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7번국도 라이딩] ⑤하늘을 이고 땅을 구르며 바람을 타고 자전거는 달린다
[임영호의 7번국도 라이딩] ⑤하늘을 이고 땅을 구르며 바람을 타고 자전거는 달린다
  • 임영호 전 코레일 상임감사
  • 승인 2017.07.18 11:08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번국도는 부산에서 출발해 경북 포항·영덕·울진과 강원도 삼척·동해·강릉·양양·고성까지 총 연장 513.4㎞, 동해안을 따라 이어진 국내 최고의 여행코스다. 넘실대는 동해바다를 끼고 곳곳에 펼쳐진 해변이 절경을 이루고, 항포구마다 뱃사람들의 진한 삶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때론 자동차로, 때론 자전거로, 때론 걸어서 이 길을 꼭 가고 싶어 하는 이유도 모두 이런 이유다. 거침없는 ‘자전거 라이더’ 임영호 전 코레일 상임감사가 지난 6월 2일부터 4일까지 이 길을 달리며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소회를 독자들에게 전해왔다. 1만 8000자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글이 마치 우리를 7번국도 한복판에 데려다놓은 듯하다. 앞으로 다섯 차례에 걸쳐 그의 글을 소개한다.

 

6월 4일, 기차소리에 눈이 떠졌다. 숙소는 기찻길 위에 지은 임시건물이다. 과거 공사장을 쓰던 것을 휴양소로 재활용한 것이다. 자연이 좋으면 다 좋다. 창을 열면 넘실대는 파도와 모래사장은 지천이다. 해가 떠오른다. 웃음 잃지 않은 누이처럼 구름에 숨어서도 부드러운 햇살을 만든다.

대전으로 떠나는 날이다. 6시 출발이다. 해장국을 들고 싶었다. 어제 마신 술이 불편하다. 해장국집을 찾으려면 묵호항 근처까지 내려가야 한다. 아침바다 바람은 약간 써늘하다.

대진항과 어달항을 지나 20분간 가니 바다 옆길에 횟집이 즐비하다. 곰치해장국 식당을 택했다. 생선에도 곰처럼 생긴 것이 있다. 이것이 곰치다. 이름답구나. 양식은 불가능하다. 모두 자연산이다. 수심 500m 이하의 깊은 바다에서만 산다. 가래 천식에 좋다나.

소위 ‘진짜 원조’라는 집에 들어갔다. 많은 사람이 왔다간 흔적이 있다. 나이 들어 찾아갈 고향이 없으면 부부는 서로의 고향이 된다. 정지용(1902~1950)의 《향수》에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말벗은 아내”와 같은 인상이다. 

퉁퉁한 60대 주인 아주머니는 연신 정감 있는 사투리로 자기네 곰치국을 선전한다. 가격은 1만 5000원이다. 몸속으로 흘러들어간 뜨거운 국물은 성질 난 위를 부드럽게 감싸면서 달랜다.

자전거는 10분 동안 달리니 동해시 구역인 묵호항에 들어섰다. 묵호항은 울릉도로 가는 배편이 있다. 묵호항은 아름답다.

특히 이번에 둘러보지 못했지만 묵호등대로 가는 길에 동화 속의 예쁜 마을이 있다. 등대오름길. 다산 정약용(1762~1836)은 걷기를 청복(淸福)이라 했다. 이 곳은 ‘해파랑길’ 중 하나다. 해파랑길 동해안은 ‘태양과 함께 도보로 걷는 사색의 길’로, 총 길이는 770km다. 문화체육부가 동해안 탐방로 이름으로 지은 것이다.

묵호항에서 동해시로 가는 자전거 길은 기찻길과 나란히 간다. 동해안과 가장 가까이 달리는 열차이다. 풍광이 좋은 노선이다. 이 선은 일제강점기에는 동해북부선이었다.

먼저 함경남도 경원선이 연결된 안변과 강원도 고성 사이를 잇고 동해안을 따라 강릉·삼척·울진·포항까지 연장하여 동해남부선을 통해서 부산까지 직접 연결시킬 계획으로 착수된 철도선이었다. 1937년 12월 1일 양양까지가 개통되었으나 8·15광복으로 완공하지 못하였고, 6·25전쟁 때 휴전선∼양양 사이의 철도는 철거된 채 현재에 이른다.

현재 코레일에서 정동진역에서 동해역을 거쳐 삼척역까지 바다 열차라는 관광열차를 운행하고 있다. 총 길이가 56㎞로, 1시간 반이 걸린다. 하루 한 차례 왕복 운행한다. 기준요금은 1만 5000원 수준이다. 바다 열차는 넓은 창 너머로 보이는 바다의 시원한 풍경은 물론 불가사리, 조개 등 바다 생물들로 바다 속처럼 객실을 꾸며놓아 볼거리가 풍성하다.

묵호항에서 30분 정도 가면 동해항이다. 동해항은 비교적 크다. 이 항구에는 국제터미널이 있다. 유라시아를 횡단하려면 여기서 배로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야 한다. 일주일에 한 번 배편이 있다. 만 24시간 정도 걸린다. 항일유적지는 러시아 연해주에 많다. 한 번 가보기를 권한다.

