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자전거 타고 제주 한바퀴] ①목포에서 제주항, 다시 협재까지
[임영호의 자전거 타고 제주 한바퀴] ①목포에서 제주항, 다시 협재까지
  • 임영호 코레일 상임감사
  • 승인 2015.10.2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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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 코레일 상임감사는 평소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기로 유명하다. 4대강 자전거길은 물론 전국일주도 다녀왔다고 한다. 그는 다독을 즐기는 독서광이자 사색의 명수다. 그래서 그가 SNS를 통해 간간이 남기는 여행기는 깊은 철학적 사유와 진한 감성을 담고 있다. 그런 그가 이번엔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를 여행하며 기록한 여행기를 맡겨왔다. 지난 9일부터 12일까지의 기록이다. 사진을 찍어놓은 듯 생생하게 묘사한 그의 글이 묘한 흥분을 일으킨다.

# 20015. 10. 9. KTX로 목포까지, 다시 배로 제주에

잠이 안 왔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다. 자전거로 제주도 일주하기.

늦은 밤 11시에 월드컵 예선에서 가장 중요한 쿠웨이트전이 열렸다. 안보기로 작정했다. 누웠다. 눈을 감았다. 내 핸드폰에 새벽 5시 알람을 해놓았다. 한글날 10월 9일은 휴일이다. 이 날을 포함하여 3박4일간 제주도 라이딩을 하기로 했다. 내일 오송역에 가서 목포행 7시 3분 기차를 타야한다.

어제는 나의 애마 청륜(靑輪)을 3등분으로 분해하여 자전거 백에 넣었다. 말없는 짐승을 억지로 팔다리를 묶어서 좁은 푸대자루에 쳐 넣는 것 같아 싫었지만 KTX를 타기 위하여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KTX는 자전거를 태우지 않는다.

자전거 분해는 처음이다. 어제 나는 퇴근 후 자전거숍에 들려 주인에게 간청하여 몇 번이고 분해하고 조립하는 방법을 배웠다. 뒷바퀴는 좀 복잡하게 생겨서 겁부터 났지만 생각보다는 단순했다.

새벽 한 시에 잠이 깼다. 핸드폰으로 쿠웨이트전 경기결과를 확인했다. ‘구자철이 한 골을 넣어 이겼구나’. 안도한 후 다시 잠을 청했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핸드폰으로 제주도 날씨를 확인했다. 비가 올 확률은 60%. 아침에 산발적으로 살짝 비가 오고 오후부터 차차 갠다고 한다. 바다에 낮은 파도나마 예상되는 것을 보니 바람이 제법 불 것 같다. 짧은 반팔과 반바지로 자전거 타려고 계획했는데 생각이 복잡해졌다. 한참 뒤척이다가 잠이 다시 들었지만 4시 30분이 되자 다시 눈이 떠졌다. 나이 60이 되도 여행의 설렘은 여전한 것 같다.

입이 껄끄러워 도저히 밥알이 넘어 갈 것 같지 않아 우유와 요쿠르트, 사과 하나로 아침식사를 대신했다. 빠진 것 없나 확인을 한 번 더 하고 집에서 나왔다. 간밤에 비가 왔는지 땅 여기저기에 빗물이 고여 있었다. 좀 쌀쌀할 거라는 기상 예보는 정확히 맞았다. 차에 표시된 밖의 온도는 6도다.

차에는 해부한 나의 애마 청륜(靑輪)이 있다. 조심스럽게 운전하면서 열차 출발 30분 전에 오송역에 도착했다. 손님들은 아직 없었다. 일에 열중한 역무원들은 생각보다 활기찼다. 아침에 교대했나?

호남선은 용산역에서 출발한다. 내가 탈 7시 3분 열차는 목포로 향하는 두 번째 열차다. 정시보다 몇 분 늦게 오송역에 도착했다. 정해진 시각에 열차가 도착하는 정시율은 우리가 세계 최고이다. 우리 국민은 1분이 늦어도 사정을 헤아리지 않는다. 그 성화 덕분에 코레일은 분발한다.

