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극동러시아 기행] ③발해의 옛땅 아무르강가에 서서
[임영호의 극동러시아 기행] ③발해의 옛땅 아무르강가에 서서
  • 임영호 코레일 상임감사
  • 승인 2016.07.15 16:1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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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각계 300명으로 구성된 ‘유라시아 횡단 친선열차 원정대’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7월 14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해 모스크바, 베를린까지 19박 20일의 대장정을 펼쳤다. 당시 박근혜정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 현실화 임무를 띤 원정대는 유라시아 각국의 주요 도시를 경유하며 세계 경제현장을 돌아보고, 대한민국 철도산업 발전을 미래를 구상했다.

당시 나는 아쉽게도 북경을 거쳐 몽골에서 본진에 합류했다. 그 뒤로 시베리아횡단철도의 동단이자 우리 민족의 아픈 근현대사를 간직한 블라디보스토크는 내가 꼭 가봐야 할 곳이 됐다. 그리고 1년이 지나 나는 그 자리에 섰다. 지난 6월 4일부터 7일까지 4일간의 여정을 기록으로 남긴다.

 

비에 젖은 네온사인 역 간판

아침에 일어나니 지난밤에 소동이 있었다고 한다.
여자가 탄 객실에 덩치 큰 러시아인 둘이 들어 왔다고 한다. 침대칸은 지정석이다. 남자 여자가 따로 자리 구분이 되어 있지 않았다. 70세를 넘기신 분들이 얼마나 놀랐을까. 아침에 그분들을 마주하기가 너무 송구스러웠다. 끝이 좋아야 다 좋은 것인데….

눈뜨고 누워서 있다가 아침 5시에 일어났다. 날이 제법 밝았다. 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정차한 역의 네온사인 간판이 비에 흠뻑 젖어 있었다. 눈물속의 불빛처럼 번졌다. 떠난다는 기적소리에 불쑥 외로움이 밀려온다. 세상은 보는 대로 보이는 것 같다.

가이드가 같이 타지 않았다. 일행들은 혹 지나칠까봐 두려운 눈으로 간판을 열심히 보았다. 하바롭스크역이라는 러시아글자는 영어 스펠링과 비슷했다. 7시 5분 정확히 하바롭스크 역에 도착했다.

하바롭스크역

하바롭스크는 극동의 수도다.
하바롭스크는 극동지방 최대의 행정산업 교통도시다. 처음에는 극동지역의 군사 전초기지였으나 시베리아 철도가 부설되고 급격하게 도시가 발전되었다. 역에 내리자마자 동상 하나가 보인다. 하바로프상이다. 기차역을 바라보고 서있다. 하바로프는 이 지역을 발견한 17세기 러시아 탐험가이다. 하바롭스크라는 지역 명도 그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하고자 하는 마음에 불가능이란 없다.

하바로프상

가이드는 70세가 넘는 여성분이었다. 사할린 출신이란다. 아버지가 징용으로 사할린까지 끌려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한국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 혼자였다고 한다. 참 고단하게 살아오신 분 같다. 사할린 출신은 한국으로 영구 귀국이 가능하다. 이분이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데에는 말 못할 깊은 사정이 있겠구나 싶어 묻지 않았다.

우리는 아침식사부터 했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오나보다. 별도로 한국식당이 있었다. 입이 까끌까끌하다. 기차에서 먹으려고 샀던 컵라면을 꺼냈다. 우리 컵라면은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것 같다. 어제 저녁 열차 안에서 러시아인 승객이 ‘신(辛)라면’ 글씨가 선명한 컵라면을 들고 뜨거운 물을 찾던 기억이 난다.

레닌광장

러시아 도시의 중심은 어디를 가나 레닌광장이다.
레닌광장에 도착한 날은 마침 세계 환경보호의 날이었다. 초중고학생들이 구호가 적힌 판을 들고서 무엇인가 외치며 광장을 한 바퀴 돌고 나간다.

