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여기 어때?] 대전 효의 상징 안동권씨 유회당(有懷堂) 종가 일원
[주말에 여기 어때?] 대전 효의 상징 안동권씨 유회당(有懷堂) 종가 일원
대전시 중구 무수동 유회당과 여경암, 거업재, 산신당까지
  • 조강숙 시민기자
  • 승인 2024.04.13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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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조강숙 기자] 

대전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효(孝)를 주제로 한 뿌리공원이 조성된 효의 도시다. 그중에서도 ‘효의 상징’이라면 단연 유회당과 유회당 종가 일원을 꼽는다.

도심공원과 천변 등에 활짝 피었던 벚꽃이 거의 떨어지고 없는 요즘, 유회당 인근 보문산 자락의 벚꽃은 아직도 생생하다. 조금이나마 늦도록 봄 풍경을 보며, 300여 년 전 한 선비의 대단했던 효심을 생각해 보자.

유회당 종가(오른쪽)와 광영정
유회당 종가(오른쪽)와 광영정

▶ 안동권씨 유회당 종가와 4개의 이름을 갖고있는 정자(광영정)

유회당 종가는 대전시유형문화재 제29호로(2001년) 지정 조선 숙종∼영조 때 호조판서 등을 지낸 유회당(有懷堂) 권이진(權以鎭1668~1734) 선생의 집이다.

화재로 소실된 것을 1788년 후손들이 현재의 자리에 옮겨 지은 것이다.

'ㄱ'자형 안채, 아담한 크기의 사당, 초가지붕을 얹은 모정, 배회담(徘徊潭)이라고 부르는 네모난 연못과 은행나무 보호수가 마을의 경관과 잘 어울린다.

유회당 종가 앞 4가지 이름을 가진 모정
유회당 종가 앞 4가지 이름을 가진 모정

특히 모정은 4개 방위마다 다른 이름의 현판이 걸려있다. 남향으로 광영정(光影亭, 연못에 비친 풍경을 보는 정자), 북향(종가 쪽)은 인풍루(引風樓, 바람을 불러오는 누각), 동향은 관가헌(觀稼軒, 농작물을 바라보는 마루), 서향은 수월난(受月欄, 달을 맞이하는 난간)이다.

이름뿐 아니라 현판의 글씨체도 각각 다르다. 방위별로 바라보는 풍경이 다르다고 각각 다른 이름을 붙이다니 멋지지 않을 수 없다.

 

유회당
유회당

 

▶ 유회당과 삼근정사, 유회당 판각, 기궁재

대전시 유형문화재 제6호(1989년)로 지정된 유회당은 권이진 선생이, 아버지 권유(權惟) 선생이 돌아가신 뒤 묘를 쓰고, 그 묘 앞에 지은 (1700년대 초) 별당이다.

권유 선생의 신도비
권유 선생의 신도비

묘소의 남동쪽에 세운다는 신도비가 원래의 위치에서 옮겨져 유회당 진입로 쪽에 서있다.

바깥 계단을 올라 높이 지어진 대문 솟을삼문은 충효문(忠孝門)이다. 오른쪽 문으로 들어서면 활수담(活水潭)이라는 네모난 연못 작은 돌다리를 건너 계단으로 올라가면 유회당이다.

유회당 충효문
유회당 충효문
유회당 활수담
유회당 활수담

유회당은 앞면 4칸·옆면 2칸 건물, 가운데 넓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을 배치함. 앞면과 양쪽 면에 ㄷ자로 난간이 돌려진 툇마루가 있다.

유회당
유회당

선친의 제사는 묘소에서 지냈고, 다만 우천시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것으로 이곳에서 무수동과 유등천이 한눈에 바라보였었다. 1999년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가 개통하면서 풍경을 가리는 아쉬움이 있다.

유회당 삼근정사
유회당 삼근정사

삼근정사(三近精舍)는 시묘소로 지어, 이곳에서 공부를 하며 선친의 묘소를 돌봤다. 三近은 ’세가지가 가까운’이라는 뜻으로, 그 세 가지가 무어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다른 내용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기궁재에 기거하고 있는 권이진선생의 11대손에 따르면 먼저 집이 가깝고, 선친의 산소가 가깝고 천석(泉石) 즉, 산수의 경치가 가깝다고 그렇게 부르는데, 원래는 수만헌(收漫軒)이라는 이름(흩어진 마음을 돌샘에 씻고, 마음을 모은다)으로 불렀다고 한다.

