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충청 남현우 기자] 지난해 9월, 평범한 삶을 살던 A(48)씨는 “바닷가로 드라이브를 가자”며 아들을 차에 태웠다. 오랜만에 아버지가 제안한 여행에 멋모르고 따라나선 아들은 예산휴게소에서 A씨가 준 음료수를 받아 마신 이후 기억을 잃었다.
A씨가 아들에게 준 음료수에는 졸피뎀 성분의 수면제가 들어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A씨의 차 트렁크에는 다량의 연탄과 조개탄, 그리고 화덕이 실려 있었다. 서너 시간이 흐른 뒤 이들 부자가 탄 차는 세종시의 한 도로변 전봇대에 들이받은 채 주민에게 발견됐다.
그렇다. A씨는 아들에게 함께 세상을 등지기 위한 여행을 제안한 것이다. 다행히 A씨와 그의 아들은 목숨을 건졌고, 이어 A씨는 살인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대전지법 제13형사부(재판장 박태일)는 아들의 생명을 앗아가려 한 A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재판에서 “살인은 어떠한 이유로도 합리화될 수 없는 중대한 범죄일 뿐만 아니라 자녀를 보호할 책임이 있는 부모가 오히려 자녀의 생명을 해하려 했기에 막연한 동정심만으로 가벼운 처벌을 내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A씨도 아들이 평소 앓고 있던 질환이 악화돼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었고, 불안정한 심리상태에서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해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집행유예에 그친 형을 선고했다.
A씨가 아들과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그리고 재판부가 A씨의 상태를 참작해 준 이유(여러 감형 요소가 섞여있지만)는 한 가지에 수렴한다. 바로 아들이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A씨는 심한 조현병 증세를 보이는 아들을 범행 전까지 국립정신병원에 두 차례에 걸쳐 입원시켰다. 곧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증상은 악화되기만 했다. 급기야 아들은 A씨에게 “나를 왜 정신병원에 보냈냐. 아버지가 나의 인생을 망쳤다”고 소리쳤다.
아들에 대한 죄책감도 컸을 것이다. 아들의 외침에 미안한 마음과 스스로에 대한 원망도 가슴에 상처로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던 이유에는 그가 견뎌야 했던 이 세상의 편견, 편견을 해결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원망이 더 크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 사건을 접했을 때 뇌리에 스친 것은 대전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 문제였다. 물론 장애아동의 교육·재활 종합시설 건립과 이 사건 부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의 공통점은 많지 않다. 다소 뜬금없는 전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고 그러한 혼란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가 자신의 피붙이와 함께 세상을 떠나려 하는 슬픈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공공어린이재활병원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장애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의 부재가 이웃나라 일본에 200여 개의 어린이재활병원이 세워질 동안 민간병원 단 한 곳만이 존재하는 한국을 만든 것 아닐까.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약속해 온 ‘장애인도 사람 대접 받는 나라’, ‘장애인도 건강하게 문화를 누리는 나라’가 절실히 필요한 때다. 더 이상 장애 가족들이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는 나라가 아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