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일본철도기행] ⑤세계 최장 해저터널을 타다
[임영호의 일본철도기행] ⑤세계 최장 해저터널을 타다
  • 임영호 코레일 상임감사
  • 승인 2016.04.0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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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부사호 열차

드디어 2월 25일 8시 20분 삿포로를 향해 출발한다. 동경역에서 출발하는 신간선 이름은 하야부사호이다. 이 하야부사호 열차는 시속 320㎞이다. 일본은 철도회사들이 철도제작사에 각각 생산주문하기 때문에 신간선 열차모양이 다르고 이름도 다르다.

송골매라는 뜻인 하야부사라는 이름은 일본의 소행성 탐사선 하야부사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 탐사선은 일본 우주기술의 저력을 보여 주었다. 일본은 하야부사 탐사선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수많은 역경을 뚫고 7년 만에 지구로 돌아왔다.

나는 일본의 객실 현황을 보기 위하여 환승할 때마다 자유석, 특실, 그랑 크라스라는 1등석을 차례로 타 보았다. 동경에서 신 아오모리 역까지는 1등석을 탔다. 영어로 그랜드 크라스(Grand class)이다. 1등석은 비행기의 비즈니스 분위기이다.

한 줄에 세 개의 자리만 배치해서 자리가 넓고, 의자를 움직여 편하게 여러 형태로 휴식을 취할 수 있고, 음료수나 간단한 식사도 제공된다. 요금은 우리 돈으로 28만 원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보다 조금 멀다지만, KTX 특실요금이 8만 4000원인 것에 비해 일본의 교통비는 상당히 비싼 편이다.

신간선 하야부시호 그랑크라스실(왼쪽)과 그랑크라스 간식

신간선은 동경역에서 신아오모리역까지만 간다. 거기까지가 JR동일본 구역이다. 그 역에서 환승하여 홋카이도의 창(窓), 하코다테까지는 특급으로 간다. 3월 26일 이후에는 하코다테까지 신간선이 들어온다. 지금 한참 홍보 중으로 홋카이도 섬전체가 들썩거린다. 본토와 홋카이도 섬 사이는 해저터널로 연결된다.

하코다테 신칸선 홍보

북쪽으로 올라 갈수록 먼 산의 머리 부분은 흰 눈으로 만든 고깔모자를 쓰고 있었다. 11시 19분 신아오모리에 도착했다. 아오모리는 본토의 최북단에 위치한다. 북한의 평안북도 정도의 위도이다. 경도는 동경보다 한참 동쪽이라 해가 일찍 뜨고 일찍 진다.

아오모리(靑森)는 푸른 숲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일본의 스위스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백두산만큼 아름답다. 일본사람들이 백두산을 찾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울창한 원시림과 계곡, 가을철의 아름다운 단풍과 맑은 호수, 추운 겨울의 온천욕, 스키와 설경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게다가 일본의 원주민인 아이누족이 여기 해안가에 살았다고 하니 신비롭기도 하다.

슈퍼백조 특급열차

11시 30분 하코다테를 향하여 출발한다. 슈퍼백조 특급이다. 맨 앞에는 선로에 있는 눈을 치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일본은 신간선만 철도의 폭이 우리와 같은 1435㎜의 표준궤이다. 일반철도는 이보다 좁은 1067㎜ 협궤이다. 일본이 경부선을 건설할 때 자기들은 협궤로 건설하면서 우리는 무슨 이유로 표준궤로 건설해주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코다테로 가려면 거꾸로 재래선인 아오모리역으로 가서 출발해야한다. 하코다테로 가는 열차는 설국으로 가는 열차이다. 창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은 편백나무 숲이다. 편백나무가지에 눈송이들이 솜뭉치 모양으로 가지와 가지사이로 붙어 있다가 바람이 지나가면 낙화처럼 떨어진다. 마치 목련이 지는 것처럼.