삼근정사 뒷담장 너머 권이진 선생 부모의 합장묘
삼근정사 뒷담장 너머 권이진 선생 부모의 합장묘

삼근정사 마루 벽에 삼근정사, 수만헌, 하거원(何去園) 세 개의 현판이 걸려있다. 삼근정사 뒤쪽 담장 너머에 유회당 선생의 부모님(아버지 권유 선생과 어머니 은진송씨) 합장묘가 있다.

 

사우(왼쪽)와 삼근정사
사우(왼쪽)와 삼근정사

삼근정사 왼쪽으로 3개의 당으로 이루어진 사우(사당)가 있는데, 가운데는 권이진 선생의 부모, 왼쪽은 자신을 돌봐준 선생의 형님 내외, 오른쪽은 먼저 가신 부인(세종대왕의 7대 손녀)을 모셨다. 판옹집과 만해문집, 유회당집의 판본을 한동안 보관하기도 해 장판각으로 알려졌으나 판옹집과 만해문집은 후에 도산서원 숭모재로 옮겼다.

 

유회당 판각
유회당 판각

가장 먼저 이 세 전각이 지어졌고, 약 100여 년 후 증손자가 장판각(대전시유형문화재 제20호, 1991 지정)에 유회당의 글을 모아놓은 판목, 성리학 관례 자료, 일본과 관계되는 외교자료, 중국 사신으로 갔을 때의 기록 등이 보관돼 있다.

 

유회당 기궁재
유회당 기궁재

기궁재(奇窮齋)도 그때쯤 후손들이 지은 것으로 훼손이 된 것을 1920년대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유회(有懷)'라는 말은 중국 명나라 때 학자인 전목재의 ‘명발불매 유회이인(明發不寐 有懷二人)'이라는 시에서 따온 말로, 부모를 간절히 생각하는 효성스러운 마음을 늘 품고 싶다는 뜻을 가졌다고 한다. 3년 시묘살이를 하고도, 집(유회당 종택)에서 나와 이곳에 와서 공부하며 매일 선친의 묘를 돌본 효자 권이진 선생답다.

 

▶ 여경암과 거업재, 산신당

유회당 진입로에서 왼쪽길 운남로85번길을 따라 약 700m 동쪽으로 여경암과 거업재가 있다.

거업재(앞쪽)와 여경암
거업재(앞쪽)와 여경암

여경암은 권이진 선생이 교육장소로 쓰기 위해 숙종 41년(1715)에 지었다. 지금은 불교 법당이다. 여경암을 중심으로 앞쪽에는 서당건물로 사용했던 거업재(居業齋), 뒤쪽에 산신당(山神堂)이 자리잡고 있다.

여경암(왼쪽 앞)과 산신각 (뒤쪽)
여경암(왼쪽 앞)과 산신당 (뒤쪽)

여경암이라는 이름은 중국의 사마온공이 자제와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강당인 ‘여경사(餘慶寺)'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앞면 5칸, 옆면 3칸 규모인데, 좌우 뒤쪽으로 2칸씩 덧붙여 ㄷ자형이다.

여경암
여경암(전면)

여경암의 원래 위치는 유회당 부친의 묘소 바로 옆이었는데, 지은지 얼마 되지 않아 화재가 거듭 발생하자 현재위치로 옮겨 지으면서 서당 용도로 거업재(居業齋)를 같이 건축했다. 거업재에 대한 시도 여러 편 남겼는데, 현재는 여경암 스님들의 거처로 사용되고 있다.

산신당
산신당

여경암 뒤쪽 산신당은 고종 19년(1882)에 앞면과 옆면이 각각 1칸 규모로 단촐하게 지은 건물로, 안쪽에는 불단을 만들어 산신 탱화를 걸어 놓았다.

산신당 왼쪽 옆으로 야외에 석조 석가모니, 지장보살, 아미타불 같은 불상들이 조성돼 있다.

7, 8월 경 여경암 앞 60여 년 된 배롱나무가 개화하면 더욱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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