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섬진강 따라 남도 600리] ①자전거라서 더 좋다
[임영호의 섬진강 따라 남도 600리] ①자전거라서 더 좋다
  • 임영호 코레일 상임감사
  • 승인 2015.11.16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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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11. 7. 섬진강댐에서 심청한옥마을까지

섬진강 라이딩 가는 날이다. 1박 2일로 간다. 새벽녘 몇 번이나 잠에서 깼다. 여행은 이토록 설레게 한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기술’이란 책에서 본 기억이 난다. 여행은 무엇인가 기대하는 것이고 풍경의 위대함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란다.

새벽 6시 5분, 정읍으로 가는 무궁화열차를 타기 위하여 서대전역으로 갔다. 미세먼지가 있을 거라는 예보에 마스크를 했으나 생각보다는 심하지 않았다. 무궁화 카페열차는 자전거 여행자에게는 안성맞춤이다. 보통은 차나 음료수를 먹을 수 있는 곳이나 새벽이라 여기 와서 수다 떠는 사람은 없었다.

1시간 정도 지나 날이 밝았다. 들판의 가을걷이는 거의 끝난 것 같고 잔뜩 낀 구름과 구름 틈 사이로 아침노을이 빨갛게 물을 들이고 있었다. 하얗고 둥근 비닐로 감긴 사료용 볏짚 덩어리들이 들판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수백 마리의 참새 떼들은 왜 저리 소리 내면서 몰려다닐까? 새총을 가지고 노는 꾸러기 소년이 없는 지금이 그들에게는 천국일 게다. 그들은 들뜬 마음으로 가을 아침의 성찬을 즐기고 있었다.

7시 35분에 도착한 정읍역은 새로 지은 건물이다. 작은 도시에 기차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듯 떵떵거리는 모습으로 멋지게 서 있었다. 섬진강 라이딩의 출발점인 섬진강 댐으로 가는 길은 자동차가 윙윙거리며 다니는 차도라 긴장되었다. 눈을 크게 뜨고 조심스럽게 패달을 밟았다.

섬진강댐과 옥정호

댐은 산 정상부에 있기에 자전거를 타고 등산하는 기분이다. 멀리 산 입구에 양수발전소가 보여 ‘바로 여기구나’ 생각했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무려 1시간이상 더 가서야 섬진강댐이 나왔다. 노령산맥 줄기 산세는 깊었다. 깊은 산골짝이라 담수가 되기 전에는 짐승이나 살지,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곳이다. 산 정상 부근에 띄엄띄엄 집들이 있을 뿐 적막했다.

만추의 꽃은 역시 감이다. 산에 있는 감나무는 말 그대로 태어난 모습 그대로이다. 엄지 손가락만한 작은 크기에 얼마나 다닥다닥 붙었는지 그것은 하나의 꽃이었다. 길가에 녹슨 안내판을 보니 이 산중은 쫒기는 사람들에게 피난처였다. 우리나라 최초로 순교한 김대건 신부의 조카무덤이 있는가 하면, 동학혁명 당시 전봉준 장군과 함께 활약한 김개남 장군, 면암 최익현 선생과 함께 의병을 일으킨 그의 제자 임병찬 장군의 흔적이 있다. 어쩌면 이들은 지배 권력의 반대편에서 민초들을 대변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진정한 지식인이다. 그 시대의 현실적 요구를 방관하지 않고 이해하고 직접 참여한 희생자들이다. 정읍시 산외면과 칠보면, 산내면을 차례로 거쳐서 댐에 도착했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섬진강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는 곳’이라고 노래했다. 섬진강은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팔공산 자락의 ‘데미샘’이 발원지이다. 이 작은 옹달샘은 진안 산골에서 실개천을 이루고, 임실군에 와서는 비로소 샛강으로 변하여 하늘 호수인 옥정호(玉井湖)를 만들어 남도 600백리 섬진강을 이루었다.

1928년 일제강점기에 지금 댐보다 2㎞ 상류지점에 운암댐을 만들었다. 당시 호남평야는 항시 물 부족에 시달렸다. 동학농민운동의 접적 원인인 만석보사건도 실은 물 부족에서 연유된 것이다. 운암댐으로도 부족하자 일제는 1940년 새로운 댐건설에 착수했으나 2차 대전으로 중단하고 박정희 정부시절에 다시 공사를 재개해서 1965년 다목적댐을 준공한 것이다.