바람이 지나가면 낙화처럼 떨어지는 눈

20분쯤 가다가 오쿠나이 역에 잠시 정차했다. 시골역이다. 해저터널을 가기 전 역이라 마음이 들떴다. 열차는 디젤차, 전기 차에 비하여 소리가 크고 많이 난다. 40㎞로 속도를 내다가 140㎞까지 최고속력을 낸다. 여기저기 눈을 치우는 장비가 보인다. 기차는 해안가 바로 옆을 지나 풍경이 아름다웠다. 동해시에서 정동진역까지 가는 바다열차를 타는 기분이다.

오쿠나이 역

10분 정도 지나니 쓰가루해협을 가로지르는 해저터널 세이칸(靑函)터널에 들어갔다. 1988년 개통된 세이칸(靑函)터널은 아오모리(靑森)의 첫 글자와 하코다테(函館)의 첫 글자를 조합하여 이름을 지은 것이다. 길이는 세계 최장의 53.85㎞이다. 터널은 해면에서 240m 아래에 있다. 바다 수심이 140m이고 바다 밑에서 100m 아래에 있다.

세이칸 터널

터널에 들어갈 때 12시 33분, 나올 때보니 12시 58분이다. 25분 걸렸다. 이 터널은 3월 26일 이후로는 신간선도 이용한다. 1시간 더 가서 열차는 오후 1시 42분에 하코다테에 도착했다. 동경에서 떠난 지 5시간이 지나서 홋카이도 섬에 온 것이다.

열차 내 세이칸 터널 중간 통과 중 안내표시

홋카이도의 인구는 550만이다. 하코다테가 30만, 삿포로시가 200만이다. 나머지는 섬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면적이 남한의 5분의 4인데 비하여 인구가 남한의 10분의 1인 것을 감안하면 한적한 섬이다. 홋카이도도 산이 많다. 산과 산사이 작은 마을들이 있고, 일 년의 반이 겨울인 눈 덮인 동토지역이다. 한 량으로 운행하는 열차가 반 이상이고 역무원이 없는 무인역도 4분의 3이나 된다. 영업 손익도 당연히 적자이다. 가끔 안전사고로 뉴스에 나온다. 적자경영으로 안전에 대한 투자가 안 되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해안선 따라 하코다테 가는 길

홋카이도의 출입구인 하코다테는 북위 41도, 동경 140도이다. 홋카이도의 남단에 위치하여 비교적 온화한 기후와 좋은 자연환경으로 홋카이도의 중심도시가 되었다. 1854년 미 페리제독은 흑선 선단을 이끌고 여기 하코다테에 입항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1859년 일본 최초로 하코다테가 외국에 개방되었고, 그래서 그런지 서양의 문화와 외국인들의 흔적이 많다.

하코다테 지도

이 도시에 츠츠키 토요지라는 조선공이 살았다. 페리호가 입항할 때 한 번도 보지 못한 태산만한 흑선에 놀랐다. 그는 놀람에 그치지 않고 호기심을 가지고 연구에 몰입한 결과, 드디어 서양 배와 같은 ‘하코다테 마루’라는 배를 완성하였다. 일본인들은 근대화 산업화를 위하여 처절할 정도로 몸부림을 쳤다. 아놀드 토인비(1916~1981)가 말한 대로 소수의 창조적 의지를 가진 자가 도전적으로 문명에 반응함으로써 새로운 문명으로 도약하는 것이다. 존경할 만하다.

일본이 기차 대량생산 체제를 갖춘 것은 1909년이다. 영국에서 도입한지 30여년만이다. 그때 처음 51량을 제작했는데 지금 JR서일본에서 보존하고 있다. 어릴 때 본적이 있는 우리나라에 많은 미카형 증기기관차는 해방 전인 1944년 제작한 것이다.

틸팅열차(왼쪽)과 슈퍼 백조

선로굴곡이 심한 훗카이도는 우리나라에는 운행하지 않는 틸팅(tilting)열차가 있다. 회전을 위해서는 서행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탈선하기 쉽다. 틸팅열차는 원심력을 설계에 반영하여 굴곡이 심한 선로를 운행할 때 안쪽으로 기울어져 제 속도를 낼 수 있다.

실제로 JR훗카이도에서 운행하는 틸팅열차는 동일구간에서 비틸팅열차에 비해 최대 30분까지 시간을 단축시키는 효과가 있으며, 특히, 삿포로~하코다데 사이를 운행하는 특급 ‘슈퍼 호쿠토’에 투입되는 틸팅열차는 최고시속이 130km이다.

