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우리 어원 나들이] 사람에 관한 말 3
[정진명의 우리 어원 나들이] 사람에 관한 말 3
정진명 시인, 우리말 어원 고찰 연재 ‘14-사람에 관한 말 3’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4.05.16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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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23일 서울 황학정에서 열린 ‘2023 종로 전국 활쏘기 대회’에서 활터음악공연단이 활쏘기 획창을 공연하고 있다. 사진=온깍지협회/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이 밖에도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주 많다는 것을 다음 낱말에서 알 수 있습니다. 될뻔댁, 불한당, 철록어미, 허수아비, 옹춘마니, 왜골, 외골수, 불목하니, 지질컹이, 철릭짜리, 치룽구니, 구덕바우.

댁(宅)은 한자말인데, 주로 출신 지역에 붙여서 시집간 여성을 가리키는 말로 많이 쓰입니다. 영주댁, 아산댁, 청주댁, 증평댁, 하는 식이죠. 될뻔댁은 일이 되려다 안 된 사람을 놀림조로 하는 말입니다.

불한당(不漢黨)은 몽골어로 ‘뻔뻔스러운, 싸우기를 좋아하는’이 ‘burungxui’인데, 떼 지어 다니는 습성 때문에 ‘당’이 붙어서 된 말입니다.

왜골의 ‘골’은 ‘가리’와 같은 말로, 역시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강골, 약골’인데, ‘골골거리다’는 말이 있어서 ‘골’이 한자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왜골은 허우대가 크고 말과 행실이 얌전하지 못한 사람을 말합니다. 외골수는 이와 다릅니다. 이것은 ‘외곬+수(手)’의 짜임입니다. ‘외’는 ‘외로움. 오솔길’에서 보듯이 좁다는 뜻이고, ‘곬’은 방향이 하나뿐인 길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손(手)이 사람을 대신하는 말로 쓰이는 경우는 많습니다. 소방수, 포수, 목수, 석수, 도편수, 도수(刀手).

불목하니는 절에서 불 때고 밥하는 일꾼을 말합니다. 불은 불이고, 목(맑다, 묽다)은 물 긷는 것이고, ‘하니’는 ‘한 이’입니다.

바우의 경우는 돌이 큰 것을 말하는데, ‘돌’이 옛날에 병들지 말고 돌처럼 단단하게 잘 자라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고, 그 돌보다 더 큰 바위도 사람 이름에 많이 붙습니다. 구두쇠를 ‘구덕바우’라고도 하는데, ‘구두’와 ‘구덕’이 같은 말이니, ‘굳’으로 정리할 수 있죠.

‘떨거지’는 친척 붙이나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의 낮춤말입니다. 몽골어로 ‘주위에, 곁에’를 ‘dergede’입니다. 똑같습니다.

전혀 우리말 같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사나운 밤 귀신을 ‘두억시니(夜叉)’라고 하는데, 몽골말입니다. ‘doğsini’가 ‘잔인한’을 뜻하는 말입니다.

‘초라니’는 섣달그믐날 귀신을 쫓는 나례 의식에 등장하는 창녀 풍의 인물인데, 드라비다어에서 온 말입니다. 창녀를 ‘cũḷan’이라고 합니다.

탈놀이에 ‘미얄할미’가 나옵니다. 제주도에서는 삼신할미를 뜻하는 말로 쓰이는데, 만주어로 아기 우는 소리는 ‘miyar miyar’이고, 드라비다어로 ‘어릴 적, 어린아이’는 ‘maŗalai’입니다. 그러니까 ‘미얄할미’는 어린애 느낌이 나는 할머니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미얄할미는 귀여운 상입니다. 앞서 본 ‘초라니’도 드라비다어에서 온 말이니, 미얄할미도 같은 곳에서 온 것으로 보는 게 합당할 것 같습니다.

기생과 창녀는 다릅니다. 이 둘이 결합한 것을 ‘창기’라고 하는데, 이런 현상은 일제강점기에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기생은 비록 8천으로 여겼지만, 조선 시대의 엄연한 한 계층이었습니다. 8천이란, 조선 시대에 여덟 가지 천민을 말하는데, 사노비(私奴婢), 중, 백정, 무당, 광대, 상여꾼, 기생, 공장(工匠)을 말합니다. 그래서 ‘유생, 선생, 학생’ 같은 층에게나 붙는 ‘생’을 붙여서 ‘기생(妓生)’이라고 했습니다. 조선 왕조에서는 이들을 보호해야 할 계층으로 인식하고 그렇게 했다는 뜻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들은 기예를 전담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남성 중심의 유교 사회였다고는 하나, 여성이 꼭 필요한 영역이 있기 마련이고, 예술에서는 이 부분이 더욱더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이때 기생은 궁중 행사나 지방 관아에서 주관하는 관급 행사에 동원되는 사람들이었고, 자신들의 기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일류 스타나 탤런트 같은 직종이었습니다. 왕실에 드나들며 기예를 보이는 기생들은 정승들도 감히 어쩌지 못했습니다.

한일 강제 합병으로 자신을 보호해 줄 조선이 망하자, 이들은 각자도생에 나섭니다. 그러다 보니 몸을 파는 천한 일까지 굴러떨어진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죠. 그것이 창기입니다. 몸을 파는 그들을 욕할 게 아니라 그들을 내팽개친 정부를 욕해야 합니다. 나라가 버렸어도 이들은 기생학교 ‘권번’을 만들어서 전통 문화예술을 현대로 이어주는 위대한 노릇을 해냈습니다.(기생의 후예들은 수백 년간 자신들을 가리키던 ‘기생’이란 말을 버렸습니다. 오늘날 전통 예능인을 ‘기생’이라고 했다가는 욕을 바가지로 먹죠.)

이들과 달리 몸 파는 사람을 ‘창녀’라고 합니다. 이들은 손가락질받는 대상이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몰래 숨어서 하는 사람이 생기고, 그런 이를 사람들은 ‘은근짜’라고 했습니다. 이 얘기를 하려고 앞서 길게 얘기를 꺼낸 것입니다. 은근짜는 ‘隱君子’를 말합니다. ‘子’가 세게 발음되면서 ‘짜’가 되었고, 이것이 어떤 존재의 양상을 나타내는 말로 자리 잡았다고 얘기하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짜’라는 말이 자리 잡자, 그 주변에 많은 말들이 생깁니다. ‘공짜, 생짜, 헛짜, 진짜, 가짜, 민짜, 몽짜, 앙짜, 타짜’ 같은 말이 그것이죠.

‘자’가 ‘짜’로 발음되는 것은, 의미를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자식’은 사람의 아들딸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친근한 사람끼리 발음을 세게 하면 욕 아닌 욕이 됩니다. ‘짜식!’ 하면 욕이지만 욕처럼 들리지 않으면서 관계를 친밀하게 해주죠. 그러다 보니 마치 우리말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앞에 한자말이 붙으면서도 우리말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활터에서 활량이 과녁을 땅 하고 맞히면 뒤에서 맞혔다고 창을 해줍니다. 그것을 ‘기생획창’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획창을 해주는 사람들을 ‘획창기생’이라고 하죠. 이 말을 버려야 할까요? 그러면 무슨 말로 바꿔야 할까요? 말의 주인들이 제 말을 버리고 떠난 활터에서 새삼 묻습니다.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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