섬진강댐 안 옥정호는 메말라 있었다. 단 1톤의 물도 섬진강으로 방류하지 못했다. 태풍이 없어서 농작물이 풍년이라고 좋아했지만 결국은 전국적으로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 고사성어인 조삼모사(朝三暮四)라 할까? 좋음이 있다는 것은 나쁨도 있는 것이고 결과는 같은 것이 세상이치다.

섬진강은 상류에서 가장 낮은 틈새인 산골마을을 따라 아주 수줍게 흘러서 간다. 더군다나 댐이 생기고 나서는 물길을 막아버려 댐 아래 임실군 덕치면과 순창군 지역은 제대로 된 강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행복이라면 영혼의 좋음이 최고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 아닌가? 영혼의 기쁨은 자연의 자연스러움에서 나온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

섬진강댐에서 강을 따라 8㎞정도 가면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생가가 있는 진뫼마을이 나온다. 시인은 집 앞에 흐르는 강을 ‘서럽도록 아름답다’고 노래했다.

그는 어린 시절 붕어를 잡고 멱을 감고 돌다리를 건너 학교에 갔다. 진뫼마을 입구에는 늙은 느티나무가 지키고 서 있었다. 그의 집은 대문도 없고 담장도 없다. 시인의 서재에 붙어있다던 ‘눈 앞 강의 푸른 물결이 눈에 들어온다’는 뜻의 관란헌(觀瀾軒)이라는 현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인가 목표를 위하여 분명히 진행 중이었다.

마을은 한참 겨울준비에 바빴다. 바로 옆집마루 포대자루 위에 ‘검은 콩’이 햇볕을 쬐고 있었다. 갑자기 국어책에 나오는 김용택의 시 ‘검은콩'이 떠오른다.

콩 타작을 하였다.
콩들이 마당으로 콩콩 뛰어나와
또르르 또르르 굴러간다.
콩잡아라. 콩잡아라
굴러가는 저, 콩 잡아라
콩 잡으러 가는데,
어, 어, 저 콩봐라
쥐구멍으로 들어가네.
콩,
너는 죽었다.

김용택 시인의 고향 진뫼마을에서 7㎞ 강을 따라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천담마을과 구담마을이 나온다. 이십리 길, 한국에서 가장 걷고 싶은 길이다. 마을과 주변 풍광이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가는 길 중간 중간에 김 시인의 시비가 보인다. 이 길은 또한 김 시인이 천담분교까지 가는 출근길이다.

시인은 어느 봄 날, 자연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노래했다.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섬진강 강물 따라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

아름다운 마을과 장구목
구담은 강가에 9개의 소(沼)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0여 가구가 오롯이 사는 이 마을은 아름다운 마을로 정평이 나있다. 그래서 영화 ‘아름다운 시절’, ‘춘향전’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4월 매화꽃이 필 때 특히 눈부시다고 한다.

여기서 3㎞ 정도 더 달리면 장구목이다. 소재지는 순창군 동계면 어치리. 이곳을 동네사람들은 강폭이 좁아진 모양이 민속악기인 장구의 목처럼 생겼다고 해서 장구목이라고 부른다. 강바닥은 기묘한 바위로 가득 차 있다. 그 가운데 유명한 것이 요강바위다. 바위가운데가 요강처럼 움푹 파였다. 깊이가 2미터는 될 거 같다.

이 바위가 수난을 당한 적이 있다. 20년 전 서울사람들이 길을 넓혀주는 척하다가 수십 억 가치가 있다는 이 바위를 훔쳐간 것이다. 아마 정원석으로 사용하려고 했을 것이다. 이들은 자기들의 행위가 어떤 잘못이 있다고는 생각은 했을까? 생각 없이 하는 행위가 가장 큰 범죄다. 그들은 정신적 게으름이 죄다.

동네 사람들이 지구 끝까지 가서라도 찾겠다고 나섰다. 끝내 찾아가져와 강바닥 그 자리에 다시 놓았다. 요강바위는 마을사람들에게 마을 수호신이고 아버지요 어머니이다.

