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친구가 친일파와 함께 현충원에?
내친구가 친일파와 함께 현충원에?
천안함 서거 유족들 "김창룡 등 친일파 이장 해야"
  • 한남희 기자
  • 승인 2013.06.06 16: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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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일 대전현충원 장군제1묘역에 있는 김창룡 묘소에 박근혜 정부 첫 기무사령관인 장경욱 소장과 충호안보연합이 헌화했지만 누군가가 심하게 훼손시켜 놓은 모습.

[한남희 기자]학교에 가지 않은 초등생 딸 아이와 점심을 먹으면서 물었다, 오늘이 무슨 날이냐고. "군인들이 죽은 날..." 유족들이 들었으면 노할만한 대답이었다. 유족은 아니지만 아버지의 입장에서 딸 아이의 무성의한 대답에 기분이 가라앉았다.

오늘은 58회 현충일이다. 현충일은 '국토방위에 목숨을 바친 이의 충성을 기념하는 날'이라고 돼 있다. 6.25전쟁이 끝난 3년 뒤인 1956년 지금의 현충일이 제정됐다. 6·25전쟁에 전사한 국군만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모든 선열의 넋을 기리고 있다.

이들의 혼이 깃들어 있는 곳이 바로 현충시설이고 수 많은 현충시설 중 하나가 국립묘지다. 우리나라 국립묘지는 국립현충원(서울, 대전)과 국립민주묘지 등 총 8곳이 있는데 이 중 국립서울현충원만 국방부 소속이고, 나머지는 모두 국가보훈처에서 관리하고 있다.

그런데 그 국립묘지 중 대전현충원이 몇 년째 시끄럽다. 자격이 부족한, 아니 묻혀서는 안 될 사람이 묻혔다는 이유로 시민단체가 이장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친일파 김창룡과 5공 비리의 중심인 전 청와대 경호실장 안현태다. 이들은 모두 대전현충원 장군 묘역에 적잖은 자리를 차지하고 누워 있다.

▲ 6일 대전현충원 장군제1묘역에 있는 김창룡 묘소에 박근혜 정부 첫 기무사령관인 장경욱 소장과 충호안보연합이 헌화했지만 누군가가 심하게 훼손시켜 놓은 모습.

김창룡 수년째 버티기...보훈처 "강제 규정 없어"

1920년 함경남도 영흥 태생인 김창룡은 1941년부터 일본 관동군 헌병대 자원 입대, 반일세력을 색출하는 대공사찰을 담당하다 광복 후 귀향했지만, 소련군에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았다. 원산으로 압송되던 중 열차에서 탈출, 남하했으며 제3연대에 입대해 정보업무에 종사하다가 1947년 경비사관학교(육사 전신)에 입교해 3기생으로 졸업했다.

이대부터 김창룡은 이른바 '군부 내 좌익 소탕'이라는 미명 아래 수많은 사건을 조작해 민족·민주 인사들을 학살했다. '반공만 있으며 친일도 상관없다'는 이승만과 코드가 일치했다. 1949년에 소령, 1951년에는 육군 초대 특무대장이 됐는데 특무대장 장시 공산당 색출과 군내의 적색분자 제거에 공헌이 커 대통령 이승만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었다. 1953년에 준장, 1955년에는 소장으로 초고속 진급했다. 

그는 지금도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에 깊숙이 관여한 배후로 지목받고 있다. 1956년 1월 남한 주둔 미국 첩보기관(CIC)은 김창룡에 대해 “이승만이 직접 하기 곤란한 궂은일을 대신 해주는 청부업자와 같은 존재”라 평가하기도 했다.

김창룡은 이승만의 총애를 등에 업고 군대 내의 명령 계통을 무시하면서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다가, 1956년 1월 30일 출근 도중 부하의 총에 맞고 사망한 뒤 사설묘역에 묻혔다가 1998년 김영삼 정부때 슬그머니 대전현충원으로 이장됐다.

▲ 대전현충원 장군제1묘역 두 번째 줄에 있는 김창룡의 묘비 뒷면에는 친일이력은 없고, 그가 친일심판을 피해 내려와 입대한 남한정부의 군대이력(1947년)부터 적혀 있다.

이후 민족문제연구소와 평화재향군인회 등은 현충일만 되면 대전현충원을 찾아 김창룡 묘 이전을 촉구하고 있지만, 국가보훈처는 관련법을 이유로 '이장 불가'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는 "국립묘지법에서 단 한 구절만 바꾼다면 친일 행위 인사들이 순국선열들과 함께 묻혀 있는 말도 안 되는 일을 바로 고칠 수 있다. 그때까지 현충원을 계속 찾아 이장을 촉구하고 역사의식을 바로잡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평화재향군인회 관계자도 "김창룡의 가족 친지들에게 당부한다. 진정으로 그를 아끼고 사랑한다면 그의 추한 악행이 여러모로 불거져 더 불명예스럽게 되기 전에 자진해서 그의 묘를 원래 장소로 이장하기를 바란다. 민족사의 악인으로 오래오래 기억되도록 노출시켜 욕먹게 하는 것이 뭐 그리 좋은 일이겠는가? 역사는 정의와 진실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간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고 경고했다.

