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예산군 가야사지에선 무엇이 출토됐나
[시민기자] 예산군 가야사지에선 무엇이 출토됐나
최근 5차 발굴조사 현장설명회…지난 2012년부터 불상 등 400여점 출토
  • 이기웅
  • 승인 2016.12.22 13: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야사지 발굴현장.사진=이기웅 시민기자

[굿모닝충청 이기웅 시민기자] 예산군과 (재)금강문화유산연구소는 지난 21일 덕산면 상가리 가야사지(충남 기념물 제150호) 발굴현장에서 제 5차 발굴조사 현장 설명회를 개최했다.

이 조사는 이달 2일부터 남연군묘 남서쪽 600㎡ 측면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고려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축조된 가야사 건축물의 유구와 ‘四月三日’라고 새겨진 명문기와 한 점 등 확인했다.

2012년도부터 진행된 발굴의 성과로는 통일신라(일부지역에서는 백제시대) 와편이 다수 수습돼 통일 신라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축조된 절로 확인됐다는 점과 ‘가량갑사(加良岬(寺))’라고 새겨진 명문기와, 불두가 없는 8개의 소조 불상가 400여점의 유물 등이 출토됐다는 점이다. 

가량갑사

가량갑사는 창건시의 사명(寺名)인 가야갑사(伽倻岬寺)를 의미하는 것이다.

가야갑사 관련 기록으로는 광자대사와 진철 대사의 불적에서 확인되는데, 광자대사는 가야갑사에서 계를 받았고, 진철 대사는 가야갑사에서 출가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야사는 통일신라 하대에는 ‘가야갑사’의 사명(寺名)으로 존속되다가, 이후 가야사로 개명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외에도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가야사(伽倻寺)와 가야갑사(악)(加倻岬祠(岳))의 기록이 함께 보인다.

상가리 중심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가야사는 한 때 수덕사를 말사로 두고 인근의 서산 보원사 보다 더 큰 규모의 사찰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1846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가야사에 속했던 남전과 묘암사 보웅전이 불태워지며 관련한 기록은 많지 않다. 

다만, ‘고려사’, ‘신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의 기록과 조선시대 중기부터 후기까지 시인묵객들이 남긴 가야산과 가야사 시와 기행문을 통해 그 단편을 살펴볼 수 있다. 

가야사는 백제시대 겸익에 의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야사에서 유출된 현존유물로 보면 예산읍삼층석탑과 보덕사석등이 990년대 중반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백제시대 와편이 다수 수습돼 최소한 이때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 가야사는 여러 번의 중창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옹스님에 의해 가야사의 중심에 원나라풍의 금탑이 세워지며, ‘고려사’에 따르면 1177년(명종 7) 3월 망이망소이 난에 예산의 호족세력인 손청이 점령하고, 16세기에는 가야사에 속한 인경사등에서 다양한 불경을 간행하는 등 가야산의 중심적 사찰로 조선시대 말까지 그 법통이 유지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아울러 ‘신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에 각각 ‘伽倻寺在伽倻山(가야사는 가야산에 있다)’, ‘伽倻寺在縣四十里伽倻山下(가야산 아래 40리 현에 가야사가 있다)’로 기록돼 있다. 

이와 함께 형승조(形勝條)에는 ‘금탑(金塔)은 그 윗머리는 구리쇠로 씌우고 네 모서리에 철사를 꼬아 만든 줄을 걸어 늘어뜨리고 풍경을 달았고 그 형태가 웅장하고 만든 법이 기이하고 교묘하여 다른 탑과 다르다’고 기록한다.
 
가야사 금탑에도 마곡사의 5층석탑의 풍마동과 같은 금동제(金銅製) 상륜(相輪)이 올라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1799년(조선 정조 23)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는 ‘이 절에 금탑(金塔)이 있는데, 매우 빼어난 철첨석탑으로 탑의 사면에는 감실을 만들어 석불을 봉안하고 있다’는 기록이 나온다.

1753년에는 가야사를 3차례 여행하며 남긴 기록인 예헌 이 철환의 상산삼매에서 가야사탑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볼 수 있고 1984년 운양 김윤식 선생의 '속음청사'에서는 남연군묘를 가야사의 빈터에 썼다는 기록이 있다. 

가야사지 발굴현장.사진=이기웅 시민기자

이번 발굴현장에는 전문가, 주민들이 함께했다. 앞으로 상가리 일원의 폐사지 문화재 보존과 활용에 주민들이 참여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날 현장설명회의 예산군 문화재 담당자는 “가야사지 면적 9230㎡ (도유지 3만 2554㎡) 이상의 대규모 사역 중 발굴한 면적은 극히 일부”라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발굴을 통해 가야사지의 새로운 전모를 밝히는 것은 물론 사역의 정비와 보존·보호 활용방안에 관련한 다양한 자료를 확보할 수 있도록 발굴조사를 지속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주민 질의에선 “가야사와 가야산의 문화 역사적 가치를 살려고 보여주는 야외전시장을 조성해야 한다”, “상가리 귀부의 사라진 사적비를 찾아 미스터리하게 사라진 가야산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사업을 추진하자” 등의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군은 주민설명회를 통해 나온 의견을 신중히 검토해 반영한다는 입장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굿모닝충청(일반주간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0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다 01283
  • 등록일 : 2012-07-01
  • 발행일 : 2012-07-01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창간일 : 2012년 7월 1일
  • 굿모닝충청(인터넷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7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아00326
  • 등록일 : 2019-02-26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굿모닝충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굿모닝충청.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mcc@goodmorningcc.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