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섬진강 따라 남도 600리] ②그곳엔 사람 사는 이야기가 있다
[임영호의 섬진강 따라 남도 600리] ②그곳엔 사람 사는 이야기가 있다
  • 임영호 코레일 상임감사
  • 승인 2015.11.18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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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11. 8. 압록에서 화개장터, 광양까지
 

아침 6시 새소리에 깼다. 창 너머 저쪽 멀리 산 정상 구름사이로 아침노을이 보였다.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하늘 전체가 불바다로 변해가고 있었다. 창밖 바로 옆에 서있는 감나무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홍시에 불이 붙었다. 홍시가 금방 떨어질 것 같다.

라이딩은 아침이 최고다. 시원한 공기에다가 세상이 조용하여 자전거와 인간만이 있기 때문이다. 안개가 섬진강의 강물을 이불처럼 덮고 있었다. 아직 강이 깨기 전이라 조심스러웠다.

마천목 장군과 도깨비

섬진강 사람들은 강과 함께 사는 이야기가 무수히 많다. 그들의 삶 자체가 신화이고 전설이다. 나는 10분 정도 걸려서 어제 밤 어둠 때문에 보지 못했던 ‘도깨비마을’로 되돌아 거쳐 가기로 했다.

전설은 효심 가득한 조선 개국공신 마천목 장군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 장군의 어머니가 한 겨울에 물고기 먹기를 원하자 도깨비들이 어살을 만들어 물고기를 잡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도깨비는 귀신의 일종이지만 인간 친화적이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꾸러기이다. 도깨비 방망이는 모든 문제의 해결사이다. 그런데 왜 그리 무섭게 생겼을까? 머리에 뿔이 있고 괴기한 복장에 도깨비 방망이까지 들고 있으니….

어릴 적 할머니가 들려주는 도깨비 이야기는 몸을 오싹하게 했다. 나는 도깨비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오줌이 마려워 싸리문 옆 뒷간에 가려했으나 무서워서 혼자 못가고 엄마를 불러 손을 잡고 간적이 있었다.

압록강이 아니다
아침은 압록에서 먹었다. 북한에 있는 압록강이 아니다. 한자는 같다. 오리 압(鴨)과 푸른 녹(綠)이다. 새들이 날아오고 녹음이 짙은 곳이라는 뜻 일게다. 이제 섬진강이 강답게 보인다. 수줍게 조용조용 흐르던 섬진강은 지리산을 만나고 부터 어른스러워진다. 압록에서 지천인 보성강과 합해진다. 2년 전 가을에도 압록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자면서 그날 저녁과 아침을 먹었다. 그때 들렸던 골목 식당과 밤중에 맥주 한 잔 한 치킨 집은 여전했다.

일행은 참게탕을 주문했다. 나는 삼계탕으로 들었다. ‘아침부터 웬 삼계탕인가’ 의아했으나 내가 잘못들은 것이다. 이 강물에서 잡은 참게로 만들었다는 참게탕은 갓 지은 흰쌀밥과 함께 먹는 식감이 최고다. 섬진강의 큰 자랑은 오염되지 않은 생태계이다. 아직도 1급수가 흐른다. 이곳에는 은어와 참게, 재첩 등 맑은 물에서 사는 어종이 풍부하다.

식당 수족관에는 민물의 피라미와 비슷한 은어가 있었다. 은어는 배 쪽이 은빛이다. 어릴 때 바다에 살다 봄이면 강에 올라와 살고 가을에는 산란을 위해 강 하류로 내려가 죽는다. 은어는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매운탕으로도 먹지만 있는 그대로 튀기거나 구워먹기도 한다.

압록에는 압록역이라는 무인역이 있다. 지금은 정차하는 기차가 없어 조용하다. 과거 1980년대 ‘모래시계’에서 주인공의 어머니가 열차에 뛰어들어 죽기 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던 소나무가 구내에 있었다. 그녀가 앉아 있던 의자도 그대로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이유’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자신에 대한 자부심과 존엄성이다. 그녀는 자신에게서 이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일 게다.

