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원조? 그는 혁명가였다
‘막장’ 원조? 그는 혁명가였다
배우 장두이의 '커튼콜'ㅣ‘근대 연극의 아버지’ 입센
  • 장두이
  • 승인 2012.07.10 0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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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 : 난 그간 당신의 인형에 불과했어요! 한 남편의 아내와 애를 가진 어머니 이전에, 이젠 나 자신의 의무를 다해야 겠어요! (문을 박차고 나간다)
-천천히 조명이 어두워진다-
객석은 일순 정적이었고 곧 이어 술렁이기 시작했다.

다음 날, 이 입센의 혁명적 명작 ‘인형의 집(1879)’은 신문기사로 채워졌다.
“수천 년 묵었던 우리 가정의 폐쇄된 문과 여성 해방의 지위를 자유의 문밖으로 활짝 열었다.”

1879년 ‘인형의 집’, 1881년 ‘유령’…
귀족 영웅담 떠나 소시민의 삶·현실 직시

헨릭 입센(Henrik Ibsen)은 두 말할 필요 없이 근대 연극의 문을 활짝 연 장본인이자 아버지다. 과장된 표현이 주를 이루던 당시 낭만주의 연극에 반해 치밀한 소시민의 실생활 묘사로 리얼리즘(사실주의)이 싹트기 시작했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유럽에서도 변방에 속하는 노르웨이의 입센으로부터 충격의 포문을 연 것이다.

그동안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는 늘 귀족의 영웅담을 즐겨 그려왔다. 민중의 언변도 자취도 없었다. 여기에 입센은 과감히 평범한 소시민의 가정과 개인의 문제를 그리면서 그들의 진실을 파헤쳤다.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파격적으로 실천한 것이다. ‘인형의 집’을 비롯해서 ‘유령(1881)’, ‘민중의 적(1882)’, ‘들오리(1884)’, ‘바다의 여인(1888)’, ‘헤다 가블러(1890)’ 등이 그 대표적 예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입센의 혁신도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젊은 시절 그의 작품은 참담한 실패를 거듭했다. 그의 작품에서의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투명한 거울은, 상류 사회계층에겐 못내 불편하고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확고한 소신과 신념으로 굴하지 않으며 파리 등지를 떠돌면서 계속 새로운 작품을 발표한 그는 마침내 평단의 인정을 받게 된다. 그의 작품이 모국이 아닌 외국에서 환영을 받은 사실은 매우 특이할 만 일이다.

   
 

특히 그의 회심의 작품 ‘유령’이 공연됐을 때는 가장 논쟁의 중심에 선 현실 참여의 앙가쥬망을 표방하는 작가로 우뚝 서게 된다. ‘유령’은 어떤 면에서 '인형의 집' 연장선에 있다.

“억지로 가정을 지킨다고 잘 될 줄 알아?”란 식의 또 다른 가정사 이야기다. 주인공 알빙 부인이 남편 알빙 대위 서거 10주기를 맞아 고아원 개관을 앞두고 만데르 목사도 초빙하고, 오랜만에 파리에서 돌아온 아들 오스왈드 등을 맞이했지만 집안 분위기는 불길하고 암울하다.

알빙 대위의 바람기가 알빙 부인에게 치명적이었지만 집에 돌아온 아들 오스왈드 역시 천하의 바람둥이인데다 아버지처럼 성병까지 걸린, 마치 알빙 대위를 그대로 빼다 박은 듯한 유령 같은 가정을 치밀하게 그리고 있는 것이다. 마치 요즈음 불륜을 그린 막장 TV 드라마 한 편을 보는 기분이다.

이러한 입센의 혁신적 정신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물론 기존의 세태와 영합하지 않으며, 깨어있는 정신으로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그의 탁월한 예술정신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현실에 타협하고 안주하는 예술가를 좋아하고 환영하는 이즈음, 입센의 작가 정신은 분명 우리에게 하나의 혁명적 귀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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