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7번국도 라이딩] ③삶과 사랑의 정거장 ‘낙산사·하조대’
[임영호의 7번국도 라이딩] ③삶과 사랑의 정거장 ‘낙산사·하조대’
  • 임영호 전 코레일 상임감사
  • 승인 2017.07.16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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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 전 코레일 상임감사
7번국도는 부산에서 출발해 경북 포항·영덕·울진과 강원도 삼척·동해·강릉·양양·고성까지 총 연장 513.4㎞, 동해안을 따라 이어진 국내 최고의 여행코스다. 넘실대는 동해바다를 끼고 곳곳에 펼쳐진 해변이 절경을 이루고, 항포구마다 뱃사람들의 진한 삶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때론 자동차로, 때론 자전거로, 때론 걸어서 이 길을 꼭 가고 싶어 하는 이유도 모두 이런 이유다. 거침없는 ‘자전거 라이더’ 임영호 전 코레일 상임감사가 지난 6월 2일부터 4일까지 이 길을 달리며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소회를 독자들에게 전해왔다. 1만 8000자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글이 마치 우리를 7번국도 한복판에 데려다놓은 듯하다. 앞으로 다섯 차례에 걸쳐 그의 글을 소개한다.

 

6월3일 아침, 일찍 깼다. 벌써 바다 저쪽 뭉게구름이 벌겋다. 오랜만에 본 일출이다. 박두진은“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 띈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라고 노래했다. 해가 불덩이면 인간의 심장도 그렇다. 우리는 어떤 고난이 닥쳐도 저 태양에 희망을 걸고 생명을 건다. 삶과 강하게 맞선다는 다짐을 한다.

실제 인생은 반복될 뿐이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말한다. “지금 이 인생을 다시 한 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라. 위험하게 살아라.” 온몸에 전율을 느낀다. 고난이 있다 해도 기죽지 말고 삶의 의지를 불태워야 한다. 자전거 여행도 그렇다.

7시 출발이다. 오늘은 구름이 많다고 한다. 바람이 불어 시원하지만 바닷물을 심하게 흔든다. 어제도 인근 해변에서 사망자가 발생했다.

곧 용호리 해변이 나왔다. 거기서 도로를 타고 30여 분 가니 낙산사 일주문이 보인다. 이곳이 낙산사 정문이다. 낙산사는 몇 번 왔어도 질리지 않는다. 10년 전 산불로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그것은 아득한 신화다. 산천은 무서울 만큼 색깔이 짙다.

먼저 홍예문(虹霓門)이다. 어려운 한자다. 아침부터 나와 있는 매표소 직원에게 물었다. 무지개 홍, 무지개 예이다.

의상대(義湘臺)에서 바다를 보았다. 코발트빛으로 수많은 빛의 파편이 출렁인다. 신이 아니면 누가 이 자연을 이토록 아름답게 설계할 수 있을까.

홍련암. 의상대사가 불가에 입문하여 공부할 때의 인연이 있는 곳이다. 꼭두새벽부터 왔나. 두 중년 부부가 불경을 펴들고 기도하고 있었다. 천지를 바꾸는 일만 아니라면 소원이 무엇인지 들어줄 것 같다. 피안의 세계가 아닌 지금 사는 현실에서의 바라는 것이다.

한차례 소낙비가 내렸다. 호랑이 장가가는 비다. 처마 밑에서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얼마 만인가 이 한적함. 우아한 여유다. 소낙비는 그쳤다. 맑은 햇살이 눈부시다.

낙산사는 관음보살이 머문다는 사찰이다. 관음보살은 중생의 마음속에 있는 불안과 두려움을 없애준다. 내 조상들이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향한 곳도 바로 관음보살이다.

낙산사만큼 수난이 많은 곳은 없다. 소실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다시 우뚝 선다. 본래를 유지하면서 더 아름답게 세련되게 변한다.

단원 김홍도 덕분이다. 1778년 정조는 명한다. 유람하면서 풍경을 그려가지고 오라. 정조는 아름답다는 관동팔경과 금강산을 천재 화가 김홍도를 통하여 보고 싶었다. 낙산사도(洛山寺圖)가 그중 하나다. 우리는 훌륭한 왕과 그의 탁월한 신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절 내 이 길 저 길을 걸으면서 분심(分心)이 생겼다. 당대의 고승 원효대사와 의상대사를 생각한다. 김훈은 그의 책 《자전거 여행》에서 논했다. 원효는 구체적인 실존 속에서 얽매이지 않았고, 거침이 없었다. 의상은 세상에 한눈팔지 않고 진리를 찾아 화엄의 사유체계를 건설했다.

원효는 과부인 공주를 제 발로 찾아가 설총을 잉태하지만, 의상은 당나라 유학시절 산둥에서 만난 선묘로부터 도망치고 외면하고, 그녀는 죽어 낙산사를 지키는 혼이 된다. 김훈은 결론을 맺었다. 불법의 바다는 넓지만 슬픔의 바다도 넓다. 머리가 더 중요할까, 심장이 더 중요할까. 마음을 닦느라고 타인의 마음을 읽고 위로하지 못한다면 부처가 강조한 자비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바닷바람은 억셌다. 풍경 소리가 요란하다. 지나가는 사람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부처는 우리에게 묻는다. “함께 행복할 수는 없는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바른 삶의 방향을 고민하라고 다그친다. 구도행이고 보살행이다.

