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사람은 차타고 차는 배타고, 다시 사람이 어여차
[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사람은 차타고 차는 배타고, 다시 사람이 어여차
  • 이규식
  • 승인 2017.09.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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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인용시와 관련없습니다. 사진제공=대전고속버스터미널

사람은 차타고 차는 배타고, 다시 사람이 어여차

창틀에 먼지가 보얗던 금남여객

대흥동 버스 차부 제일 구석에나 미안한 듯 끼여 있던

회남행 금남여객

판암동 세천 지나 내탑 동면 오동 지나 몇번은 천장을 들이받고 엉덩이가 얼얼해야 그다음 법수 어부동

‘대전 갔다 오시능규, 별고는 읎으시구유’ 어쩌구 하는데 냅다 덜컹거리는 바람에, 나까오리를 점잖게 들었다 놓아야 끝나는 인사 일습 마칠 수도 없던 금남여객, 그래도 굴하지 않고 소란통 지나고 나면 다시 ‘그래 그간 별고는 읎으시구유’ 못 마친 인사 소리소리 질러 기어이 마저 하고 닳고 닳은 나까오리 들었다 놓던 금남여객

보자기에 꽁꽁 묶여 머리만 낸 암탉이 난감한 표정으로 눈을 굴리던 금남여객

하루 세차례 오후 네시 반이 막차지만 다섯시 넘어 와도 잘하면 탈 수 있던 금남여객

장마철엔 강물 불어 얼씨구나 안 가고 겨울에는 길 미끄럽다 안 가던 금남여객

자취생 쌀자루 김치 단지 이리저리 처박던 금남여객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달리던 금남여객

쿠당탕 퉁탕 신작로 오십리 혀도 깨물고 반은 얼이 빠져 강변에 닿으면

색시처럼 고요하게 금강이 있지

사람은 차 타고 차는 배 타고 배는 다시 사람이 어여차 저어

강 건너에서 보면 그림같이 평화롭던 금남여객

벙어리 아다다처럼 조신하게 실려가던 금남여객

보얗게 흙먼지는 뒤집어쓰고

- 김사인, ‘금남여객’ 전부

[굿모닝충청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이즈음 태어나는 어린이들은 출생과 함께 자동차, 컴퓨터 그리고 휴대전화 같은 첨단 기기에 노출되어 있다. 장터의 시끌벅적한 분위기, 재래시장 질퍽한 움직임보다는 정돈되고 말끔한 마트를 쇼핑의 대명사로 여기고 짧은 거리도 차를 타고 움직이는 현대생활에 젖어간다. 편리한 문명환경 대 전근대적인 삶의 여유와 정감 같은 고식적이고 이분법적인 대비를 굳이 하지 않더라도 삶의 환경이 편안하게 바뀔수록 옛 것에 대한 향수와 새록새록 그리움은 커지는 모양이다. 김사인 시인은 이 작품에서 10대 학생시절 대전에서 고향인 충북 보은을 오갈 때 이용하던 교통편의 기억을 정감 있고 개성적으로 노래한다. 지금 같으면 승용차로 금세 갈만한 거리를 털털거리는 시외버스를 타고 또 그 버스가 배에 실려 우여곡절 귀향길을 이어간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에 지금은 생소한 당시 문물이 흡사 흑백영화처럼 펼쳐지고 있다. ‘금남여객’은 지금도 영업 중인 지역 운수회사로 제목을 포함하여 시행 곳곳에 실명으로 등장한다. 그만큼 시인의 소년시절 금남여객은 고향집으로 가는 노정 한복판에 자리 잡은 상징이자 추억의 랜드마크가 되었나 보다. 대전에서 보은으로 고향 가는 길, 울퉁불퉁 비포장길 먼지를 뒤집어 쓰고 시인을 태워다준 금남여객이라는 업체명은 그 이후 고유명사 차원을 넘어 우리가 간직한 기억, 불편했지만 그리워지고 세월이 흐를수록 또렷해지는 빛바랜 사진이 되어간다. 그런 추억을 간직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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