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길]③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임영호의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길]③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 승인 2017.11.03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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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라이더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가 이번엔 산티아고 순례길을 달렸다. 프랑스령 생장 피드 포르에서 시작해 산티아고 성당까지 스페인 북부를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는 총 연장 800㎞에 달하는 이 길은 전 세계 가톨릭 신자는 물론 여행객들이 평생에 꼭 한 번은 가보고 싶어 하는 코스다.

걸어서 한 달 이상 걸리는 이 길을 임 교수는 지난 9월 7일부터 17일까지 꼬박 11일에 걸쳐 횡단했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그동안의 삶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매우 뜻 깊은 여정”이었다는 열하루 길 위의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9월 8일 둘째 날, 수비리(Zubiri)에서 에스떼냐(Estella)까지 70㎞ 거리다. 8시 10분에 출발했다. 생각보다 쌀쌀하다. 11월 중순 영산강 라이딩할 때 느꼈던 날씨다. 손가락과 무릎이 시리다. 이미 밭에는 추수가 끝나 황량하다. 목초더미만 군데군데 있다. 오직 수확하지 않은 포도밭만 파랗게 남아 있었다.

포장도로를 따라 20㎞를 갔다. 아침 도로에는 차량이 급하게 달린다. 스페인 국민들도 성격이 급한 것 같다. 잠시 쉬는 곳에서 혼자 온 한국청년을 만났다. 40대 초반이다. 왜? 무엇 때문에 왔느냐 묻고 싶었다. 길고 힘든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이 40은 인생의 절반이다. 고비가 찾아온다. 피로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자신이 주인이면서 노예가 된다. 인간이란 때로 자기 자신에게조차 얼마나 무거운 짐인가. 그는 길을 걸으며 자기 길을 찾을 것이다.

농로 따라 하천 따라 조금 더 가니 팜플로나(Pamplona)이다. 바스크어로는 이루냐(Iruña)라고 한다. 스페인 나바라 지방에 작은 도시이다. 팜플로나는 바스크족이 산다. 바스크족은 산악 민족이다. 기원전 5000~3000년 전부터 이 곳에서 살아왔다. 스페인 사람들과 판이하다. 골격이 훨씬 크고, 혈액도 Rh- 이다. 독자적인 언어도 있다.

시내를 요리조리 자기집 안방처럼 골목길로 안내하는 맨 앞의 리더 눈썰미가 놀랍다. 이곳은 교통안내판에도 십자가상이 맨 꼭대기에 장식품으로 달려있다. 도시에 진입하려면 곰팡이처럼 이끼 낀 팜프로나 성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때 리더의 자전거가 펑크났다. 광장 한 모퉁이에서 튜브를 갈아 끼우려 한다. 우리는 그 사이 팜프로나 구시가지 이곳저곳을 쏘다녔다.

헤밍웨이는 팜프로나를 엄청 사랑했다. 아니 헤밍웨이는 스페인을 사랑했다. 스페인 내전에 참전할 정도였으니까. ‘노인과 바다’로 노벨상을 탔지만 그의 최대 장편소설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나’는 스페인 내란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우리는 ‘이루냐 카페’에서 헤밍웨이와 조우했다. 카페 한 모퉁이에서 그는 여전히 혼자 고독을 안주 삼아 상그리아(sangria) 한 잔을 마시고 있었다.

광장 카페에 앉으니 골목 끝머리에 서 있는 스페인의 전성기에 세운 뾰족한 모습의 성당이 보인다. 골목길은 500년 전의 모습 그대로 좁았다. 바닥은 1000년 전 돌처럼 반들반들하다. 독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셨다. 문화는 힘이고, 종교구나. 세계를 제패할 때 종교가 융성하고 인간은 그것을 신앙심으로 표시한다. 신라 경주 불국사도 그렇지 않느냐.

이제 구릉지로 간다. 가장 험한 길이다. 농로길, 자갈길, 자갈보다 큰 호박돌이 박혀있는 길을 간다. 풍경이 제법이나 자전거로 가니 궁둥이가 아파 몇 번이고 궁둥이를 들썩였다.

들판의 언덕 위에는 풍차가 돌아가고 있다.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Saavedra, 1547~ 616)가 쓴 ‘돈키호테’에 주인공이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장면이 있다. 500년 전, 그 당시에도 바람이 지금처럼 많았던 것 같다. 