벌써 한 시간이 되었구나. 아침 식사는 낙산사 삼거리에서 했다. 골목으로 약간 들어간 감자탕집이다. 보이기에 찾아갔지만 대박이었다. 감자탕 집만 50년 운영한 사람이다. 나이는 77세, 아줌마는 서글서글하다.

부여사람으로 20살이 갓 넘어 서울로 시집갔다. 4·ᆞ19혁명이 터졌다. 당시 잘 나가는 집이라 무작정 지방으로 피했다. 이제 돌아가야지 생각했다. 더 힘들 수 있는 5·ᆞ16혁명이 일어났다. 이제 다시 돌아가는 것을 포기했다. 인연이 없는 이곳까지 흘러들어왔다. 식당을 하며 하나의 꿈에 하나의 꿈을 보태면서 살아왔다.

족한 줄 알면 욕이 없다. 넉넉지 않았지만 가족들이 자기 밥벌이하며 잘 살고 있다 한다. 식사를 준비해 주면서도 연신 주문이 들어왔다. 그 연세에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다. 즐겁게 일한다. 손님이 많은 비결이 뭐냐고 물었다. 한결같이 착한 마음으로 산다.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는 사람은 자기가 행복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한다. 그는 행복이 무엇인지 안다.

낙산 해변 주변의 7번 국도를 따라 아래로 쭉 내려갔다. 낙산대교는 꽤 긴 다리다. 연어가 돌아온다는 길목 남대천이다. 설악산 턱밑에서 단풍이 막 시작할 때 연어는 바다에서 살다가 민물로 올라와 알을 낳고 죽는다. 40분 정도 가니 동호해변이다. 철조망은 해변과 단절시킨다. 현실을 알게 하는 가슴 절인 풍경이구나. 오늘은 갈 길이 멀어선지 꽤 긴 거리를 쉬지 않고 달렸다.

30분 지나니 하조대(河趙台)다. 조선의 개국공신인 하륜(河崙)과 조준(趙浚)은 여기서 은둔하며 혁명을 모의했다. 나는 물 하(河)에 바라볼 조(照)가 아닐까 했는데, 하륜과 조준의 앞자리를 모은 것이다.

미인에 추한 이름을 지었다. 차라리 하씨 집안 아들과 조씨 집안 딸이 양가의 반대로 여기서 빠져 죽었다는 전설이 더 아름답다. 아름다움을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 우리의 기준으로 지었구나. 인간이 자연을 모독한 것이다. 자연의 본질로 돌려줘라.

하조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은 아름답다. 사실 어디 아름답지 않은 동해안의 풍경은 없다. 기암절벽 바위 위에서 자란 소나무, 푸른 바다에 쓸쓸함을 색칠한 하얀 무인등대, 수심이 깊지 않고 완만한 긴 수염 해변, 해안을 둘러싼 수백 년 우거진 송림, 이른 새벽 바다 위에 해가 떠오르는 광경. 결국, 아름다움도 자신의 눈으로 자기 안에서 만들어 나오는 것이다. 알면 알수록 사랑한다.

하조대에서 도로를 타고 잠깐 가니 조그마한 항구가 나온다. 기사문항이다. 기사문? 이름이 특이하다. 한 여성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낚시는 남자의 전매였는데, 항구가 낭만으로 변한다.

다시 10분 정도 도로를 타고 가니 38선휴게소다. 그동안 온 지역은 6ᆞ25전쟁 전에는 이북 땅이었다. 38선은 과거 8ᆞ15 해방 때 일본의 무장해제를 위하여 미국과 소련이 그은 분할 통치 선이다. 2차 대전 종전에 아무런 공이 없고 피지배 국가인 우리는 강대국의 결정에 속수무책이었다.

국가는 이성이 없다. 오로지 힘의 논리만이 있다. 현재에 사는 우리는 “왜”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여야 한다. 과거를 통하여 오늘을 반성해야 한다. 함석헌은 교육도 ‘나라를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라는 정치를 가르쳐야 고난의 역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휴게소 치고는 아주 경관이 좋다. 하나 있는 편의점 창가에서 캔맥주로 사치를 누릴 수 있다.

해변은 벌써 여름이 왔다. 인간들이 그렇게 행동한다. 화보를 찍기 위하여 수영복 차림으로 백사장위에서 이런 저런 포즈를 취한다. 연신 셔터 소리를 냈다. 커피가게의 커피맛은 사람도 한몫 한다. 주인인 이모와 조카딸처럼 달달하다. 아메리카노 한잔으로 바다를 샀다. 내 바다 풍경을 내 마음대로 색칠했다. 아모르 문디(Amor mundi). 이 세상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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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배기 2017-07-17 23:15:27
홍련암? 우리나라 맞아요? 절경일세!~ 감탄이 절로나옵니다! 공짜구경 시켜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꾸-뻑!~^^

이주형 2017-07-17 15:18:49
그냥그냥 자전거를 타는 스포츠가 아니라... 자전거 여행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작가님의 해박한 지식과 재미진 글쏨씨 때문에 늘 잘읽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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