충혼탑

광장 내 혁명내전 충혼탑에 고려인들의 이름이 보였다. 가이드는 고아원에서 성장한 사람일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소련 정부는 고려인들을 참전시키지 않았다. 고려인을 강제 이주시킨 이유와 같이 일본인과 비슷하게 생겨서 이중간첩으로 의심했기 때문이다.

하바롭스크에서 가장 대표적인 관광지는 꼼소몰 광장이다.
이곳에는 성모승천사원과 아무르 강변이 있다. 성모승천사원은 러시아어로는 우스펜스키 사원이라고 한다. 성모마리아는 예수님의 모후로 예수님 다음가는 성스러운 존재다. 그분에 대한 영예로운 전설로서 육신과 영혼이 하늘로 승천했다는 것이다. 지붕이 파랗고, 선명한 흰색과 붉은색의 벽면이 인상적이다. 유럽식과는 확연히 다른 독특한 디자인이다.

성모승천사원

1886년 나무로 건립되었으나 1930년 유물론의 볼셰비키 혁명정부에 의해 파괴되었다. 70년 동안 교회는 죽어 있다가 개혁개방이후 2002년 러시아 정교회의 상징물로 부활되었다.

안에 들어가 보니 의자는 구석에 20석 정도 있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을 배려한 듯하다. 그저 하나의 텅 빈 공간이다. 예배는 선 채로 본다. 사원도 처음에는 제사 중심이었으나 지금은 설교중심이어서 이렇게 커진 것이 아닌가.

러시아인들은 비종교적이라 한다.
거의 교회에 가지 않는다. 선교활동을 위해 러시아에 오는 많은 한국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종교는 인간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의미 있는 삶의 한 형식이라고 생각한다. 잠깐 멈추고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불완전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아닌가.

톨스토이

사원 안은 비교적 조용하고 청결했다. 분심이 생겼다. 정교회 측으로부터 파문을 당한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1828~1910)에 대한 생각이다.

그의 말기 소설은 성경책처럼 종교적이다. 단편소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신의 존재를 전하고 인간의 사랑을 말했다. 그런데도 정교회로부터 외면을 당했다. 그는 하늘에만 신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도 신이 있다고 했다. 심즉이(心卽理), 동양적 생각이다.

시장은 그 사회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장소이다.
전통과 문화가 숨 쉬고 있다. 하바롭스크의 재래시장을 가 보았다. 고기를 많이 먹긴 먹는 것 같다. 시장의 많은 공간이 정육점이었다. 상인들은 고기부위별로 열심히 정리하고 있었다.

하바롭스크의 재래시장

꽃을 심는 시기인지, 각종 꽃모종과 오이, 가지, 상추와 같은 채소 모종들이 있었다. 모종은 우리보다 2달 정도 늦게 시작한다. 9월을 넘어가면 식물이 추워서 성장을 멈추니 겨우 4달 정도가 식물이 자랄 수 있는 기간이다.

1895년 세워졌다는 고풍스러운 향토 박물관이 있다. 이것은 극동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이다.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그라데코프(1843~1913)라는 개인이 세웠다. 러시아인 이름은 참 길다. 이것이 러시아 소설을 읽을 때 제일 힘든 부분이다. 향토박물관은 월요일이라 쉬었다. 아쉬웠다.

거북상

이 지역도 발해의 영토였다.
박물관 밖에 발해 유적이라는 조각품들이 있었다. 우리는 발해를 잊고 살아간다. 우리 조상들의 영토였다는 것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제가 오늘이 되고 오늘이 내일이 되는데…. 우수리스크 공원에 있던 것과 같은 거북상과 그 옆에 사각기둥에 앉아있는 원숭이 상들이 서로에 의지하며 외롭게 있었다. 거북상은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자세히 보니 절의 부도 같았다.

가이드 할머니는 원주민들 이야기를 꺼냈다. 원주민들은 200년 전 만해도 여기에서 살았다고 한다. 북방계 몽골족으로 우리와 똑같이 생겼다. 같은 생김새 때문에 고려인들은 몹시 학대받았다고 한다. 진정한 민주주의와 평화는 차이를 존중하는 것으로 부터 시작된다.

