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영산강 라이딩] ③“자전거의 꿈은 계속… 고로 나는 존재한다”
[임영호의 영산강 라이딩] ③“자전거의 꿈은 계속… 고로 나는 존재한다”
  • 임영호 전 코레일 상임감사
  • 승인 2017.06.13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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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은 전남 담양군 용면 용연리 용추봉(龍湫峯, 560m)에서 발원해 광주·나주·영암을 거쳐 서해로 흘러 들어간다. 총 길이 길이 115.5 km. 유역면적 3371 ㎢. 북에서 남으로 호남의 민초들과 함께하며 역사를 관통하고 있다. 지난 2월 13일 임기를 마친 임영호 전 코레일 상임감사는 오랜 계획 끝에 봄기운이 한창이던 4월 초 영산강 강줄기를 따라 길을 달렸다. “라이딩 후 소회를 남기지 않을 수 없어 몇 자 적었는데, 대선이 한창이었던 터라 이제야 글을 내어 보인다”고 한다. 세 차례에 걸쳐 그의 글을 소개한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옛 영산포역에 전시된 증기기관차를 보러갔다. 미카형 증기기관차였다. 일본어로 황제는 ‘미카도’인데 이중 ‘미카’만 따서 지은 것이다. 1919년 300량이 도입된 증기기관차는 1967년 디젤기관차가 나오기 전까지 운행하다가 전량 폐기되고, 현재 8대 만이 전시용으로 남아있다. 그 중 한 대가 여기에 있다.

택시기사한테 아침식사를 할 만한 식당을 물었다. 전라도 음식은 어딜 가나 무엇이든 맛있다. 한 상 가득한 아침밥을 먹고 영산강 하구언으로 출발했다. 

20분 정도 가니 제일 먼저 천연염색 박물관이 보인다. 여기는 영산강과 바닷물이 합류하는 지역으로 남색인 쪽 재배가 성행했다. 쪽은 초록색의 여귀과 들풀이다. 게다가 이 지역은 누에를 길러 비단을 생산해 왔고, 목화도 많이 생산했던 곳이다. 국가 무형문화재인 전통 염색기능 보유자도 이 지역에 살고 있다.

영산강 유역에는 수십 기의 고분군이 있다. 
꼭 경주왕릉을 보는 것 같다. 10분쯤 가서 우리가 찾은 곳은 나주 대안리 고분군(群)이다. 이곳은 1930년대 말,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에 의하여 처음 조사되었다. 초기 삼국시대 마한(馬韓)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다음 세상이 있다고 믿을수록 무덤은 큰 것 같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죽음은 오히려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큰 산과 같은 스핑크스를 보라. 19세기에 와서야 니체(1844~1900)는 “신은 죽었다”고 외쳤다. 죽은 정승이 산 개만 못하다.

이제 다시 영산강 자전거 길로 들어선다. 강변의 밭에는 청보리가 자라고 있었다. 어릴 적 고향에서는 논이든 밭이든 보리를 꼭 심었다. 지금은 남쪽으로 와야 보리를 볼 수 있다. 청 보리는 식이섬유가 많고 열량이 적어 다이어트에 제격이다. 아직 바람과 맞설 만큼 크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4월말 쯤 청보리 축제를 연다. 

언제부터인가 ‘보리’ 하면 슬픔 느낌이 든다. 보리를 수확하기 전에 이미 식량이 다 떨어져 굶어서 죽는 사람이 있었다. 5~6월의 춘궁기(春窮期)를 ‘보릿고개’라고 부른다. ‘보리피리’ 시인 한하운(1920~1975)은 지금은 나을 수 있는 병이지만 당시는 천형(天刑)이라는 문둥병을 앓았다.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니리” 로 시작하는 ‘보리피리’는 사람과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외면당한 그 자신에 관한 시이다.

영산강의 마지막 보인 죽산보를 만났다. 보 근처에는  낚시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배스를 잡고 있었다. 한적한 강변길이다. 한 동안 어떤 누구도 만나질 못했다. 죽산보를 지나니 바로 운치 있는 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잠시 쉬어 가면서 강물에서 배를 타고 낚시질하는 풍경을 감상했다.

중국 양나라 도홍경은 산촌에 숨어 살면서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다. 산속에 무엇이 있느냐고 임금이 묻자 시를 지어 답했다.

산중에 무엇이 있냐고요
고개 위에 흰 구름 많지요
단지 혼자만 즐길 수 있고
임금님께 다 줄 순 없지요

강변길 옆 산 위에 성곽처럼 큰 목조건물이 보였다. 
나주 영상 테마파크이다. 가파른 길인지라 ‘끌바’를 했다. 너와지붕의 집들과 성곽, 망루 등이 잘 지어져 있었다. 여기가 ‘주몽’ 촬영지이다. 주로 고구려의 역사를 재현해 놓았다. 강한 나라가 한 순간에 망했다. 거안사위(居安思危), 편안한 시절에 위태로운 때를 생각하지 못한 결과이다. 정치란 피를 흘리지 않은 전쟁이다. 전쟁에서는 단 한번 죽지만 정치에서는 여러 번 희생된다. 망루에서 보니 영산강과 나주평야가 아름답게 다가왔다.

한참동안 강가의 갈대숲을 보면서 달렸다. 올 갈대는 언제 싹이 나오나. 작년에 자란 갈대는 아직 누렇게 서 있었다. 여기 자전거 길은 마을동네로 들어간다. 동네사람들이 다시 내달라고 했는지 강가 옆으로 가파른 자전거 길을 만들고 있었다. 타고 올라가기에는 힘이 부친다.  