자전거는 12㎏ 정도 무게가 나가기 때문에 손으로 들어서 어깨에 메고 열차 내로 옮길 수 있다. 1호차 11D, 맨 앞이다. 문 사이에 상당한 공간 있었다. 불안정한 자세지만 KTX는 진동이 거의 없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목포까지 1시간 35분 걸린다. 가족에게 탑승했다는 것을 알리고 눈을 감았다. 피로가 엄습했다.

오송에서 익산을 거쳐 한 시간쯤 후 광주 송정역에 도착하자 함께 라이딩할 동료가 나처럼 해체한 자전거를 들고 탔다. 그는 광주에서 근무하는 이우현 처장이다. 우리는 제주도의 날씨를 화제 삼으며 열차창문을 통하여 하늘을 쳐다보았다. 흐리멍텅했다. 제주도도 이런 날씨일 것 같다. 흐리멍텅하면 어떠냐? 비만 안 오면 된다.

10여분 지나니 나주 신도시가 보인다. 한국전력 건물이 하나로 우뚝 서 있었다. 이제 30분 지나면 목포역이다. 그 사이에 자전거를 조립했다. 채 4분도 안 걸렸다. 창 너머로 보이는 하늘에 아까보다 파란 공간이 더 많이 보였다. 날씨는 출발할 때 보다 좋은 것 같다. 남쪽으로 갈수록 좋다면 제주도는 더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벌판에는 누런 벼가 황금으로 들판을 수놓았다. 아름다운 가을이다. 허수아비만 볼 수 있다면 50년 전 딱 내 고향 풍경이다.

8시 38분에 정확히 도착했다. 코레일은 20분 이상 지연되면 손님들에게 보상을 한다. 가끔 철도에서 생명을 끊는 사람이 있는데 이럴 때 대개 20분 이상 지연되지만 그럴 때도 당연히 보상한다.

기차에서 내려서 자전거로 10분 정도 달렸다. 목포 여객터미널이 나타났다. 세월호 사건 이 후 신분 확인이 더 엄격하다. 승선표에도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혀 나온다. 2만 8000톤, 4층으로 된 아주 큰 배였다. 우리는 배 2층에 자전거를 두고서 객실로 올라왔다. 객실 맨 꼭대기 갑판에서 보니 유달산과 대불공단이 보였다.

일이 힘들 때 내 어머니는 일을 하면서 당시의 유행가인 '목포의 눈물'을 구성지게 부르곤 했다. 그 어려웠던 보릿고개를 넘기며 홀로 5형제를 키우셨다. 그 노래 중 가장 그 슬픈 대목인 ‘삼악도’가 눈앞에 우뚝 서 있다.

배의 속도는 시속 40㎞. 출발한지 2시간이 되었어도 남해안의 섬들은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진도 섬에서 온 관광객 한 분이 저기가 진도라고 하면서 건물이 옹기종기 있는 팽목항을 가리킨다. 그제서야 나는 바다 물을 쳐다보았다. 물 흐름이 빨랐다.

‘여기가 바로 세월호 사고가 난 맹골수도로구나’. 나는 순간 심장이 뛰었다. 작년에 울돌목에 갔을 때 바다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작년 4월, 봄이 무르익었을 때 나는 춘천에서 서울 변두리인 양주까지 가는 북한강을 라이딩을 했다. 핸드폰에서 속보를 알리는 문자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잠깐 멈추어서 그 문자를 확인했다. 세월호 전복사고였다. 처음에는 위험하다는 속보였으나 중간에 인명피해 없이 잘 구조 되고 있다는 낙관적 소식을 듣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태평양 한가운데도 아니고 바로 육지 근처이기 때문이다.