구례구역까지의 자전거 길은 벚꽃 길이다. 이곳은 보통 벚꽃이 4월 첫 주에 핀다.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이 떠오른다. 나도 어느 바람 부는 봄날 다시 와서 벚꽃 잎들이 바람에 날려 강물위로 떨어지는 풍경을 보리라. 왜 구례역이 아니고 구례구역(求禮口驛)이라고 명칭을 했을까? 이 역의 주소지는 순천시 황전면이다. 그러나 순천역이라고 하기는 상식에 맞지 않는다. 순천 중심 시가지와 너무 멀리 떨어져있다. 그래서 바로 앞 강 건너 구례의 입구라고 해서 한자의 입구자(口)를 써서 구례구역이라고 칭했다. 고객 중심의 명칭이다. 천하를 이롭게 한 것이다. 묵자(墨子)의 겸상애(兼相愛) 교상리(交相利)이다.

그런데 오늘의 상황을 봐라. 천안아산역을 비롯한 많은 역들이 지역이름 둘을 병기한다. 오늘의 인심 속에서 천안입구역이라고 명칭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천번 만번 양보한 것이 천안과 아산을 나란히 쓴 것이다.

이 구례구역 뒤뜰에는 57년 전 이역을 새로 지었을 때 심은 소나무가 있다. 일명 연인 소나무. 두 나무를 나란히 기념식수로 심었는데 자라면서 두 나무가 붙었다. 자세히 보니 뗄래야 뗄 수 없었다. 연인의 단계를 넘어 부부사이다.

택시타고 사성암 가기
우리는 여기서 라이딩과 상관없는 거사를 감행했다. 사성암(四聖巖)에 가는 일이다. 사성암은 백제 성왕 때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세웠다고 하나 정확한 기록은 없다. 성인(聖人)이라 부를 수 있는 원효, 의상, 도선, 진각 네 분의 고승이 수도했던 곳이라 하여 사성암이다.

우리는 역 앞에 대기하고 있는 택시를 잡아타고 그곳에 갔다. 20분 정도 걸렸다. 산 밑에서 산 정상까지 족히 3㎞ 넘는 곳에 가파르게 위치하고 있다. 오르면서 ‘이 네 분은 현실과 이상을 어떻게 배치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름난 네 분의 심신수련도장이라 그런지 법당은 기암절벽 벼랑 위에 위치해 있었고, 원효스님이 그렸다는 마애약사여래불도 있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절의 풍광이 예사롭지 않았다. 인간의 한계를 아는지 ‘소원 바위’에 붙어있는 담쟁이덩굴에 끼워 천 원짜리 지폐로 보시하면서 자기 소원을 빌고 있는 인간 군상들이 보였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구례구역에서는 지리산 성삼재가 아스라이 보인다. 여기서부터 20㎞ 떨어져있다. 그래서 지리산역은 등산객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역이다. 등산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열차시각은 용산에서 오후 10시 45분 출발하여 이곳에 다음날 새벽 3시 4분에 도착하는 열차이다. 그들은 각자 1인당 만원을 내고 택시를 합승하여 지리산 등산의 출반지인 성삼재로 간다. 과거에는 토요일에 수 백 명이 내렸으나 산장 예약제와 엄격한 입산통제 때문에 손님이 많이 줄었다고 택시기사는 울상을 지었다.

우리는 1시간이상 지체한 것을 만회하려고 하동으로 힘차게 달렸다. 하동 80리길도 벚꽃 길이었다. 구례군 간전면을 지나면서 사거리에 위치한 찻집에서 차 한 잔을 했다. ‘수달길’ 이라는 커피숍이다.

이 근처 섬진강에서 수달이 서식하는 모양이다. 수달은 천연기념물 330호로 멸종위기 종이다. 수달은 잉어를 좋아한다고 한다. 새벽녘 낚시꾼이 졸고 있을 때 수달이 슬그머니 나타나 낚시꾼의 어망에 있는 잡은 잉어를 물고 간다고 한다. 구례군 토지면 봉서마을에는 수달 관찰대도 있다. 일본에 여행 갔을 때 수달이 사는 곳이라 하여 수달에 관련된 상품을 창의적으로 만들어 파는 것을 보았다. 수달서식지. 이것은 스토리텔링 가치가 충분히 있다. 다음번에는 수달 곶감이라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경상도와 전라도의 화개장터
화개장터까지 14㎞를 차도와 자전거길이 함께 있는 길을 달린다. 강의 좌측은 지리산줄기이다. 중간쯤 피아골이 있다. 드디어 멀리 영호남을 이어주는 남도대교가 보인다. 여기서 지리산 쌍계사 계곡에서 내려오는 화개천이 합류한다. 섬진강이 처음으로 경상도 물길과 만나는 곳이고, 하동과 구례, 영남과 호남, 사람과 물산이 만나는 곳이다.

