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국제 철도박람회 참관기-1] “유라시아문명 원동력은 전파력”
[임영호의 국제 철도박람회 참관기-1] “유라시아문명 원동력은 전파력”
  • 임영호 코레일 상임감사
  • 승인 2016.11.01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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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트랜스(Innotrans)’는 지난 1996년 독일에서 처음 개최된 이래 올해로 11회째를 맞은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 철도박람회다. 올해 박람회는 9월 20일부터 23일까지 나흘 동안 2940개 업체와 13만 여 철도전문가들이 참가했다. 코레일도 이번 ‘이노트랜스 2016’을 통해 순수 국내기술로 개발된 강체전차선, 차축베어링 등 철도 핵심부품을 국제 철도시장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다. 그 현장을 임영호 코레일 상임감사가 다녀왔다.

 

오래간만에 비가 내렸다. 정확히 말하면 가랑비다. 오래 간만에 보니 그래도 비가 좋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8시 56분 KTX를 탔다. 서울역에서 잠깐 정차하고 인천공항으로 가는 열차다.

오후 2시 20분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생각보다 손님은 적었다. 10시간 넘는 비행이다. 평소에는 읽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800페이지나 되는 분량의 책을 가방 속에 챙겼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 혼자 10시간을 자기 자신을 독점하여 가질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다. 고독은 자신을 정직하게 한다.

졸다, 읽다 하다 보니 드골공항에 도착했다. 드골공항은 3개로 나누어져 있는데 여기는 제2 터미널이다. 그 넓은 이착륙지 한 가운데로 고속도로가 지하도로로 뻗어 있었다. 서로 존중한다는 느낌이다.

호텔까지 가는 시간은 많이 걸렸다. 지난 주말 교외로 떠났던 파리 시민들이 다시 들어오는 시간이었다. 호텔은 세느강을 끼고 있었다. 호텔 창문을 여니 야경을 즐기는 배 한척이 지나간다. 내일 아침을 예약한다.

한국에서 일어날 시간에 자야하는 시간이라 좀처럼 눈을 감기가 어려웠다. 불을 끄고 억지로 누웠다. 깨어보니 현지 시간으로 새벽 3시이다. 한국은 오전 10시다.

긴 비행 중에 읽었던 재레드 다이아몬드(1937~ )의 《총·균·쇠》를 꺼내들었다. 책의 내용은 ‘왜 지역마다 문명의 차이가 있느냐’이다. 저자는 인종 때문이 아니고, 환경에 있다고 보았다. 지형과 기후에 따른 유불리가 문명의 발전과 유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유라시아가 가장 발전된 문명을 가진 것도 비슷한 기후를 가진 나라들이 같은 위도 상에 있기 때문이다. 이웃나라 사이에 발전된 문명수단이 빠르게 보급되고 다시 개량되어 계속하여 전파되어 왔다. 반면에 아프리카나 신대륙은 세로로 되어 있다. 세로로 된 긴 지형이 서로 다른 기후, 커다란 사막, 높은 산이나 긴 강들로 가로막혀 있어 지역 간 단절을 시킨다. 이들 지역은 고립되어 일만 년 전 야생수렵시절의 석기시대에 멈춰버리고, 청동기나 철기의 사용법도 몰랐다.

유라시아는 가축을 통해 전염병도 쉽게 퍼졌지만 면역력도 생겼다. 스페인 수백 명의 군인들이 수백만 명의 잉카제국을 멸망시킨 것은 총의 힘이 아닌 병원균이었다. 유럽인들이 신대륙을 발견하고 정복하는 과정에서 각종 질병들이 들어와 무더기로 죽어갔고, 항체가 없는 원주민들은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문명은 태어난 지역의 환경이 좌우하는 것이다. 프랑스인도 자기들이 잘난 것이 아니다. 소통이 잘되는 유라시아 지대에 놓여있는 행운 탓이다. 신분이나 부의 이동이 자유로운 사회 환경이 우리 사회에도 필요하다. 로마가 1000년 동안 발전한 것도 비록 노예일지라도 일정한 조건만 되면 피부의 색깔을 따지지 않고 로마시민이 될 수 있는 개방적인 사회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머문 숙소는 시내중심가 세느강변에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을 나갔다. 하늘에는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처럼 먹구름이 가득 했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는 않았으나 어디로 가는지 차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세느강이 향수냄새처럼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걸어서 몇 발자국 가니 에펠탑이 보였다. 멀리서 본 에펠탑은 유혹적인 여인이었으나, 가까이 가보니 고철덩어리였다.

건축 당시 이 탑은 우아한 파리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외면 받았다. 프랑스 소설가 모파상(1850~1893)은 에펠탑이 보기 싫어 파리 시내에서 유일하게 이 탑이 보이지 않는 에펠탑 내의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었다. 세느강의 폭은 대전의 갑천보다 좁았으나 물은 가둔 것처럼 출렁였다. 776km나 되는 아주 긴 강이다. 정박된 배들은 하나의 그림처럼 보였다. 원색으로 칠한 배의 모습이 낭만적이다.

아침을 먹고 지하철로 몽파르나스 역으로 갔다. 지하철 표를 사야한다. 신용카드로 아직 안 된다. 우리처럼 버스나 트램 상호간에는 서로 환승할 수 있다. 역과 역 사이의 간격은 아주 짧았다. 어디서나 탈 수 있게 했다. 지하철은 전기가 동력인 고무바퀴로 달린다. 25년 전 시애틀에서 보았다.

몽파르나스 역은 아주 현대적이었다. 겉을 유리로 감싸고 있어 속이 다 들여다보였다. 꼭대기에는 잔디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낭트로 가는 TGV는 9시 49분 출발이다. 무엇 때문인지 10분이나 넘게 지연되었다. 사람들은 점점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출발지연에 대하여 아주 무심했다. 프랑스의 똘레랑스 정신인가. 홍세화의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에서 프랑스인들의 성격을 묘사한 것을 기억해냈다. 뻔뻔스러울 정도로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멈춘다고 한다.

프랑스 사람들이 요즘 테러 때문에 걱정이 많다. 니스에서의 테러와 성당에서의 노신부 살해사건으로 호텔에서부터 보안요원이 작은 가방일지라도 일일이 체크하고, 역 모퉁이에는 중무장한 군인들이 서 있었다.

역 계단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예술의 나라다웠다. 안내판을 유심히 들여다보니 역 근처 도시 한복판에 공동묘지가 있었다.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묻혀 있고 아주 비싸다고 한다. 삶 속에서 죽음을 생각한다면 인간은 더 현명하지 않을까?

역 출구 부근에 손님들이 역 서비스에 대한 반응을 체크하기 위한 작은 기구가 있었다. 그런데 페이스 북의 ‘좋아요’처럼 좋다는 것만 누를 수 있었다. 지나친 평가를 거부한 것일까? 사람이 사는 세상은 그래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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