추암해수욕장까지 5㎞다. 동해항을 한참 돌아서 다시 해안 길로 들어섰다. 추암해수욕장은 200m 안 되는 작은 해변이다. 그만큼 조용하고 평화스러웠다. 칼바위·촛대바위 등 작은 기암괴석 경관이 빼어나다. 작은 해금강이다.

오늘따라 너울성 파도가 심하다. 파도가 바위 군(群)에 부딪쳐 만든 물보라는 장관이다. 이 촛대바위에 아침 해가 걸치면 어떨까. 그 광경을 보고 싶다. 오죽하면 한 점의 감성조차 없을 한명회(韓明澮)까지도 촛대바위를 비롯한 바위군을 능파대(凌波臺)로 극찬했을까. 건널 능(凌), 물결 파(波). 미녀가 가볍고 우아한 걸음걸이로 물결을 건너듯 하다는 의미이다.

인디언들은 자연은 하나하나 고유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마다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인디언이 여기에서 산다면 이름으로 가득한 세상을 만들었을 것이다. 여기 있는 모두가 인간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다. 위대한 정령들이 우리에게 축복과 행복을 주고 있다.

이제 마지막 여정의 목적지이다. 삼척시까지 가서 관동팔경의 하나인 죽서루(竹西樓)를 보고 대전으로 가련다. 죽서루는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에서 제1경으로 칭송했던 누각이다. 관동팔경은 해변 가에 있다. 죽서루만 하천에 있다. 추암해수욕장에서 죽서루까지는 족히 30분 정도 걸린다. 해안도로에서 벗어나 시내 중심지역으로 향한다.

시내를 관통하는 오십천에는 자전거 길이 만들어져 있다. 물을 50번 건너야 한다고 해서 오십천이다. 하천의 길이는 48.8㎞로 짧지만, 하천의 굽이가 심하다. 곳곳에 하천 협곡의 암벽이 절경이다. 오십천 둑방길을 이용하여 시내로 들어와서 의료원 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오십천로 따라 170여m 가면 죽서루가 저쪽 한쪽 편에 서 있다.

오십천(五十川)가에 세워져 있는 이 누각이 얼마나 아름다우면 단원 김홍도나 겸제 정선이 화폭에 담았을까. 누각은 자연암반과 돌 위에 세운 것으로 기둥의 길이가 각기 다르다. 정말 자연친화적이다. 처마 밑에 삼척부사 허목(許穆,1595~1682)이 일필휘지로 쓴 제일계정(第一溪亭)현판이 붙어있다. 시냇물이 흐르는 제일 빼어난 곳이라는 뜻이다.

신을 벗고 들어가 앉으니 시원하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수많은 지배계층의 백성을 수탈하는 연회가 수시로 있었을 것이다. 미는 도덕적이어야만 하는 것이냐. 어중간한 지식 가진 자가 더 감성적이다.

또 하나는 지식으로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이 아닌가 이다. ‘몽블랑’은 가장 높은 봉우리로 천연의 아름다움에 싸여 있다는 관광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 사람의 눈이 주변 산의 아름다움은 제쳐두고 오로지 몽블랑에만 머문다. 우리도 죽서루가 관동 제1경이라 하여 죽서루에만 눈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철의 눈은 정철의 눈이고 임영호의 눈은 임영호의 눈이다. 자신의 눈으로 봐야한다.

드디어 이제 집에 간다. 공재불사(功在不舍), 성공은 그만두지 않음에 있다. 첫날 70㎞, 둘째 날 110㎞, 오늘 오전까지 35㎞. 총 215㎞를 달렸다. 모두가 천리마를 꿈꾼다. 그건 이상이고, 우리는 대부분 더딘 말에 속한다. 더딘 말은 쉬지 않고 열흘을 달리면 된다. 반걸음을 비웃지 말자.

여기서 5분 거리에 터미널이 있다. 대전까지 4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점심을 터미널 근처 기사식당에서 했다. 오랜만에 먹는 백반이다. 피곤은 하지만 마음이 넉넉하다.

평생 볼 바다를 다 보았다. 동해안의 아름다움을 알았다. 풍경이 내 마음에 많은 것을 주었다. 날을 잡아 다시 삼척에서 포항까지 가련다. 나의 애마 청륜(靑輪)을 그곳으로 들이댈 것이다. 남쪽 하늘을 이고 땅을 구르며 바람을 타고 가련다.  < 끝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주형 2017-07-20 05:01:46
첫편부터 전부 다 읽어봤는데... 김훈의 자전거여행보다 훨씬 재미있습니다.*^^* 7번국도를 따라 펼쳐지는 멋진풍경을 훨씬 더 멋지게 그리고 재밌게 알려주셔서 모처럼 즐거이 읽어본 기행문이었네요

곱배기 2017-07-19 09:11:21
같은 언어라도 표현이 참 좋아서 꼭 가보고 싶게표현해 주셨네요. 긴 여정 전 앉아서 편하게 구경 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굿모닝충청(일반주간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0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다 01283
  • 등록일 : 2012-07-01
  • 발행일 : 2012-07-01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창간일 : 2012년 7월 1일
  • 굿모닝충청(인터넷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7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아00326
  • 등록일 : 2019-02-26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굿모닝충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굿모닝충청.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mcc@goodmorningcc.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