화개장터는 해방 전에 큰 시장 중 하나였는데 6.25전쟁 이후 지리산의 빨치산 토벌로 쇠퇴했다가 다시 복원한 것이다. 과거에는 오일장으로 1일과 6일이 장날이었다. 이제는 오는 날이 장날이란다. 매일 매일이 장날인 셈이다. 장터 한쪽에 서있는 3.1 독립만세운동 기념비는 이 장터의 결코 짧지 않은 역사를 증명한다.

자전거로 급하게 한 바퀴 돌아보니 대장간도 보이고 지리산 약초들도 보였다. 화개장터가 전국적으로 알려지는데는 구수한 목소리의 조영남의 노래 ‘화개장터’가 큰 몫을 했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엔
아랫말 하동사람 윗마을 구례사람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네
구경 한 번 와보세요 보기엔 시골장터지만
있어야 할 건 다 있고요 없을 건 없답니다. 화개장터
전라도 쪽 사람들은 나룻배 타고
경상도 쪽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경~상도 사투리에 전라도 사투리가
오손도손 왁자지껄 장을 펼치네
구경 한 번 와보세요~ 오시면 모두 이웃사촌
고운 정 미운 정 주고받는 경상도 전라도의 화개장터

이 노래는 조영남 씨가 윤여정과 이혼한 후 백수로 빈둥빈둥 놀고 있을 때 당시 똑같은 백수였던 김한길 의원이 신문기사에 난 화개장터를 보고 그 자리에서 작사를 했고, 조영남이 작곡을 했다고 한다. 김한길 의원은 정치하기 전에는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우리는 여기서 점심을 먹었다. 메뉴는 갱조개라고도 불리는 재첩덮밥. 여기 재첩은 2~4㎝ 크기로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강 하구 모래톱이나 모래펄에서 자란다. 중국산이나 민물에서 나온 것이 있으나 색깔자체가 다르다고 한다. 몇 해 전에 이곳에 올 때는 강물에 들어가 재첩을 채취하는 모습을 여기저기서 보았으나 오늘은 보지 못했다. 재첩국은 술꾼에게 인기가 많다. 속풀이에는 이것만한 것이 없다.

아쉽게도 섬진강에 은어와 재첩도 점점 줄어간다고 한다. 소금기 많은 바닷물이 섬진강 중류지점까지 역류하는 바다화 현상 때문이다. 화개장터를 나오면서 영호남 지역갈등을 어떻게 조금이라도 풀어 볼 수는 없나 하는 답답함이 있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그래도 민초에 있다.

‘토지’의 최참판댁

이제 하동으로 간다. 강은 더욱 넓어지고 모래톱이 강바닥에 크게 드러난다. 이 주변의 지명에 모래사(砂)자가 들어가는 것도 이유가 있다.

나는 박경리 선생께서 25년 동안 집필한 ‘토지’의 주 무대인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의 최참판댁을 보고 싶었다. 화개장터에서 10㎞정도 떨어진 이곳에 정작 작가는 집필 전이나 집필 중에 한 번도 이곳을 방문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도를 보고 소설 현장을 묘사했다. 그렇지만 ‘토지’의 주 무대는 명당이다. 지리산 자락의 봉우리로 둘러 쌓여있는 80만 평 악양들판의 넉넉함과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을 배경으로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을 이루고 있었다.

‘토지’는 민초들의 생활상을 통하여 인간사의 오욕칠정과 우리 민족의 수난사이다. 우리네 사람들을 ‘토지’를 전혀 읽지 않은 사람, 반만 읽은 사람, 한번 읽은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한 번이라도 ‘토지’를 읽었다면 삶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사람의 인생사를 경청하는 것은 최고의 인생공부이다. 내면의 성장이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인 ‘데미안’이 추구한 아브락사스(abraxas)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삶과 죽음, 선과 악, 참과 거짓, 저주와 축복이 공존하는 진정한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섬진강의 마지막 구간이다. ‘행백리자 반구십리(行百里者 半九十里)’ 라는 말이 있다. 백리를 가는 사람에게 반은 오십리가 아니라 십리라는 것이다. 다시 단단히 마음먹고 마지막 십리 길을 달려야 목적을 이를 수 있다는 말이다.