서울에 가까이 와서 궁금하여 껐던 핸드폰을 다시 열어보니 실종 인원이 수 백 명이라는 슬프고 절망적인 뉴스였다. 아직도 후진국인가? 이것은 압축 성장 속에서 나타나는 구멍이다. 바보 선장이나 관피아 문제, 종교적인 것은 보이는 부분이다. 안 보이는 것이 진실이다. 사람보다 돈을 더 중시하는 문제이다. 이 사고로 국민은 울고 대한민국이 멈췄다.

갑판 위의 사람들은 왁자지껄하며 모두들 즐거운 표정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즐기는 민족이다. 무엇이 즐거운가 여전히 소주를 주고받는다.

바람은 찼다. 나는 한기를 느껴 선실로 들어왔다. 남은 두 시간 동안 잠을 자두어야겠다. 한참 지나니 사람들이 짐을 갖고 나간다. 도착 30분 전이다. 우리도 천천히 움직였다.

배 2층으로 갔다. 트럭과 승용차가 가득하다. 여객보다는 화물이 주요 수입원일 것 같다. 제주항 도착시간은 오후 1시 50분, 거의 5시간 걸렸다. 정해진 시간보다 20분이 늦었다. 바람이 불어서 파도가 일어난 탓이란다.
 

#제주 라이딩 시작, 서부해변을 따라 제주시·애월·협재로

함께 라이딩 하는 한 사람은 코레일 이우현 처장이다. 대전에서 함께 라이딩 할 때 보면 항상 선두였다. 그는 제주도를 두 번째 라이딩 하는 사람이다. 선두인 그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시계 반대방향으로 안내했다.

하늘의 해는 서쪽으로 약간 기울어졌다. 해를 안고 탔다. 바람도 가슴으로 품는다. 가급적 해안 가까이 타기로 했다. 짠 냄새가 코를 진동한다. 냉동창고가 많았다.

우리는 20분 쯤 지나 늦은 점심을 했다. 식당을 고를 때 먹고 싶은 음식도 중요하지만 나의 애마인 청륜을 가까이에 두는 일이다. 여관에서 잘 때도 방으로 가져와 같이 잔다. 혹시나 도난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등어구이 한 마리를 시켰다. 다른 테이블에는 서울에서 온 70대 중반의 노인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건강이 퍽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얼마 전 원로 철학자인 94세인 김형석 교수께서 인터뷰한 기사를 보았다. 그는 자기 생을 돌아보니 삶의 전성기는 60세에서 75세라고 말했다. 그분 말이 맞는 것 같다. 지금 내 나이가 바로 그 전성기이다.

오늘 우리의 숙소는 여기서 50㎞ 떨어진 곳에 있었다. 용두암을 지나 일주서로를 타고 가다 애월읍을 거쳐 한림읍 비양리 협재해변에 있다. 지금 속도로는 6시쯤 도착한다.

우리는 시간당 15㎞ 속도로 달렸다. 골목길이라 그 이상은 무리다. 보통 장애물 없는 평지는 25㎞로 달린다. 그런데 사물은 눈에서 그냥 지나갈 뿐이다. 풍경은 18㎞ 이내로 달릴 때 들어온다. 자전거 전용도로가 아닌 차도에서 차와 같이 달려야 할 때는 15㎞가 적당하다.

10월은 계절 중 으뜸이다. 여기저기 축제가 벌어졌다. 새마을 부녀회의 국수 삶는 모습은 여기서도 정겨워 보인다. 용두암은 또 보아도 질리지 않았다. 전보다 얼굴이 깨끗하게 보인다. 바닷물이 들어오는 용담 공원의 바닷가에는 한쪽에서 뱃놀이를 하고 있었다.

애월읍으로 가는 10여㎞의 오르막 해안길은 정말 아름다웠다. 전망 좋은 곳에서는 남녀 한 쌍이 양산 속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별안간 만난 지 몇 개월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만나 연애하던 때처럼 항상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인류학자들은 사랑의 기간은 길어야 3년 내지 4년 이라던데…….