순례길은 바람과 싸우는 길이다. 바람을 안고 탄다. 2시간 고난의 사선을 넘어가니 ‘용서의 언덕’(Alto del Perdón), 페르돈 고개가 나온다. 이곳에서 순례자들은 모든 것을 비우고 용서한다.

예수는 용서의 완벽한 모델이다. 원수조차 용서하라고 하셨다. 나는 기도했다. 내 가슴에 손가락질하고 가는 사람이 있었다. 한 평생 그을 미워하며 사는 일이 괴롭다. “제가 조금이라도 용서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과 용서입니다.” 마음속에 올라오는 나쁜 감정을 일부러 붙잡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그 감정들이 소멸한다. 때로 잊어버리는 것이 용서하는 것보다 더 차원 높은 사랑일 수 있다.

그곳에서 스코틀랜드 사람을 만났다. 일본인이냐 묻는다. 코리아라고 말하고, 다시 사우스 코리아라고 부연했다. 핵과 미사일로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북한을 의식했나.

이미 점심시간은 지났다. 점심 먹는 장소까지 30분 이상은 가야한다. 내려가는 길이 상당히 가파른 비탈길이다. 거의 산에서 내려오는 것을 즐기는 싱글 라이딩 수준이다. 정신을 바짝 차렸다. 스페인 젊은이들은 거침없이 자전거를 타고 내려왔다. 청춘, 사람은 그것을 일시적으로 소유할 뿐이고, 나머지 시간은 그것을 추억하는 것이다.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바로 아래 작은 부락에서 점심을 들었다. 생맥주와 스파게티, 피자가 나왔다. 힘이 들었던지 정신없이 먹었다.

30분 정도 달리니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이다. 도시 이름이 다리 이름이다. 다리는 마을 끝에 있었다. 푸엔테는 다리, 레이나는 왕비라는 뜻이다. ‘왕비의 다리’이다. 11세기 당시 왕비가 순례자들의 안전한 통행을 위해 이 다리를 만들도록 명령했다.

오늘 이곳에서 머문다는 서울사람 여자 셋을 만났다. 45일 일정 중 6일째란다.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걸으면서 무엇인가 버린 느낌이다. 필요한 것이 적을 때 삶을 더 풍요롭게 해준다.

길이 끝나는 곳에 마을이 있고, 마을이 끝나면 길이 있다. 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마을이 있다. 이제 구릉 사이로 마을과 마을이 황톳길로 길게 이어져 있다. 길옆에는 포도밭이 대규모 군단의 사열 병처럼 반듯하게 펼쳐 있다.

황톳길 언덕 위에 중세풍의 마을, 시라우키(Ciraugui)에서 쉬었다. ‘독사의 둥지’라는 뜻이다. 전쟁을 대비하여 방어형으로 마을을 배치한 듯하다. 마을로 향하는 길. 로마시대의 길일 게다. 우리가 온 길도 로마의 길이다. 성당은 여전히 마을 맨 위에 있었다. 성당에서 스탬프를 찍었다. 빠짐없이 챙기는 것도 일이다.

아주 지친 오후이다. 오르막이 계속되고 태양은 아직도 이글거린다. 이제 에스테야까지 10㎞ 남았다. 한 번 더 쉬었다. 알베르게 자동판매기에서 콜라를 사 먹었다. 힘내는 데는 콜라가 제일이다. 가게 문은 닫혀 있었다.

스페인은 오후 2시에서 5시까지는 시에스타(siesta)다. 일을 하지 않고 문을 닫는다. 이 시간에 낮잠이라든가 각자 개인 용무를 본다. 이렇게 살아도 먹고 살 수 있는 게 용하다. 하긴 우리처럼 노동시간이 긴 나라가 있을까.

에스테야는 오후 6시가 넘어 도착했다. 에스테야(Estella)는 별이라는 뜻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타고 온 길은 별을 따라온 것뿐이다. 야고보 당신 별의 길을 따라왔다. 가다가 잠시 나를 뒤돌아본다. 내 마음의 별은 무엇인가. 이제 나 자신도 남의 길이 되어야 하는 연륜이다.

숙소는 옛날 방앗간이다. 곳곳에 그 흔적이 있다. 스페인 건물은 겉만 봐서는 안 된다. 내부를 더 잘 꾸며 놓는다. 도착하자마자 스탬프를 찍었다. 빠짐없이 찍는다 해도 자전거 순례자들은 빈칸을 채우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거치는 곳이 도보보다 훨씬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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