망덕포구와 섬진나루
매화마을을 거쳐 섬진강이 바다와 만나는 망덕포구(望德浦口)로 가는 길은 100리길이다. 최참판댁에서 하동으로 이어지는 길은 번잡했다. 가끔 녹차 밭이 눈길을 끌었지만 차도에는 트럭들이 쉼 없이 달려 녹차밭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토지’의 주 무대인 최참판댁을 보러갔기에 강 건너 매화마을과 섬진나루는 포기해야 했다.

자전거 길은 잘 되어 있었다. 광양 배알도까지 곧장 가면 된다. 이른 봄의 매화꽃의 세상이 그려진다. 가로수는 물론이고 산 전체가 매화 꽃밭이다. 매년 초봄에 광양 국제 매화축제가 열린다. 내년 봄의 라이딩의 꿈이 점점 가슴 속에 영글어간다.

매화마을 앞에는 섬진(蟾津)나루가 있다. 섬진강은 이제 한없이 넓고 조용하다. 하나의 호수 같다. 아마 옛날 다리 없던 시절에는 전적으로 배로 오고 갔을 것이다. 섬진나루는 임진왜란 당시 군사 요충지였다. 이순신 장군께서 이곳에 수군진을 설치하였다. 그만큼 왜적이나 왜구도 자주 침입했던 곳이다. 섬진강의 유래도 이와 연관이 깊다. 1385년 고려 우왕 시절, 왜구가 섬진강을 거슬러 쳐들어오자 수 십 만 마리의 두꺼비 떼가 나루터에 몰려와 울부짖어 왜구들이 놀라 도망을 갔다고 한다. 섬진강의 섬(蟾)이란 한자가 바로 두꺼비 섬자인 것이다.

다리를 건너가니 망덕포구가 나타났다. 멀리 광야제철소가 보인다. 여기에서 500년 전 최초로 김 양식을 한 태인동 김 시식지도 멀지않다. 망덕포구는 윤동주(尹東柱)의 시로 꾸몄다.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원고를 보존했던 정병욱 교수의 집이 바로 여기다.

윤동주 시인은 1943년 자신의 시 원고를 연희 전문의 절친한 후배인 정병욱에게 맡기고 해방 6개월 전인 1945년 초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숨을 거둔다. 학병에서 돌아온 정병욱은 1948년 윤동주 시집을 발간하여 빛을 보게 한다. 아름다운 우정이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누가 윤동주 시인이 죽었다고 말하는가. 진짜 죽은 것은 우리의 기억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윤동주의 시를 기억하고 있는 동안 윤동주 시인이나 정병욱 교수는 우리의 마음에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이제 섬진강 라이딩을 끝냈다

어제와 오늘 탄 거리는 230km이다. 나는 전라선 순천역으로 가 서울로 가는 관광열차 S트레인을 타려고 광덕포구와 가장 가까운 옥곡역(玉谷驛)으로 발길을 옮겼다. 옥곡역은 한 사람의 직원이 지키는 1인 역이다. 넓은 역구내에서 4시 25분차를 기다리며 섬진강을 되돌아보았다.

‘삶이나 사물이나 느끼는 사람에게는 비극일 수 있지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희극이다’ 라는 말이 있다. 섬진강은 아름다운 강이다. 인간에게 제대로 된 오감이 있다면 눈으로 마음으로 실컷 보고 느끼고 싶은 곳이 바로 섬진강이다. 섬진강은 격조 높은 강이다. 섬진강은 작은 물줄기조차 가리지 않았기에 그렇게 깊어 질 수 있었다.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가 통한다.

섬진강은 엄마의 품 속 같은 강이다. 섬진강이 지리산을 감싸고 있기에 역사의 굽이굽이 마다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섬진강은 차분하고 조용한 여유로 마음을 다잡게 하고 평화를 선물했다. 섬진강은 어제도 지금도 내일도 흘렀고 흐르고 흐를 것 이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자연 그대로 놔두면 되는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처럼 섬진강은 변하지 않고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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