알랑 드 보통이 생각났다. 그의 책 ‘우리는 사랑일까’에서 한 말이다. 근사한 키스야말로 솜씨 좋은 애인이 손으로 빚는 사랑 행위의 전부라고.

이호테우해변에는 윈드써핑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오늘처럼 하늘에 구름 한 점 없고 바람이 센 날은 최고의 날일게다.

오르막길을 헐떡거리며 오르다가 멈춰서 풍경을 보았다.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길가에 갈대가 바람에 심하게 흔들렸다. 갈대 건너 묘 옆에는 황소 한 마리가 열심히 풀을 뜯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집에도 보물 1호인 황소한마리가 있었다. 당시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노릇을 했던 형님이 무서웠다. 형님은 학교 갔다 오면 나에게 황소를 끌고 들판으로 나가 풀을 뜯기곤 했다. 나는 하늘을 향해 뚝방에 누워서 책을 읽었다. 갑자기 비가 오면 난 원두막으로 뛰어가고 소는 밖에서 흠뻑 비를 맞았었다. 그리고 배가 출출할 때 팔뚝만큼 자란 무를 뽑아서 입으로 껍질을 까서 아삭아삭 먹었다.

애월읍에 가까운 길가에서 종탑이 서있었다. 왠 종일까? 신기해서 멈춰서 보니 의녀 홍윤애를 기리는 비였다. 내용은 애처로웠다.

때는 정조 시절, 조정철 이란 선비가 제주도에 귀양을 왔다. 당시 제주목사는 정적인 김시구였다. 그는 조정철을 죽이려고 그를 시중한 홍윤애를 문초하였으나 그녀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당당히 죽음을 택했다. 그 후 조정철이 복권돼서 제주 목사로 부임해 자기를 위해 죽음을 선택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그녀의 의로움을 기렸다.

예정대로 오후 6시쯤 숙소에 도착했다. 펜션 이름은 하티(hathi)이다. 사전에 찾아보니 나오지 않는다. 주인 말로는 힌두어로 코끼리이란 뜻이란다.

주인은 40대 중반의 남자로 미혼으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처럼 보였다. 예술가들이 하는 것처럼 머리를 길러서 꽁지머리를 하였고 초등학생처럼 빗으로 머리를 찔렀다. 그는 서울에서 살다가 4년 동안 제주도에 경관 좋은 집터를 사서 지난 겨울부터 여름까지 이 숙소를 지었다고 한다.

바로 앞에는 고려목종 때 화산폭발로 생겨난 섬인 비양도가 있었다. 주인은 비양도를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으로 느꼈다고 한다. 그는 어린왕자에서 나오는 코끼리, 여우, 보아뱀과 비슷하게 그려 집과 방 곳곳에 세워두었다. 그것을 보면서 일반사람과는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은 것에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 많다는 것을 아는 사람처럼 보였다.

저녁식사를 하기 전에 오늘 입었던 것들을 손으로 빨래하여 옥상에 내걸었다. 빨래가 바람에 날리는 모습이 꼭 만세를 부르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짙은 땀 냄새에서 벗어난 것에 대한 기쁨처럼.

옥상에서 본 태양은 막 바다 아래로 떨어지려 하고 있었다. 노을이 불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아름답다 자연은 생명이 끝날 때에도 인간에게 도움을 주고 있구나. 사람도이 세상에서 끝 날 때도 이처럼 아름다워야 할텐데…….

저녁은 금년에 대전 동구청 직원이었다가 제주도로 전입한 사람과 했다. 그는 제주도라는 자연을 보고 찾아 온 사람이다. 삶이란 무엇이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를 한참을 꼽아 봤을 것이다. 자연과 인간, 행복과 미래를 화두삼아 선택했을 것이다. 나는 60이 되어서야 조금이나마 알았던 것들인데 40도 안되어서 알았으니 참 대단한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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