섬진강만큼 사람들과 몸을 섞으며 가까이 지낸 강은 없다. 밤이면 마을의 불빛이 물에 어른거려 반짝이고, 한밤중에 아이가 자기별이라고 콕 찍어놓은 별들이 후두둑 강물에 떨어져 놀다가 살며시 간다. 봄철에 이사람 저사람 밭갈이 하는 모습도 죄다 강물은 알고 있다. 섬진강은 강변 사람들과 한 식구다.

회문산과 역사의 현장
강을 따라 돌아가니 회문산(回文山)이 강 배경으로 나온다. 회문산은 사연 많은 산이다. 순창고추장이 탄생한 일화도 회문산에서 나왔다. 조선건국 초 무학대사와 이성계가 회문산 부근 어느 농가에서 점심을 먹었었다. 이 때 맛 본 고추장을 잊지 못하여 뒷날 순창고추장을 진상하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산 주위는 반정부 기운이 세다. 전봉준 장군을 비롯한 동학혁명 주도세력들이 태어난 곳이고, 빨치산 주력부대인 남부군의 거점이었다. 이로 인하여 이 지역 양민들과 토벌군이 크게 희생되어 그만큼 겹겹이 쌓인 한이 많은 곳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이념갈등과 역사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E. H 카(Edward Hallett Carr)는 역사란 사실의 기록이 아니고 역사가의 해석의 문제라고 한다. 역사가들이 역사적 사실을 그 시대와 상황에 비추어 평가하고 판단하여 재구성한 후 기록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가의 시각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사기’를 읽는 것은 중국 고대사를 읽는 것이 아니라 사마천을 읽는 것이다. 역사는 나라의 혼이다. 헌법은 나라의 기둥이다. 역사가도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에 충실하게 해석하여야 하고, 그런 관점에서 기술되어야한다.

적성강과 순창, 화탄매운탕
섬진강은 지역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순창의 옛 이름은 적성현(赤城縣)이다. 장구목에서 순창군 동계면까지는 적성강으로 불린다. 섬진강은 순창에서 옥과천(玉果川)을 만나 세를 불린다. 우리는 장구목에서 17㎞나 달려 메기매운탕으로 유명한 순창군 적성면 화탄(花灘)마을까지 가서 늦은 점심을 들었다. 두툼한 메기를 무청 시래기로 푹 고아 고추장으로 맛을 낸 메기매운탕은 맛이 그만이었다.

원래 1968년 아버지인 김두만 씨가 ‘화탄매운탕’을 바로 이 장소에서 개업을 했다. 지금은 아들 며느리가 4년 전인 2011년에 ‘순창 알곡 매운탕’으로 상호를 바꾸어 운영하고 있다. 대교약졸(大巧若拙)이다. 식당도 그저 별스럽지 않게 생겼지만 맛은 일품이었다.

화탄마을에서 11㎞를 더 가면 순창군의 최남단 풍산면 향가리(香佳里) 이다. 향가리의 어원은 향기로운 강과 아름다운 산을 합한 조어이다. 인근 옥출산과 섬진강이 어우러진 풍광이 뛰어나 한량들이 뱃놀이를 즐겼을 정도였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도 이곳에 무려 70년 동안 물위에 앙상하게 방치된, 일제 때 다리 공사를 하다가 전쟁 통에 중단된 교각이 서 있었다. 지금은 이 교각위에 철판을 덮어 섬진강 자전거 길로 활용하고 있다. 여기에 오토캠핑장도 들어서 유원지로 목하 변신중이다. 이제는 옛날의 아름다움을 이리화정(以理化情), 머리 보다는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순자강과 곡성 기차마을, 횡탄정
향가유원지를 지나면 남원시가 나온다. 남원시를 관통하는 것은 요천(蓼川)이다. 요천은 지나는 길목에 넓은 농경지를 만들어 곡성에서 섬진강에 합류한다. 이제 강폭도 족히 500미터가 될 정도로 꽤 넓어졌고 경치도 제법 아름답다. 남원 곡성사람들은 이 강을 순자강(鶉子江)이라 한다.

사진출처 : 곡성기차마을 홈페이지

곡성하면 기차마을이다. 곡성 기차마을은 섬진강 자전거 길과는 떨어져 있어 가지 못했다. 아쉬웠다. 얼마 전 출장길에 방문한 적이 있다. 기차마을 곡성역은 1930년대 생긴 역으로 남원 순천 간을 왕래하는 전라선의 자그마한 역이다. 곡성역은 1999년에 직선화 개량으로 인하여 시내로 옮겨졌고 곡성군의 아이디어로 옛 곡성역사와 폐철도 13㎞를 철도공사로 부터 사들여 섬진강 기차마을을 조성했다. 게다가 관광용 증기기관차까지 제작해 운행하여 과거 1960년대 역사를 재현하고 있다.

