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우여곡절 수능, 한 번은 봐주겠지만…
[노트북을 열며] 우여곡절 수능, 한 번은 봐주겠지만…
  • 이호영 기자
  • 승인 2017.11.23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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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영 사회문화팀장

[굿모닝충청 이호영 기자] 11월 15일 오후 2시 29분, 경북 포항시 북구 북쪽 9㎞ 지역에서 규모 5.4 지진이 발생하자 교육부는 이날 오후 8시 20분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당초 16일에서 23일 일주일 연기한다는 방침을 긴급 발표한다.

수능시험을 불과 12시간 앞두고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미 시험지 봉인은 해제됐고, 대책을 마련할 공무원들도 대부분 퇴근한 상황이었다. 시험 관리주체인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비상이 걸리고, 당사자인 수험생은 물론 학부모들도 한바탕 패닉에 빠졌다.

당장 다음날 등교시간을 두고 일대 혼란이 이어졌고, 일부 고3 수험생들은 시험을 앞두고 버린 수험서를 찾거나 다시 구매하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다. 대학에서도 이미 예정됐던 전형일정을 줄줄이 변경하느라 소동이 벌어졌다.

다행히 ‘천재지변으로 인한 불가피한 결정’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덕분에 상황은 빠르게 진정됐고, 2014년 세월호 사고와 비견되며 더 큰 화를 막기 위한 정부의 발 빠른 대응에 대한 지지도 잇따랐다. 덕분에 일주일 연기된 23일 수능시험도 큰 무리 없이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한날한시 모든 학생이 시험을 치르는 ‘일제고사’ 형식의 수능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대입제도 아래에서 단순히 ‘한고비 넘겼다’고 안도만 하고 넘어간다면 언젠가는 또다시 이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시험연기의 이유가 됐던 ‘안전과 형평성’ 문제는 꼭 천재지변이 아니더라도 시험지 사전유출 등 부정행위나 인재에 의한 사고에 의해서도 재현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매뉴얼 정비로만은 사실상 대응이 불가능하다.

그때마다 시험을 연기해야 할지 강행해야 할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진다면 국민들도 쉽사리 사태를 용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근본적인 수능시험제도 개선이 필요한 이유다.

이미 우리의 대학입시제도는 정시전형에서 수시전형 위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올해 대입의 경우 수시모집 비중은 전년도 69.9% 대비 3.8%P 늘어난 73.7%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체 35만 2325명 중 25만 9673명을 수시로 뽑고, 나머지 9만 2653명만 정시로 선발한다. 학생부 중심 전형 비중도 전년도 60.3%에서 63.9%(22만 5092명)로 늘었으며, 전형방식도 대학마다 모두 다르다.

그럼에도 학생 변별의 주된 기준은 여전히 수능에 기대고 있다는 점이 우리 대입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입으로는 4차 산업혁명 시대 교육혁신을 외치며 창의, 인성, 잠재적 역량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선 ‘점수’ 외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한다.

근본적으로는 학교와 대학에서의 교육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이를 위해서는 수능 위주의 평가방식을 바꿔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제는 수능을 자격고사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재도 대학별 수시전형과 학생부 중심 전형 비중이 꾸준히 확대되고, 대학별 전형방식이 세분화되는 추세에 있는 만큼 앞으로 수능의 비중은 지속적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 학교 현장 역시 특기·적성과 전문분야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언제까지 수능에서만 ‘점수’를 고집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교육목표와 추세에 부합해 수능은 학생들이 대학에서 공부할 역량을 갖추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근거로만 삼고, 나머지는 대학이 전공 특성에 맞는 인재를 선발하도록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수능이 자격고사로 전환되면 교육부도 시험 횟수와 난이도 조절에서 훨씬 자유로워진다. 전국의 모든 수험생이 한날한시 시험을 치르는 불편과 혹시 모를 사고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으로 제시한 ‘수능 절대평가’도 한편으론 자격고사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현 정부가 대학입시제도 개선을 주요 교육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는 만큼, 이번 사고를 계기로 보다 합리적이고 장기적인 대안을 찾는 노력이 뒤따라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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