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전 조선에도 '아이돌'이 있었다
500년 전 조선에도 '아이돌'이 있었다
배우 장두이의 '커튼콜'
  • 장두이
  • 승인 2012.07.10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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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 가는 석양 무렵.......

마을 어귀에 오늘도 서 있는 장승과 솟대 사이를, 한 무리의 남정네들이 서성거리며 나지막한 분지에 둘러싸인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남정네 모두 너 나 할 것 없이 등에 봇짐을 둘러메고 그렇다고 등짐장수는 아닌 것이 무언가 초조한 얼굴들로, 제법 중후한 느낌이 드는 중년의 사내를 응시하고 있었다. 분명 그는 이 무리의 우두머리 격이리라. 이들은 그를 꼭두쇠라고 부른다.

이윽고 꼭두쇠가 결심이 섰는지 고갯짓을 하자 마침내 꽹과리 북, , 장고, 태평소를 꺼내 신명나게 불고 두드리기 시작한다. 석양 무렵 퍼져나가는 그 소리는 누가 들어도 절로 어깨와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 사물은 사방 십리까지 들린다 했던가......

이윽고 오늘도 어김없이 굴뚝에서 저녁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나던 마을에선 한 사람 한사람 남부여대 손에 손을 맞잡고 마을 이장 집 앞으로 모여든다. 그리고 무언가 짧은 숙의 끝에 마을 이장이 허락의 손짓을 꼭두쇠에게 보낸다. 농악 가락은 더 신명나게 피어나며 마치 한 판의 멋진 길놀이처럼 이 특별한 초대에 응한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이들은 며칠이고 쫓겨날(?) 때까지 마을 주민들을 위해 특별 버라이어티 쇼라이브 무대를 장관으로 펼치는 것이다.

이들이 곧 지난 날 우리의 유랑 예인이었던 남사당이다. 아니 시쳇말로 남사당 패거리다.

여기 저기 떠돌며 춤과 노래와 몸까지 팔았던 여사당과는 반대로 이들 남자 예인들은 남사당(男社黨)이라 불렸다. 조선시대에 성행했던 이 남사당의 족적은 떠돌이 예인들의 한() 만큼이나 구구절절하다. 이들이 스쳐 지나간 곳엔 집집마다 새 짚신이 없어지거나 헌 짚신과 바뀌어 지는 가 하면, 옷가지, , 보리, 패물 그리고 이 마을에서 가장 잘 생긴 남자 아이도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것이다. 온갖 감언이설로 아이를 꼬득여 반 납치하다시피 야반도주 하는 행위가 벌어지는 것이다.

그 아이는 새 단원이 되는 셈이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는 꼭두쇠의 잠자리에 외로운 밤들을 달래주는 대역까지 도맡아야 했다. 이윽고 아이는 이들의 레파토리 중 하나인 풍물(농악)에서 잽이들 어깨 위에 서서 간드러진 춤을 추는 무동(舞童)으로 변신되고, 커서는 살판(땅재주), 덜미(꼭두각시 놀음), 어름(줄타기), 버나(접시 돌리기), 덧뵈기(가면희) 등의 연희자로 키워지는 것이다. 같이 생활을 하다 보니 눈 짓 하나에도 몸과 마음이 서로 통했고 혈육보다 더 뜨겁고 끈끈한 관계가 유지 됐다. 자연스레 이들 사이에선 동성애자가 절로 나올 수밖에 다른 도리는 없었다. 마치 줄타기, 땅재주의 살판처럼 이들에겐 하루하루가 사느냐 죽느냐?’의 서바이벌 게임이었다.

떠돌이 유랑 예인들이었지만 그래도 제법 나름대로 반듯한 질서는 있었으니, 맨 위에 꼭두쇠를 중심으로 그 밑에 곰뱅이쇠, 뜬쇠, 가열, 삐리, 저승패, 등장꾼 등 서열이 정해져, 크게는 40-60명으로 구성되어 전국 방방곡곡을 돌고 돌았다. 민중들에게 위안을 제공하는 요즈음의 연예인들이었던 셈이다.

이 남사당의 연원은 딱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족히 그 역사가 4-5백년은 되었다고 생각된다. 위에 언급한 대로 지금은 그나마 6가지 놀이가 전승되어왔지만 이 외에도 얼른이라는 요술도 포함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고 보면 이들의 레파토리는 독자적으로 창조하고 개발한 우리의 춤, 노래, 연극, 마술, 아크로바트, 인형 놀이 등의 버라이어티 쇼인 셈이었다. 보통 저녁부터 시작하는 남사당의 놀이는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질 정도였으니 그 신명은 지축을 흔들었을 것이다. 주로 모심기 때부터 시작해 가을 추수 때까지 바쁘게 전국을 누비고 다녔으니, 한 때 남사당패는 많은 경우 수 십 개의 단체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이즈음 서구에서 물밀듯 밀려오는 엔터테인먼트로 우리 사회도 홍수를 이루고 있지만, 우리의 남사당과 여사당 등의 오락물은 그 자체로도 중요한 우리가 지켜야 할 유산이 아닐까. 중국의 경극이나 일본의 노오 연극처럼 우리만의 독특한 공연 양식으로 발전되고 계승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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