꼭대기에는 복룡전망대가 있다. 거기서 무안느러지를 볼 수 있다. 영산강 제2경이 무안느러지이다. 느러지란 말이 우리말인가 보다. 물체의 끝이 아래로 처지게 생겼다고 그렇게 작명했나. 강 건너 보이는 땅은 한반도 지형과 비슷하게 생겼다. 영월의 동강처럼 ‘물돌이’가 아름답다. 눈 아래 보이는 강물에 물든 노을은 일품이라 한다.

내려오는 길 옆, 동네 어귀 작은 교회가 보기 좋았다. 자전거를 세우고 한 장 찍었다. 핀 목련도 아름다웠다. 운전하는 목사님이 노인 몇 분을 봉고차에서 내려주고 있었다. 그들도 봄꽃처럼 훈훈하게 보였다.

뚝방길을 1시간 정도 갔을까 몽탄대교가 나왔다. 몽탄대교의 소재지는 무안군이다. 꿈 여울이라는 몽탄(夢灘)은 고려태조 왕건과 관련된 지명이다. 원래 이 자리에 나루터가 있었다. 강 건너 나주에 진을 치고 있던 고려 왕건은 후백제 견훤에게 쫓겨 퇴각하던 중이었다. 영산강이 범람하여 오고 가지도 못했다. 이때 꿈에 한 노인으로부터 썰물로 물이 빠진 여울로 안내받아 영산강을 무사히 건넜고, 무안에서 매복해 견훤 군을 대파한다.  

이제 영산강은 바다처럼 넓어졌다. 넓을수록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하다.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에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고 한다. 고요한 모습은 집착함이 보이질 않아 좋다. 근처 마을도 봄꽃의 아름다움으로 환했다.

12시가 다 되어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많이 사는 일로읍(一老邑)으로 들어갔다. 영산강 변에서 10분쯤 안으로 달렸다.

시골식당은 떠들썩하다. 주인아주머니는 팔십이 다 된 노인으로 입심이 좋았다. 베트남에서 시집온 아주머니는 한국 사람처럼 민첩하다. 근처 공사판에서 온 우즈베키스탄인 노동자도 매운 김치를 한 입 넣고 잘도 먹는다. 궁해서 그럴까. 문화의 본질은 힘의 산물인가보다.

우리는 하구언으로 가기위해 지방도로를 타고 강 하류로 접근했다. ‘품바’의 발상지라는 표지판이 길가에 서 있었다. 품바는 장터나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동냥하는 사람이다. 그 속에는 한국의 전통 랩 ‘품바타령’이 있다. 세상에 부딪히는 소리다. 

실제 ‘천팔만’이라는 사람은 일제강점기 목포 부두 노동자로 쌀을 공출하는 일본에 저항하다 이곳저곳 쫓겨 다니는 신세로 전락, 품바생활을 하다가 이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삶이란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투쟁인가.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살았던 분이다.

막 강둑에 도달하기 전, 깜짝 놀랄 만큼 멋진 미술관이 있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못난이 미술관’이다. 집이 하얀색으로 장식되었고, 정원 소품들과 주위 환경이 누구에게도 눈길을 끌 수 있게 세련되게 꾸며졌다. 위풍당당한 외적 아담과 겸손한 내적 아담의 조화이다. 이 궁벽 진 곳에 미술관을 만든 이는 누구인가.

미술관은  마음의 피난처이다. 버거운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잠시 숨 돌릴 수 있는 공간이다. 그 사람은 무엇인가 이 사회에  기여를 한 것이다. 나 자신은 언제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도덕적 목표에 진정으로 천작해 본적이 있는가. 무의식적 권태를 안고 살아 왔다. 막연히 좋은 사람만 되려 했다. 세상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는 전략적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다.

영산강 하구 둑까지 10㎞ 남았다. 
영산강 제1경 영산석조(靈山夕照)라는 큰 비석이 보인다. 큰 호수인 강물에 해가 앉을 때의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한다. 여기서 하구언까지는 일직선에 가깝다. 목포사람들이 매일 이 길을 라이딩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다. 막걸리 한잔이 그립다. 술이란 절로 빼어난 명승지로 만드는 힘이 있다.

멀리 영산철교가 보인다. 대불공단을 위하여 만들어진 철교다. 기차가 지나간다. 목포가 가까울수록 전남도청 소재지인 남악 신도시가 보인다. 아파트촌이다.

드디어 종점이 보인다. 영산강 하구언은 길었다. 4350m. 목포와 영암군을 잇는 방조제이다. 서해의 조수간만의 차이가 커서 수시로 농경지가 침수돼 피해가 컸다. 1981년 하굿둑 건설로 거대한 영산호가 생겼다.

만약 침수되는 땅을 국가가 습지로 활용하고 갯벌을 그대로 두었으면 어떠했을까. 도덕경에 禍福常衣(화복상의), 복에는 화가 숨어있다는 말이 있다. 갯벌은 요즘 황금덩어리이고, 습지는 인간의 소중한 구경거리이다.

종점 안내판에 발원지 기점 149.6㎞라고 쓰여 있다. 우리 일행은 문화탐방을 겸해서 180㎞ 정도 라이딩 한 것 같다. 여행은 호기심이라는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이다. 더구나 자전거 여행은 자기 힘으로 힘들게 바퀴를 돌려야하는 힘든 여정이다. 그만큼 사람 냄새가 나고, 이야기 거리가 많다. 이제 목포역으로 간다. 저녁 늦게 도착할 것 같다. 자전거의 꿈은 계속 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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