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금지법' 100일 - ① 준비 없는 법의 대가 “선의의 피해가 너무 크다”
'청탁금지법' 100일 - ① 준비 없는 법의 대가 “선의의 피해가 너무 크다”
  • 김갑수 기자
  • 승인 2017.01.12 05: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5일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100일이 되는 날이었다. 이 법이 시행된 2016년 9월 28일은 그동안 우리사회의 오랜 관습, 혹은 미풍양속처럼 여겨졌던 촌지와 대접, 청탁과 거래 문화와의 결별을 알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특히 김영란법 제1조에서 “공직자 등에 대한 부정청탁 및 공직자 등의 금품 등 수수를 금지함으로써 공직자 등의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한 것처럼 주요 대상이 된 공직사회가 가장 먼저 바뀌기 시작했고, 언론인과 교직원들 역시 스스로를 경계하며 시행 초기 큰 파장 없이 제도 정상화 단계를 거치고 있다. 국민 대다수 역시 법의 기본 취지에는 큰 불만 없이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하지만 ‘식사비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비 10만 원을 초과할 수 없다’는 단서조항은 한국사회를 떠받치고 있던 밑바닥 경제구조에 큰 파장을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법이 시행되자마자 곧바로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전국 외식업계와 농축수산물 생산기반이 휘청거릴 정도로 호된 역풍을 맞은 것은 물론, 이들 산업에 연결된 유통업계도 불황에 휩싸였다. 100일 남짓한 시간 벌써 빚더미에 올라 거리로 나앉는 사례가 속출하고,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까지 발생했다. 
초기 발생하기 마련인 시행착오니 감내하라 할 수도 있지만 ‘준비 없는 법’의 대가치고는 충격이 너무나 컸다. 지금이라도 현장에서의 문제점을 파악해 대책을 세우고 법을 보완해 보다 완벽한 제도 정착을 모색해야 될 시점이 아닌가 싶다.
김영란법 시행 100일을 맞아 굿모닝충청이 각 분야 경제현장을 찾아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봤다. [편집자 주]

“농촌 현실 전혀 고려하지 않아… 직격탄” 
‘청탁금지법’ 100일 - 20년 양란재배 농민의 울분

[굿모닝충청 김갑수 기자] “공무원 승진할 때 난(蘭) 하나 받는 게 뇌물이라 안 된다구유? 대신 돈 봉투 주라는 것과 뭐가 다르대유….”

충남 홍성군 옥암리에서 20여 년째 양란을 재배하고 있는 황규순(63) 씨. 이곳에서 태어나 고향을 지켜 온 황 씨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로 인해 화훼농가가 죽어가고 있다며 이같이 목소리를 높였다.

1995년 심비디움을 재배하기 시작했을 때가지만 해도 황 씨는 부푼 꿈을 꿀 수 있었다. 1998년에는 중국 수출 길까지 열렸는데. 2개 팔면 특상품 기준 쌀 한 가마(약 10만 원) 가격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때의 수익을 바탕으로 농장의 규모를 늘릴 수 있었다. 초기 투자비용이 5000만 원이었는데 지금은 땅값을 빼고도 13억 원 정도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니 꽤 성공한 경우로 꼽힌다. 물론 사업 확장 과정에서 빚이 늘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황 씨에 따르면 충남에는 양난 생산 농가가 약 20여 곳에 불과하다. 황 씨의 농장은 규모 면에서 중상급에 해당한다. 어린 묘를 사와 20개월 후에 판매하는데 생산 원가를 감안하면 최소 5000원 이상은 받아야 큰돈은 못 벌더라도 농장 운영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 덕에 아들 둘 학비를 대고 잘 키워 장가를 보낼 수 있었다. 황 씨에게 난은 인생의 전부이자 은인인 셈이다.

그러나 김영란법 도입 이후에는 출하 가격이 급격히 떨어졌고, 경매시장에서 유찰되는 경우도 많아 큰 피해를 겪었다는 게 황 씨의 설명이다. 그나마 농가들이 생산량을 줄여 지금은 가격이 회복된 상태지만 언제든지 폭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황 씨는 전망하고 있다.

황 씨는 “매년 12만 개 정도를 판매해 5억 원 안팎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데, 출하가격은 10년 전과 똑같이 5000원 선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인건비와 자재비는 계속 상승하고 있다”며 “이 와중에 김영란법까지 생겨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토로했다.

교육청을 비롯한 주요 기관의 인사에 맞춰 출하시기를 조율해 왔지만, 김영란법으로 인해 판매량이 급감하다보니 큰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그는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우리 국민은 꽃을 선물로 인식하고 있다. 보기 좋으라고 집에 사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김영란법으로 인한 타격이 심각한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황 씨는 “농촌에서 태어난 죄로 여기까지 왔다. 쌀값 하락 등으로 고충이 많다”며 “사실 화훼의 경우 수년 전까지만 해도 효자품목이었다. 1년에 6, 7억 씩 수출까지 했었다. 그 때 물류비 지원이라도 해줬더라면 지금처럼 수출 길이 막히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정부 관계자들이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법을 만들어야 했다. 농촌이 얼마나 어려운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인구가 적어서 그런지 농촌에 대한 배려가 없다”며 “농사꾼들은 도무지 어디에 하소연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울분을 삼켰다.

황 씨는 그러면서 구성진 충청도 사투리를 섞어 이런 말을 했다.

“아들들에겐 절대 이 일 안 시킬 규. 계속 헐지 말지도 잘 모르겄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굿모닝충청(일반주간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0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다 01283
  • 등록일 : 2012-07-01
  • 발행일 : 2012-07-01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창간일 : 2012년 7월 1일
  • 굿모닝충청(인터넷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7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아00326
  • 등록일 : 2019-02-26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굿모닝충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굿모닝충청.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mcc@goodmorningcc.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