지금도 아무르 강변에는 원주민인 나나이족 마을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바이칼 호에서 시작해서 한반도까지 내려온 것이 아닌가 싶다. 박물관 측면에는 2차 대전 때 사용하던 포가 전시되어 있었다.

2차대전 때 사용하던 포

박물관 뒤로 돌아가니 아무르 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동상이 서 있었다.
아무르스크 상이다. 당시 동 시베리아 총독이었다. 하바롭스크를 개척한 사람이다. 러시아는 동상이 많다. 그 시대의 상징물이다. 우리는 동상세우는 것이 정말 어렵다. 도덕적으로도 완벽한 인물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잣대로 동상 세울만한 인물이 정말 있을까. 일그러진 영웅뿐이다. 롤 모델이 없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아무르스크상

모든 사람은 공(功) 과(過)가 있다. 한 쪽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양행(兩行)이다. 시비(是非)란 무엇인가? 사람은 자기의 처지와 형편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이기적인 동물이다. 장자(莊子)도 옳다함은 자기를 위주로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 전쟁 때 인천 상륙작전의 영웅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동상조차도 철거하려는 무리가 있으니 참담하다.

아무르강

서울에 한강이 있듯이 하바롭스크에는 아무르 강이 있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아무르 강변에 갔다. 러시아에서는 ‘사랑의 신’ 이라는 아무르라 부르고, 중국에서는 ‘검은 룡’ 이라는 뜻의 흑룡강(黑龍江)으로 불린다. 사람마다 제 마음이 있고, 마음마다 제 견해가 있다.

강의 길이는 4350km, 검은 빛을 띤다. 한강보다 컸다. 이 강물은 물자수송에 큰 역할을 한다. 목재를 잔뜩 실은 배가 지나가고 있었다. 강변에 선탠하는 사람들도 간간이 눈에 들어왔다. 선착장에는 유람선이 있었다. 우리는 1시간가량 유람선을 탔다.

노을에 물든 아무르 강은 아름답다고 한다. 멀리 아무르 강 철교가 보인다.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지나가는 곳이다. 복층으로 되어 있었다. 하나는 철도가 하나는 자동차가 사용한다. 점심메뉴로 꽤나 큰 잉어요리가 나왔다. 고기도 많이 있을 것 같다.

유람선에서 보는 아무르강 철교

홀로 아리랑을 부르고 싶다.
이제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롭스크의 3박 4일간의 일정이 끝났다. 내일 아침 식사만하면 떠난다. 연해주의 역사와 사람과 땅은 이용할 만하다. 우리영토와 가장 가까운 지역인 연해주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한 지역이다. 우리에게는 한(恨)이 많이 서린 곳이다. 한은 한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앞 수레가 엎어진 자국을 그대로 뒤좇으면 그런 역사는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앞에 있었던 일을 잊지 않으면서 뒷일의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前事之不忘, 後事之師)

러시아 연해주에 머무는 동안 나는 자라는 아이처럼 애국심의 키가 커져 가는 것을 느꼈다. 여행을 끝내면서 지리산에서 만난 재일교포가 불렀던 서유석의 ‘홀로 아리랑’이 문득 생각났다. 나 또한 오늘 그 노래를 구성지게 불러 보고 싶다.

저 멀리 동해바다 외로운 섬
오늘도 거센 바람 불어오겠지
조그만 얼굴로 바람맞으니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
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
아리랑고개를 넘어 가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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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창 2016-09-22 06:15:15
연해주,동북3성!
우리의 옛땅?
내가 팔아버린 타워팰리스를 지나가면서
저기에 옛날에 내집이 있었지.
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읍니다.
현재의 진짜주인에게 기분나쁜 생각이나 말은 할
필요없읍니다.
조선태조이성계의 후손이 경복궁을 보면서
저거 옛날에 우리집이었는데
라는 것과 같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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