▲ 58회 현충일인 6일 대전현충원 제2장군 묘역 아래 장병 묘역에 가족단위 유족들이 찾아 고인의 넋을 기리고 있다.

군사반란과 5공 비리의 핵심이 왜 현충원에

장군1묘역 서쪽편 장군2묘역에는 또 하나 논란의 망자가 누워있다. 바로 전두환 정부 시절 청와대 경호실장을 지낸 안현태다.

안현태는 친일매국노는 아니다. 군 장성(육군 소장) 출신인 만큼 장군묘역에 묻힐 수 있다. 다만 생전 안현태는 전두환과 함께 12·12 군사반란에 참여했고,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는 공수여단장을 맡았다.특히 5공때 비리 행적으로 실형까지 살았기 때문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육사 17기인 안현태는 '하나회' 출신으로 수경사 30경비단장과 공수여단장, 전두환 때 청와대 경호실 차장 등을 거쳤다. 그는 군복을 벗은 뒤 1985년 장세동의 후임으로 청와대 경호실장으로 발탁됐다.

5공 비자금 중 280억 원의 조성에 관여하고 대기업에서 5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1997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6월과 추징금 5000만 원을 선고받고 복역한 바 있다.

지난 2011년 6월 25일 지병으로 사망했다. 금고 이상형을 받아 국립묘지 안장 대상인지를 놓고 5·18 관련 단체들이 크게 반발했지만, 보훈처는 그해 8월 5일 국립묘지 안장대상 심의위원회를 열어 서면심사를 통해 안현태를 대전현충원에 안장하기로 의결했다.

바로 이튿날 유족과 보훈처는 기습적으로 안현태를 대전현충원에 안장했고, 지금까지도 5·18 관련 시민사회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단체들은 안현태의 안장이 민주화세력을 짖밟은 전두환을 '모셔오기' 위한 5공세력의 초석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 58회 현충일인 6일 대전현충원 천안함 묘역에서 유족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사진을 찍고 있다.

'전두환 안장금지법' 1년째 국회 책상 서랍에

6일 안현태의 묘에서 만난 현충원 직원. 국가원수 묘역으로 전두환이 올 수 있을 것 같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미 못 오는 것으로 법 통과되지 않았나요? 작년 7월부로 발효된 것으로 아는데..."라고 답한다.

민주통합당 진성준 의원이 대표발의한 국립묘지법 개정안, 일명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국립묘지 안장 금지법'은 지난해 7월 발의됐다. 하지만 발효된 게 아니라 발의만 된 채 1년째 상임위 서랍 속에 숨어 있다.

현행 국립묘지법에는 대통령을 지냈다고 하더라도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외환죄, 살인죄 등의 중죄를 저지른 사람은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12·12 군사반란과 5·17 쿠데타를 주도한 전두환은 내란죄 및 반란죄 수괴 혐의로 1995년에 구속 기소돼 무기징역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문제는 전두환이 1997년 12월 김영삼에 의해 특별사면됐다는 점이다. 현행 국립묘지법은 사면·복권을 받은 경우에 국립묘지 안장대상이 되는지에 대해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안현태가 이러한 헛점을 파고 현충원에 들어 온 것이다.

진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내란죄 등을 저지른 사람은 사면·복권을 받았더라도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천안함 내 친구와 친일파는 현충원에 함께 안돼

▲ 58회 현충일인 6일 대전현충원 천안함 묘역에서 고 서승원 해군중사 고향 친구들이 고인의 넋을 기리고 있다.

안현태가 묻혀 있는 장군2묘역 저 아래로는 천안함 용사묘역이 있다.

썰렁한 장군묘역과는 달리 이곳 천안함 묘역은 사망한 용사들의 유가족 외에도 다른 묘역을 찾았다가 일부러 들르는 이도 적지 않다. '유가족 외에는 잔디 보호를 위해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푯말을 설치했을 정도다.

서승원 해준중사 묘비 앞에는 이날 20대 중반의 청년 네 명이 둘러 앉아 그를 추모했다. 서 하사의 휴가를 기다리던 고향 친구들은 2010년 3월 얼음장 같은 바다에 그를 떠나보내야 했다. 고 서 하사와 인천의 한 동네친구인 이들은 이날 새벽부터 차를 몰아 대전으로 왔다고 한다.

바로 위 장군2묘역의 안현태, 그리고 그 옆 장군1묘역의 김창룡. 이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었다.

친구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일순간 차가워졌다. 한 친구가 무겁게 입술을 열었다.

"그거는 아니죠. 왜 그 사람이과 내 친구가 같은 땅에 묻혀야 하죠.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현충일이 "군인들이 죽은 날"이라고 답한 딸 아이에게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는 날"이라고 부연해줬더니 또 이런 답이 나왔다. "아 그 호국이구나. 이맘때면 학교에서 지겹게 하는 호국 글짓기, 호국 그림그리기, 호국 ...". 어느 때부터인가 우린 아이들에게 호국이 무엇인지 가르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떳떳하게 가르쳐주지 못한게 아닌 가하는 미안함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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