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늘 새로운 새벽이 오듯 늘 무대는 새롭죠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늘 새로운 새벽이 오듯 늘 무대는 새롭죠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의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극단 ‘새벽’의 대표 한선덕 씨를 만나다.
  •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 승인 2018.01.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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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극단 ‘새벽’은 대전의 소극장 운동 안에 있는 극단의 계보로 따지자면 2세대의 첫 주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극단 ‘앙상블’로 대변되는 1세대가 문을 닫고 퇴장할 무렵 ‘새벽’이 등장했고 이후로도 여러 맥락을 가지고 지금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새벽’의 대표 한선덕 씨는 극단 ‘갈채’에서 연극 인생의 첫발을 떼었다. 그렇게 ‘갈채’에서 활동하던 배우들이 주축이 되어 90년대 초반 ‘새벽’을 열었고 ‘새벽’이 활화산처럼 타오르다 주춤하던 90년대 말, ‘새벽’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셰익스피어’나 ‘드림’ 같은 3세대 극단으로 분화되어 나갔다. 간단하게 대전에서 활동하는 극단의 역사를 따라가던 얘기는 다시 개인사로 옮겨갔다.

한선덕 대표

“제 개인사에 관한 이야기는 잘 하지 않았어요.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이라 질 꺼내보지 않는 우울한 그림 같아요. 고향은 완주의 한 산골짜기였고 그렇게 좋지 않은 형편에 서울과 시골을 오가며 지내다가 친척집에서 생활하던 중학교 때였어요.”

그 즈음은 대학생들의 농촌활동이 활발했었고 방학이면 시골 동네에 찾아온 대학생들이 봉사활동도 하고 자신들이 만든 연극 공연도 했다. 그때 한선덕 씨는 연극을 처음 봤다고 했다. 정면으로 마주보기 싫은 자신의 현실을 잊을 수 있는 탈출구를 만난 것 같았다.

이후 교회에 나가면서 친구들을 모아 꾸준히 연극을 만들고 연기도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독립해 혼자 전주로 나가 생활하면서 잠시 연극반 활동을 했지만 청소년의 마지막 시기를 여러 곳을 여행하며 지냈다. 그렇게 떠돌다 군대를 마치고 정착한 곳이 대전이었다.

“연극을 잊을 수 없었어요. 어느 날 연극이 내게 다가왔는데 옷으로 따지면 내게 너무 좋은 옷이었습니다. 어려운 현실을 잊게 해주었고 그러면서 잠시나마 무대에서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죠. 그렇기 때문에 연극이 뭔지도 모르는 시절이었지만 좋아서 푹 빠져 살았고 대전에서 다시 연극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새벽’의 문을 열다
그렇게 대전에서 연극판을 기웃거리다가 1984년 말, 극단 ‘갈채’에 들어간다. 22살의 나이에 본격적으로 연극을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을 시작했지만 배고프고 고단한 생활은 대가처럼 따라왔다. 이때 아픈 일화 하나를 꺼냈다.

연극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얼마 안 된 1987년, 7년째 병상에 누워계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런데 장례 기간이 연극 공연과 겹쳐버린 것이다. 당시에는 1년에 연극 한두 편 무대에 올리는 일도 어려운 상황이고 공연도 딱 3일만 하던 때였다.

대신해줄 배우를 찾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래서 낮에는 상가를 지키고 밤에는 공연을 하러 가야만했다. 시골의 친인척들은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하며 상주가 비운 상가를 3일상도 다 채우지 않고 마쳐버린 것이다. 이 일로 멀리 살아 늦게 도착한 여동생은 장례를 치르지도 못했던 안타까운 기억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연극 하나는 열심히 했으나 불규칙한 생활 때문에 하던 일도 모두 접어야 했고 궁핍한 생활은 피할 수 없었다. 한번은 며칠 굶은 상태로 골목에 내놓은 제삿밥을 먹고는 잠이 들었다가 부랑자로 끌려갈 뻔 했던 일도 있었다고 한다.

“너무 힘들어서 연극 안 하겠다고 다짐하고는 일하면서 3개월을 버텼지만 다시 극단으로 옮기는 발길을 막을 수 없었어요.”

