리면 더욱 뜻이 또렷해집니다. ‘감투’는 흩어지는 머리털을 감싸 안는 도구라는 뜻입니다.

‘상투’도 우리말 같은데, 확신하기 어려운 낱말입니다. 상투를 만주어로는 ‘šangxu’라고 하고, 드라비다어로는 ‘cuncu’라고 해서 아주 비슷합니다. 상투는 숱이 너무 많으니 정수리의 머리칼을 도려내고 가장자리의 머리카락을 가운데로 모아서 말아 묶는 버릇은 우리 겨레의 독특한 버릇입니다. 드라비다인들은 인도에서 온 사람들이니 그들이 그렇게 했을 리는 없습니다만, 이마에 둥글게 감은 머리는 ‘cunċu’이어서 같은 뿌리에서 나온 말로 보입니다. 만주족들도 정수리의 머리칼을 도려내는 것은 비슷하지만 우리처럼 속만 파내는 것이 아니라 뒤쪽만 남기고 나머지를 모조리 도려내니(변발) 우리와도 다릅니다. ‘šang’이나 ‘cun’ 모두 한자 上과 비슷한 소리를 내니, 한자가 들어오면서 영향을 주어 ‘상투’로 자리 잡은 듯합니다. 현재로서는 이것이 가장 확실한 어원이 될 듯합니다. 좀 더 깊은 연구를 기다리면서 아쉽지만 이쯤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감투와 관련하여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감투는 벼슬을 뜻하는 말입니다. ‘벼슬’은 ‘볏+을’의 짜임이고, ‘닭벼슬’의 그 ‘벼슬’입니다. 닭의 벼슬을 보면 암컷과 수컷이 완전히 다릅니다. 수컷은 머리 위로 검붉은 벼슬이 우뚝 솟았고, 그것이 얼마나 크고 화려하냐에 따라서 수탉의 권위가 결정됩니다. 벼슬이 클수록 덩치도 좋고 암컷을 많이 거느리죠. 바로 이런 것 때문에 사람도 머리에 어떤 장식을 쓰느냐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지위를 나타내게 된 것이고, 그것을 닭의 머리에 빗대어 ‘벼슬’이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말에서 ‘감’은 신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상감, 대감, 영감’ 같은 말에 그 자취가 남았죠. 조선 시대에 접어들면 ‘대감, 영감’은 고위 관료를 부르는 호칭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정2품 이상은 대감, 정3품 이상은 영감이라고 불렀고, 그 밑으로는 싸잡아서 ‘나리’라고 불렀습니다. 임금을 뜻하는 ‘상감’도 맨 꼭대기의 감(존귀한 분)이라는 뜻입니다. ‘감투’의 ‘감’에는 이런 영향도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호칭과 직책명은 다릅니다. 이걸 혼동하면 안 되는데, 현실에서는 아는 체하는 분들이 자꾸 혼동하여 씁니다. 예컨대 ‘교수’는 직책이지 호칭이 아닙니다. 교수라는 직책에 있는 분들을 부르는 호칭은 ‘선생’입니다. 그런데 대학에 가면 말끝마다 ‘교수님! 교수님!’ 해댑니다.

대학이 아닌 일선 학교에서는 모두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예컨대 김 씨 교사를 ‘김 교사’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김 선생’이라고 하죠. 이게 맞는 겁니다. 교수는 대학에 근무하는 사람을 말하는 직책 이름이고, 교사는 중등과 초등에 근무하는 사람을 말하는 직책 이름입니다. 교수나 교사나 호칭은 선생입니다. 직책이 호칭을 대신할 수는 없는 겁니다. 대학에 근무하시는 교수님들! ‘교수’라는 말 너무 좋아하지 말고 ‘선생’이라고 불러달라고 제자들에게 부탁하십시오. 틀린 용법으로 자신을 조롱하지 말아달라고 하십시오. 교수보다 ‘선생’이 훨씬 더 좋은 말입니다. 제가 충북대학교 국어교육과를 다닐 때는 저를 가르친 교수님들이 ‘선생’이 맞는 말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사회의 어리석은 관행을 따르지 않고 자신을 존중할 줄 알았던 그 부분만큼은 지금도 존경합니다.

‘대머리’에 관해 생각해 볼 차례입니다. 길략말로 ‘벌거숭이의’를 나타내는 말은 ‘talaga’입니다. 터키어로 대머리는 ‘daz’이고, 드라비다 말로 대머리는 ‘taţţai’입니다. 그러니 ‘대’는 벗겨졌다는 말입니다. ‘대머리’는 머리칼이 없어서 벗겨진 머리라는 뜻입니다.

비슷한 말에 ‘대가리’가 있는데, 이것의 ‘대’는 앞의 ‘대’와는 좀 다릅니다. 머리는 몽고말로 <toloğai>이고, 두목은 <daraga>입니다. 그러니 같은 ‘대’라도 말의 뿌리는 다르죠. 우리말에서도 ‘대’는 자칫 한자말 ‘大’로 오인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큰 것을 나타내는 순우리말입니다. 한 씨의 본은 청주인데, 그 동네 이름이 ‘대머리’입니다. ‘작은대머리’라는 버스 정류소도 있죠. 이 대머리를 한자로는 원봉(元峰)이라고 번역했고, 실제로는 ‘원마루’라고 부릅니다. 이 ‘원’이 ‘대’와 대응하는 것을 볼 수 있죠.

따라서 ‘대가리’는 크다는 뜻의 ‘대’와 ‘갈’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말입니다. 우리 고어에서 ‘가라’는 크다는 뜻입니다. 머릿속의 ‘골’도 이와 같은 어원이죠. 몸 전체를 총괄하는 것이니 이런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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