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이를 본다, 팽이에게서 듣는다
험한 길 끝까지 갈 수 있다면 후려치게
채찍 자국 선명해도 새 길 갈 수 있다네
멈춰 서려 할 때마다 휘이익 누가 또 갈기나
천신만고 끝에 외전外轉된 고관절
나도 모르게 팔자걸음 걷고 있지만
돌부리에 차이거나 발 헛디뎌도
자유롭게 멀리 갈 수 있어
머리채 묶고 핑그르르 돌아나서다
오물내 닿은 진흙탕에 넘어지면
고개 돌려 시선 되찾을 거야
거센 바람 불어오면 가볍게 흔들려주고
돌고 돌아 새 길 찾아갈 거야
바닥을 박차고 살아날 거야
― 김리영, ‘멈추지 않은 팽이-피루엣*’ 전부
* 피루엣pirouette : 한 발을 축으로 팽이처럼 도는 발레의 동작.
[굿모닝충청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 시인은 많이 있지만 무용가 시인은 거의 없다. 생각하면 몸의 언어를 표출하는 무용이야말로 시와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이웃 예술이고 그 긴밀한 관계는 융합과 소통의 가능성을 크게 열어놓았음에도 지금껏 관심이 비껴갔다. 미술이나 음악, 사진, 건축 같은 다른 장르보다 무용과 문학, 특히 무용과 시는 손에 닿을 듯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의 미덕을 극대화하며 시너지 효과를 낼 법도 한데 이렇다 할 시도며 성취를 찾기 어려웠다.
무용을 전공한 김리영 시인이 펴낸 다섯 번째 시집 ‘춤으로 쓴 편지’에 실린 이 작품은 팽이의 탄력 있는 움직임을 언어에 결합하고 거기에 율동감을 입히면서 삶과 인간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을 역동적으로 보여준다. 진흙탕과 거센 바람이 끊임없이 몰려들며 우리를 가로막는 세상에서 팽이의 처신은 깊은 함의를 보여준다. 시집 ‘춤으로 쓴 편지’ 해설에서 이성혁 문학평론가가 “춤이야말로 자신의 몸으로부터 초월하지 않으면서도 고통스러운 현재의 삶을 바꾸어낼 수 있는 예술”이라고 썼듯이 팽이의 움직임과 동선, 불퇴전의 의지가 이 작품에서 구체적인 실물감을 얻는다. 고단한 일상의 리듬을 일깨우는 팽이에게서 우리는 이런 말을 듣는지도 모른다.
(…)
인류는 먹고 마시고 이별하고 살고 있지
좋은 춤은 남자와 여자에게 와서 같이 흐르고
마른 장마 끝, 터진 박수 소리를 듣는 밤
한 백년 우리도 모르게 윤무輪舞를 추고 있는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