교련복을 입은 판매원이 오징어와 땅콩을 팔고, 승무원이 학창시절의 교복을 입고 반장 완장을 찬 모습에 관광객들은 그때의 추억으로 되돌아간다. 더군다나 섬진강변에 레일바이크까지 운영하고 있어 시골이 시골이 아니다. 늘 떠들썩한 잔치 분위기이다. 인간은 과거와 현재의 비교에서도 행복을 많이 느끼는 것 같다. 지방자치가 된 이후로 자치단체끼리 경쟁이 치열하다. 자치단체장들은 기차와 역을 자치단체와 연결하면 지역에 생기가 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순자강은 순하디 순한 강이다. 조용하게 소리 없이 흐른다. 넓은 들이 있는 강둑을 따라 두어 시간 가니 고달교(古達橋)가 나오고 그곳을 지나자 지금도 동네선비들이 모여 동네일을 상의하고 세상일을 걱정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횡탄정(橫灘亭)이 나온다. 횡탄정은 경치가 아름다운 섬진강변 바로 곁에 자리 잡은 단층 팔짝 지붕의 정자다. 그들은 동네사람들의 대행자일까? 아니면 억압하여 자기 뜻대로 억지부리는 공포의 독재자일까? 하는 엉뚱한 상념이 떠올랐다.

감성의 강과 심청한옥마을

오는 도중, 해는 서산에 기울고 이내 어두워지고 있었다. 강은 점점 노을의 강, 감성의 강으로 변신하고 있었다. 저무는 강가에 앉아 바라보는 노을은 주변산과 어울러져 한 폭의 동양화였다. 한참동안이나 자전거를 세워놓고 강둑에 앉았다. 눈 앞 강물 속에서 외다리를 하며 먼 산을 쳐다보는 왜가리가 보인다. 그 또한 물에 비치 노을 때문에 넋 놓고 있나? 미동도 하지 않고 서있다.

도연명의 ‘음주’ 라는 시가 떠오른다.

동쪽 울타리에 국화를 따다가
한가로이 남산을 바라보네
산 노을 저물녘 아름다운데
새들은 무리지어 돌아가는구나
이속에 참된 의미가 있으려니
무엇일까 나는 벌써 말을 잊었네

採菊東籬下(채국동리하)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山氣日夕佳(산기일석가)
飛鳥相與還(비조상여환)
佌間有眞意(차간유진의)
欲辯已忘言(욕번이망언)

도연명도 노을 진 산으로 돌아가는 새들처럼 그 스스로 자연 품속에서 하나의 풍경이 되어 인간세상의 시시비비를 잊고 몰아일체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나 처럼.

그날 저녁은 심청 한옥마을에서 묵었다. 화전민이 살던 곳이라서 그런지 산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었다. 웬 여기가 심청? 심청은 정말 곡성에서 태어났을까? 곡성군은 이 문제를 1999년 연세대학교에 연구 의뢰하였다. 그 보고서는 소설 심청전의 주인공 심청은 1700년 전 곡성군 오곡면 송정마을에서 태어난 실존인물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판소리 ‘심청가’에서는 심청의 아버지 심학규는 황해도 황주사람이고 인당수도 거기 가까운 곳이라는데…. 어쨌든 곡성군이 심청이라는 효의 상징적 인물을 선점하여 정신적 지주로 삼고 관광 상품화한 것은 좋은 일 아닌가.

하늘을 쳐다보았다. 오랜만에 별을 보았다. 전 세계의 3분의 2가 별을 볼 수 없다고 한다. 매연과 불빛으로 있는 별이 보이지 않는다. 자연의 신비로움으로 꿈을 키워가는 아이들에게는 불행한 일이다. 나는 어릴 적 여름밤에 마당에 멍석을 펴고 누워서 조물주가 무수히 쏟아 놓은 은하수에서 내 별을 찾았다. 북극성과 북두칠성을 찾고 사자자리와 전갈자리를 찾았다. 하늘도 계절을 탄다. 가을밤 하늘은 쓸쓸했다. 밝은 별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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