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일기] 외국인 며느리의 제사상
[다문화일기] 외국인 며느리의 제사상
나의 사랑 나의 코리아! 좌충우돌 ‘다문화 일기’ (28)
  • 나가타 나오꼬
  • 승인 2015.12.31 1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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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나가타 나오꼬 일본] 한국에 시집온 지 6년이 지났다. 외국에서 만난 남편은 큰집의 장남이자 하나뿐인 아들이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결혼 후 남편과 같이 지낼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하며 한국에 온 나에게 첫 시련은 결혼하고 한 달 뒤에 왔다.

처음으로 경험한 제삿날, 시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몸을 움직여 남편과 같이 제사에 쓸 여러 가지 튀김을 했다. 아직 한국어는 물론 한국 문화에도 낯선 나에게 시어머니를 보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배가 고픈 걸 참고 밤 10시가 되는 걸 기다리던 중 결혼식 이후 처음으로 대면하는 친척들을 긴장하며 맞이했다.

제사를 지낸 다음 제사에 참여한 친척들의 저녁 식사를 위한 상차림을 하던 중 친척 어르신들이 계속 앉아서 밥을 먹으라고 권하셨지만, 시어머니께서 상차림을 위해 계속 바쁘셔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였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나는 이런 상황이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저녁 식사와 함께 술을 한잔, 두잔 마시며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음주량이 늘어가며 친척 어르신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서로 싸우는 것처럼 보여 무서웠다.

밤늦게까지 이어진 저녁 식사가 끝나고 친척들이 돌아가신 후 남아있는 설거지를 하면서 시댁의 제사 문화에 충격 받은 나는 몸도 마음도 피곤함에 지쳤고 갑작스럽게 눈물이 나왔다. 시어머니께서 이런 제사를 몇 십 년 동안 혼자 해 오셨다는 사실을 할고 내가 이런 제사를 평생 지내야 한다는 사실에 “난 못해“ 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은 느낌이었다.
 

결혼한 지 5년 동안 있었던 제사에서 시어머니께서 제사를 주로 도맡아서 하셨다. 특히 재료 장만이나 주요 제사음식은 시어머니께서 하시고 나는 남편과 같이 제사 당일에 여러 가지 전과 튀김을 하고 친척들의 식사준비와 설거지를 하였다.

하지만 지난해에 평소 무릎이 아프셨던 시어머니께서 무릎 수술을 하신 것이 계기가 되어 제사 음식을 시어머니께 빨리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내가 도맡아야 되는 제사이기 때문에 시어머니의 건강이 괜찮을 때 가능한 많이 배우려면 우리 집으로 제사를 옮기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남편에게 이런 내 생각을 얘기했고, 시어머님과 상의한 후 올해부터 우리 집에서 제사를 지내기로 결정했다.

그 결정이 있은 후 제사에 쓸 음식을 만들기 위한 재료 장만부터 나의 일이 되었다. 집 근처에 대형 마트가 있어서 남편과 함께 재료를 구입하러 갔는데, 이것저것 필요한 걸 사다보니 어느새 큰 쇼핑 카트가 다 차버렸다. 갑자기 부산에 계신 시어머니께서 제사 준비를 위해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느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시댁 근처에는 대형 마트가 없어서 한 번에 구입이 힘들기 때문에 혼자 마을버스를 타고 재래시장을 왔다 갔다 해야만 하셨던 시어머니께서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부산 식으로 제사를 지내기 위해 여러 가지 생선과 조개류 등은 보내주시는 시어머니께 감사드릴 수밖에 없다.

시어머니께 감사드리는 마음과는 별도로 제사는 나에게 여전히 부담스러웠다. 올해 9월에 있었던 제사 때 남편의 작은아버님께서 나를 격려해주시면서 “한국 젊은 여자들도 힘들어서 거부하는 제사를 외국에서 온 자네가 제사를 도맡아서 하는 걸 보는 한국 젊은 여자들은 자네를 어떻게 생각할까?”, “제사를 거부한 자신들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자네를 존경의 눈을 보지 않을까?”. “제사를 맡아서 하면 자네가 더 단단해지고 자신감이 생길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작은아버님의 말씀을 듣고 지금까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었던 제사가 나를 성장시키는 발판으로도 여겨질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어머니도 작은아버지도 제사 준비를 시어머니와 똑같이 할 필요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고 하셔서 제사에 대한 부담도 한층 줄었다.

아직 제사는 힘들고 부담스럽지만, 내 아이들에게 한국의 전통문화를 보여주기 위한 좋은 수단이고 내 음식솜씨는 물론 정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 전통중 하나인 제사문화를 잇는 내가 자랑스러운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제사 준비를 같이 해주는 남편과 시어머니께 감사드리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다문화 일기’ 시리즈는 대전 다문화가족사랑회(회장 박옥진, 042-825-7233)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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