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길]⑥ 스페인에서 부르는 ‘아리랑’
[임영호의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길]⑥ 스페인에서 부르는 ‘아리랑’
  •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 승인 2017.11.07 20:1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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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라이더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가 이번엔 산티아고 순례길을 달렸다. 프랑스령 생장 피드 포르에서 시작해 산티아고 성당까지 스페인 북부를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는 총 연장 800㎞에 달하는 이 길은 전 세계 가톨릭 신자는 물론 여행객들이 평생에 꼭 한 번은 가보고 싶어 하는 코스다.

걸어서 한 달 이상 걸리는 이 길을 임 교수는 지난 9월 7일부터 17일까지 꼬박 11일에 걸쳐 횡단했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그동안의 삶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매우 뜻 깊은 여정”이었다는 열하루 길 위의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9월 11일, 순례길 5일째. 까스트리오 델 발(Castrillo Del Val)에서 프로미스타(Fromista)까지 80㎞를 가야 한다.

여기는 고원지대, 해발 800m의 끝없는 밀밭 길이다. 추수가 끝나 황량하기까지 하다. 뜨거운 태양 아래 그늘진 곳이 없다. 나는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한 마리 말이다. 이럴 때는 걷는 것보다 라이딩이 낫다. 지평선과 하늘, 구름이 내 몸을 간질이며 지나간다.

점심때 오아시스 같은 조그마한 마을에 도착했다. 식당 주인은 아주 친절했다. 몇 마디 한국말로 우리를 즐겁게 했다. 점심을 먹은 후 가장 높은 고개인 메세타 지역 고갯마루 모스텔라레스(Mostelares) 고개가 기다리고 있다. 해발 905m이다. 긴장이 된다.

겁먹지 않았다. ‘끌바’할 용기가 있다. 안장에서 내려오는 용기가 없으면 무사히 목표를 이룰 수 없다. 올라가는 길이 5㎞ 정도는 될 것 같다. 미리 최저단으로 놓고 천천히 올라간다. 바퀴 앞만 집중한다. 힘에 겨워 내렸다. 저 멀리 아래 풍경을 눈으로 보고 즐기면서 아주 천천히 올라갔다.

인생도 이와 같다. 인생은 앞을 보면서 살아가게 되어 있지만, 뒤돌아볼 때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이십 리 길을 걸었다.

맨 꼭대기에는 하느님께 드리는 소원 편지함이 있었다. 인생은 원래 공평하지 못하다. 누구나 고민도 있고 걱정거리도 있다. 슬픔과 기쁨은 마음의 바다에서 일어나는 파도와 같은 거다. 그 감정들이 우리의 삶에 일어났다가 사라진다.

고개 아래쪽은 해발 770m. 아주 경사가 급하다. 사고는 내리막길에서 난다. 내리막길도 시속 20㎞를 넘으면 다칠 수 있다. 최대한 줄여서 가본다. 한참을 가니 다시 작은 마을이 나온다.

중년의 미국인을 만났다. 그녀는 여기서 오늘밤 지내려고 몸을 씻은 후 동네 한 바퀴 돌고 있는 참이다. 나이는 62세. 정년퇴직하고 왔단다. 42년 전 용산 미군부대에서 근무해서 한국을 잘 알고 있었다. 어디서 왔느냐? 한국의 어디냐? 꼬치꼬치 묻는다. 그 여인에게서 여유를 읽었다.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처럼 부나 명예, 지위, 평판에서 떠나 자신으로 돌아가려고 준비하는 자세이다.

오후가 가까워졌는지 그림자가 길다. 오랜만에 물 구경한다. 폭 20m 되는 하천에 물이 넘친다. 봄 4월 벼 심는 논물 같다. 강가에는 미루나무 모양의 나무가 도열해 있다. 고향에서 본 모습이다. 곡물 수송을 하기 위해 중세시대 운하(Canal de Castila)를 팠다. 푸근한 경치다. 김치를 먹은 기분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은 것들이 보인다.

숙소는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았다. 프로미스타는 시골티가 나는 곳이다. 숙소 앞에는 오래된 성당이 서 있다. 기록을 보니 1066년에 건축한 생 마르탱(Saint-Martin)성당이다. 늦은 오후 성당 안 의자에 앉았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저녁 햇살이 내 앞에 빛났다. 정면을 바로 보고 생각 없이 앉았다. 마음에 무엇인가 올라온다. 거룩한 생각이다.

저녁식사는 걸어서 5분 거리의 카페다. 이미 아일랜드에서 온 부부동반 70대 초반의 어른들이 서로 마주 보고 떠들썩하게 포도주를 마시고 있었다. 끝 무렵 흥이 겨운지 누군가 노래도 부르고 함께도 불렀다. 누구 생일이란다. 박수를 치자 노래를 권한다. 아는 가사가 없어 서로 주저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던 분이 ‘아리랑’을 불렀다. 모두 따라 불렀다.

작은 배려 하나가 서로의 마음에 사랑을 전달한다. 서로 어우러져 사는 세상이 바로 천국이다. 비가 개고 하늘이 맑아 별들이 총총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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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신호 2017-11-08 13:15:25
"서로 어우러져 사는세상이
바로 천국이다"

천국에서....
천국임을 만끽하며...
어우러져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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