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길]⑤ 마(魔)의 구간, 대서양 바람에 맞서
[임영호의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길]⑤ 마(魔)의 구간, 대서양 바람에 맞서
  •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 승인 2017.11.06 15: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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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라이더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가 이번엔 산티아고 순례길을 달렸다. 프랑스령 생장 피드 포르에서 시작해 산티아고 성당까지 스페인 북부를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는 총 연장 800㎞에 달하는 이 길은 전 세계 가톨릭 신자는 물론 여행객들이 평생에 꼭 한 번은 가보고 싶어 하는 코스다.

걸어서 한 달 이상 걸리는 이 길을 임 교수는 지난 9월 7일부터 17일까지 꼬박 11일에 걸쳐 횡단했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그동안의 삶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매우 뜻 깊은 여정”이었다는 열하루 길 위의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9월 10일. 4일째 여정은 나헤라(Najera)에서 까스트리오 델 발(Castrillo Del Val) 까지 90㎞ 라이딩이다.

구름이 끼었다. 구름은 비를 데리고 다닌다. 다행히도 조금 지나니 햇살이 난다. 이동계획을 잡으면 이미 숙소가 예약되어 중간에 차질이 있더라도 꼭 가야만 한다.

나헤라는 인구 7000명이 사는 강변의 작은 도시이다. 나헤라를 떠나면서 눈앞에 보이는 짙은 황색의 암벽이 인상적이다.

10여㎞를 포장된 도로로 가니 부르고스(Brugos)이다. 튼튼한 마을 방어탑이라는 뜻이다. 17만 명이 사는 꽤 큰 도시이다. 산티아고 순례길 중 주요 도시를 꼽으라면 팜프로나, 부르고스, 레온, 그리고 목적지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이다. 이 도시들은 과거 왕국의 수도였으며 현재는 각 주의 주도다.

비교적 청명한 하늘이다. 뭉게구름이 일품이다. 낮게 깔린 구름이 저렇게 크고 아름다울까. 까스트리오에서 부루고스까지는 차도로 갔다. 15㎞ 거리다. 아침 출근길이라 차가 많다. 아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엄마 손잡고 학교에 간다. 통학차는 보이지 않는다.

먼저 13세기에 지은 고딕풍의 부르고스 산타마리아 대성당을 찾았다. 이 골목 저 골목 저 차도 이 차도를 거쳐 찾았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성당이다. 웅장한 모습으로 화려하다. 정교한 조각이 마치 수를 놓은 것처럼 섬세하다. 성당 전체 모습을 담으려고 몸은 땅에 기대고 바닥 가까이에 카메라를 놓고 위로 쳐다보면서 열심히 찍는다.

1984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 성당은 300년 이상 걸려 지었다. 프랑스의 고딕 양식이 스페인과 융합한 인간이 만든 최고로 아름다운 예술품이다. 여기에 참여한 건축가와 조각가는 각자 자기 제자를 길러 스페인의 문화예술계의 한 흐름을 만든다.

부르고스는 한때 스페인의 수도였다. 11세기 스페인의 영웅 엘 시드(El Cid)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는 지금 이 성당에 묻혀 있다. 자기가 모시는 왕이 자기를 두려워해 추방시키고 박해하지만 나라와 왕에게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이기적 유전자 뭉치인 인간세계에서 이런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엘 시드는 우리의 이순신이다.

부르고스는 꽤 큰 도시이다. 고장 난 자전거를 손보았다. 제법 큰 숍이 있었다. 서울처럼 1층은 매장이고, 지하층은 수리하는 공간이다. 자전거는 세계화가 되었다. 어딜 가나 같은 제품과 부속품들을 찾을 수 있다. 시간도 없고, 우리만큼 잔기술이 없어 앞 휠 차체 전부를 교체했다. 비용은 20여만 원이다.

전체 구간을 셋으로 나눈다면 부르고스는 첫 구간의 종점이다. 이제 라이딩할 때 무엇을 조심해야 할지 파악되었고 마음도 몸도 적응이 되었다.

이제부터 레온(Leon)까지 180㎞, 황무지 구간이다. 황량한 가을 들판이다. 메세타(Meseta) 고원이다. 스페인의 척추 역할을 한다. 어떤 이는 이 길을 명상의 구간이라 하고, 다른 이는 마(魔)의 구간이라고 한다.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고 황톳길로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야 한다. 누런 들판과 수평선 너머 구름이 전부다.

수평선으로 난 오솔길이 멋스럽다. 순례하는 사람들은 가지각색이다. 까미노 순례는 세 가지만 허용된다. 걷기, 자전거, 말 타기이다. 말 타고 순례하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개를 데리고 가는 사람도 있고, 짐차를 몸에 매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너른 평야지대에 해바라기가 수만 평 심어져 있다. 해바라기가 핀 여름에 오면 장관이지만 꽃은 지고 머리를 숙여 겨울까지 기도만 할 것 같다. 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꽃이 진다고 꽃만 외롭나. 지는 꽃의 마음을 아는 내가 더 외롭구나.

오늘따라 바람이 심하다.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안고 탄다. 바람 부는 들녘에서 바람이 심하면 흔들리는 들꽃이 된다. 바람에 막혀 겨우 시속 5㎞ 밖에 못 간다. 바람이 등을 밀면 얼마나 좋을까. 신의 배려다. 고행 없이 순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태양과 구름이 숨바꼭질하면서 대지를 달군다. 들판 저 너머 지평선에 나무 한그루 서 있다. 끝없는 평원. 그 길의 끝에는 마을이 있다. 우리는 오아시스를 향해 달린다. 오늘은 작은 마을 까스트리오 델 발에서 잔다. 지도상에서 찾아보았으나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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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신호 2017-11-06 22:03:44
고행의 라이딩길...
"고행없이 순례없다"

아마도...
너무 힘든길이기에
인지능력이 존재하는한
영원히 기억될것같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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