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충청 한남희 기자] 조선시대 향교가 지금의 국립교육기관이라고 한다면 서원은 사립교육기관이었다.
서원은 학문연구와 인재 양성, 선현제향(先賢祭享)을 위해 설립됐지만 유교적 향촌 질서를 유지하는 자치 운영기구 역할 등 긍정적인 기능을 했다.
하지만 지방 양반층이 이익집단화 하는 경향을 띠게 되고 서원에 들어가 붕당에 가담해 당쟁에 빠지기도 했다.
영조 때인 1741년 서원철폐를 논의할 당시에도 서원과 사우는 1000여 개에 이르렀는데 폐단이 적지 않았다. 특히 1695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 화양동 계곡에 세워진 화양서원(華陽書院)은 송시열이 문묘에 배향되자 그 위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고 한다.
국가로부터 막대한 물적 지원을 받았고 노론 관료나 유생들의 기증으로 서원에 속한 토지가 급속도로 늘어났다. 삼남에서는 물론이거니와 강원도에서까지 막대한 토지가 서원의 이름으로 늘어났고 그때부터 화양서원은 민폐를 끼치는 온상으로 변해갔다.
화양서원은 제사에 쓸 물건을 살 돈인 제수전(祭需錢) 징수를 빙자, 각 고을에 화양묵패(華陽墨牌)를 보냈다. 그런데 당시 화양서원의 위세가 국가로서도 어찌할 수 없을 만큼 막강했기에 지방의 수령이 한번 이 묵패를 받으면 그대로 따라야만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묵패를 받은 사람은 논밭이라도 처분해서 금품을 바쳐야 했고, 만일 그 지시를 어겼을 때는 감금당한 채 사형(私刑)을 당하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당시 화양묵패는 공포와 협박의 대명사였고, 서원의 중심인물들은 요즘 말로 하면 국가가 인정한 조폭이라고 해야 할 정도였다.
1864년 섭정한 흥선대원군은 이듬해인 1865년 서원철폐 조치를 내리기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150년이 지난 2016년, 지역 대표사학의 하나인 학교법인 대성학원에서 교사 채용비리 사건이 터졌다. 검찰은 대성학원 설립자의 아들 부부가 신규로 교사를 채용하는 과정에 수 천만 원에서 많게는 2억 2000만원까지 모두 4억 8000여만 원을 받은 것으로 보고 이들 부부를 구속기소했다.
설립자의 부인이자 이사장도 2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물론 이사장은 2000만원을 받은 사실은 인정하지만 채용대가가 아닌 순수한 교회헌금이었다고 주장하고, 아들 부부는 1억 2000만원 수재에 대해서만 인정하고 있다.
이사장의 경우 재판 과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지만, 만일 교회헌금이 아닌 채용대가로 받은 것이 유죄로 밝혔질 경우 이는 과거 제수전(祭需錢)을 징수했던 화양서원의 행태와 다를 바 없다.
아들 부부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부인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지만, 남편의 경우 검찰 기소 금액의 일부지만 채용 과정에서 지망자들로부터 받은 것을 인정하고 있다.
사학의 ‘교사 장사’는 지역사회에서는 오래 전부터 기정사실이었다. 그동안 드러나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고, 뒤를 봐주는 든든한 세력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다.
다른 사학은 차치하더라도 이미 대성학원은 자정능력을 잃었다. 사법기관은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했지만 일단 시도는 했다. 이제 몫은 대전시교육청에 있다. 현행법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관용이 아닌 칼을 대야 한다.
나아가 정부와 국회는 더 이상 사학의 방어막 역할을 할 것이 아니라 비리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인, 사학법 재개정에 나서야 할 것이다.
유림들로부터 ‘제2이 분서갱유’라는 비판을 받고도 대원군은 “진실로 백성을 해치는 자가 있다면 공자가 다시 태어나더라도 나는 용서하지 않겠다. 하물며 서원은 이 나라의 선유를 제사지내는 곳인데도 그곳이 도적의 소굴이 됨에랴”고는 단칼에 서원을 철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