이후 극단 ‘갈채’가 문을 닫자 함께 했던 배우 21명이 모여 극단 ‘새벽’의 문을 연 때는 2000년이다. 극단 이름에도 일화가 있다. 어느 목사님이 ‘성경에서 좋은 일은 모두 새벽에 일어났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배우 모두가 젊었고 또 의욕에 차 연극의 새 장을 열어보자는 취지로 극단의 이름을 ‘새벽’으로 정했다.

극단은 출범했지만 연습실은 없었다. 그래서 젊은 단원이 일하는 사무실에서 저녁에 모여 몰래 연습을 했다. 그러나 좁은 그곳에서는 동작을 할 수 없어 저녁을 기다려 대학의 빈 강의실을 찾아 연습을 하곤 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창단공연으로 올렸는데 공연을 보고 칭찬을 마다하지 않은 한 의사의 힘을 입어 연습할 공간을 얻었고 이들은 그 공간을 아예 소극장으로 만들어버렸다. 뜨겁게 타오른 극단은 단원이 80명에 달했고 전국연극제에서 금상을 받는 성과도 거둔다.

이 무렵 한선덕 씨는 평생의 배필도 만난다. 간호사였던 지금의 부인은 생활은 자신이 책임질 테니 남편에게는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라고 배려했다. 그렇게 시작한 고생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인생에 있어 한줄기 폭포 같은 것
2000년이 다가올 즈음 한선덕 씨에게 연극은 삶의 전부가 되어있었다. 잠시 주춤해 흩어졌던 ‘새벽’은 젊은 연기자들을 중심으로 다시 일어섰다. 열댓 명의 배우가 뭉쳐 하고 싶은 연극을 준비하면서 힘차게 극단을 꾸려나갔다.

이때 1년에 대여섯 작품을 소화하면서 전국 순회공연까지도 돌았다. 또 대전의 극단 중에서 처음으로 중국, 독일, 체코 등 해외 공연도 시작했으며 2008년에 심기일전, 다시 전국연극제에서 금상을 받는다. 이때까지의 성과는 큰 것이었다.

“내가 좋아서 시작했고 지금까지 삶으로 살아온 연극이기에 연극에 관해 현실에서 실패와 성공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꼽자면 제일 큰 것은 극단 ‘새벽’을 20년 넘게 이끌고 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또…….”

2001년과 2002년, 이렇게 두 번 월드컵 문화행사의 하나로 대형 창작 뮤지컬을 제작하고 연출했던 일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갑수와 천녀’라는 제목의 이 뮤지컬은 대전의 갑천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배우와 무용수 등 80여 명이 출연하는 대형 뮤지컬이었다.

2005년에는 대전 예술의 전당 개관기념 공연 뮤지컬 ‘블루 사이공’을 연출하기도 했다. 한선덕 씨는 따로 음악이나 뮤지컬을 공부하지 않았지만 젊은 배우들과 대사훈련을 하면서 노래로 했던 경험이 뮤지컬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고 했다.

지금 ‘새벽’은 잠시 어려움에 처해있다. 2014년부터 극단 바깥에서 닥친 경제적인 문제로 시작해 대표 한선덕 씨의 건강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이런 난관 속에서도 ‘새벽’은 1년에 두 작품 이상은 무대에 올리고 있다. 삶으로의 연극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연극을 한 것은 무슨 의미를 찾고자 해서 한 것은 아닙니다. 하고 싶으니까 했고 그래야 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지금까지 내 삶을 지탱해주는 것이기 하죠. 연극이 아니었으면 현실을 부정하면서 굉장히 소극적인 주변인으로 살았을 것 같아요. 연극은 긍정적인 힘으로 나를 단련시키고 사회 구성원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을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연극을 하려는 후배들에 한마디도 잊지 않았다.

“연극에서 전망을 찾기 이전에 하고 싶은 일은 해봐야죠. 겪어서 아는 것이 가장 사무치기 때문에 직접 겪어야 몸으로 알 수 있어요. 일단 하면 결판이 날 때까지 해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너무 이것저것 재지 말고 하고 싶으면 일단 해봐야 합니다.”

청춘이니까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마디 더 얹었다. 연극에는 인생의 바닥에 닿아있는 뭔가가 있다고, 사막의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한 줄기 폭포 같은 것이 있다고 말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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