삿포로로 가는 열차는 오후 1시 54분 출발했다. 홋카이도는 영하권이다. 새벽에는 영하 16도, 아침에는 영하 10도, 한낮에는 영하 3도였다. 눈은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내 옆에 앉은 60대 신사는 책 2권을 꺼내놓고 이내 눈을 감았다. 앞으로 4시간은 족히 가야한다.

열차 길은 해안선을 따라 나 있었다. 삿포로시가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차창 밖은 코발트빛 바다다. 풍경은 긴 기차여행의 피로를 흔적도 없이 한 번에 지워 버리게 했다.

반대편 한쪽은 아주 키 큰 나무들이 뭉쳐서 숲과 숲 사이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사이사이 지나가는 넓은 설원은 금방 순록이라도 나타날 것 같았고, 안데르센 동화 ‘눈의 여왕’이 나타나 누군가를 얼음왕국으로 데려갈 것 같았다. 이곳의 4월에는 들꽃이 피어 장관이라 한다. 봄이 되면 지금은 보이지 않은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다.

눈은 한길 넘게 쌓여 있었다. 실연당한 사람은 홋카이도로 가라고 한다. 함박눈으로 마음의 상심을 덮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열차가 설 때마다 철도원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무전기 또는 전화기보다 훨씬 정겹다. 목을 빠끔히 내민 기관사는 앞뒤를 확인한 후 수신호를 정확하게 했다. 옛날 역에서 보았던 그 수신호다. 안전은 기본을 정확하게 지키는 데 있다.

삿포로에 갈수록 어둠이 점점 찾아왔다. 승무원은 손님들을 위해 바삐 움직였다. 일본열차 승무원들은 표도 확인하고 커피도 팔고 손님을 위한 서비스도 한다.

오후 5시 36분에 삿포로에 도착했다. 동경을 떠난 지 9시간이 되었다. 하루 종일 온 것이다. 2005년에 착공된 신아오모리와 하코다테 간의 신간선은 오는 3월 26일 개통되고 앞으로 15년 후 2030년 삿포로까지 개통되면 이 섬에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비행기가 빠르지만 삿포로까지 신간선이 들어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삿포로라는 지명은 아이누어로 ‘건조하고 넓은 땅’이란 말에서 유래했다. 이 지역은 삿포로 맥주가 유명하다. 그 병에 그려져 있는 붉은 별은 북극성이다. 이 별은 홋카이도 개척사의 상징이다. 홋카이도는 1896년이 되어서야 일정부가 개척한 땅이다.

삿포로 맥주

1967년부터 하고 있는 눈 축제는 브라질 리오 축제, 독일 옥토버 축제와 함께 세계 3대 축제다. 눈이 질기게 온다. 아무리 쓸어도 길거리가 온통 빙판이다.

조심조심 발을 끌면서 숙소에 들어왔다. 캐럴만 흐르면 크리스마스 기분이 날 것 같았다. 여기에 우리의 분천역과 같은 산타마을을 만들면 어떨까?

삿포로 눈 축제

시내에 네온사인이 들어왔다. 흰 눈이 네온 빛에 번쩍인다. 영하 6도였다. 숙소는 걸어서 7~8분 거리다. 체크인을 끝내니 7시가 되었다. 추운 이 지방에는 ‘징키스칸’이라고 불리는 양고기 요리가 있다. 왜 ‘징기스칸’이라고 했을까? 통역하는 오 부장이 유명한 양고기 집을 알아냈다. 20분을 걸어서 갔다. 이미 줄이 길게 서 있었다. 추운 날은 양고기를 찾는 손님이 많다고 한다.

한두 군데 더 헛수고하고 8시가 다 되어서야 조그마한 양고기 집을 찾았다. 테이블이 5개정도 있었다. 술과 고기는 마음껏 들고 이용시간은 2시간으로 한정했다. 적당한 양을 먹으니 2시간이 흘렀다. 시간제한이 더 합리적이구나.

삿포로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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