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김종필과 이해찬, 그리고 충청도 정치
[노트북을 열며] 김종필과 이해찬, 그리고 충청도 정치
다른 길 걸었지만 모두 '충청의 자산이자 한계'…충청권 양대 정치세력의 화해를
  • 김갑수 기자
  • 승인 2018.06.24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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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김종필 전 총리와 이해찬 전 총리. 그러나 기자는 두 사람 모두에게서 애잔함을 느낀다. 이들 모두 충청인에게는 ‘자산이자 한계’였기 때문이다.

[굿모닝충청 김갑수 기자] 17대 대선을 앞둔 2007년 9월 어느 날이었다.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에 출마했던 이해찬 전 국무총리(현 국회의원)와 충청권 기자들이 서울 여의도에서 간담회를 가졌다.

당시 이 전 총리의 대변인을 맡았던 양승조 국회의원(현 충남도지사 당선자)도 배석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원로급 선배 기자가 이 전 총리에게 이런 권유를 했다.

“그래도 충청도의 어르신인 JP(김종필 전 총리)를 찾아가 인사라도 하시는 게 어떠십니까?”

이 말을 들은 이 전 총리는 발끈했다. 김 전 총리를 ‘쿠데타 세력’으로 규정하며 “그런 사람에게 왜 인사를 가야 하느냐?”고 언성을 높인 뒤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뒤따라 간 양 의원의 설득으로 이 전 총리는 다시 자리에 돌아왔고, 없던 일로 하기로 합의까지 봤지만 서먹한 분위기는 끝까지 이어졌다.

이날 해프닝은 며칠 뒤 다른 기자의 칼럼에 의해 공개됐고, 이 전 총리를 향한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부대변인의 비판 논평까지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기까지는 알려진 이야기다. 그러나 이 전 총리가 스치듯 말한 한 마디를 기자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JP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그 와중에 기자는 당돌하게 이 전 총리에게 이런 질문을 했더랬다.

“이 전 총리님이 충청도(청양) 사람인지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대체 왜 그러셨나요?”

이 전 총리의 답변은 매우 직설적이고 인상적이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이런 취지의 대답이 돌아왔다.

“호남정당에서 충청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드러낼 순 없었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고향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짧은 발언이었지만 그를 새롭게 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13대 총선에서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고, 평민당 원내부총무와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제36대 국무총리, 민주통합당 대표 등 주로 호남 기반 정당에 몸담았던 그였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부독재와 맞서 싸운 이 전 총리의 입장에서는 5.16에 주도적으로 가담한 김 전 총리를, 아무리 고향 선배 정치인이라 할지라도 ‘쿠데타 세력’ 그 이상으로 평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처럼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김 전 총리와 이 전 총리. 그러나 기자는 두 사람 모두에게서 애잔함을 느낀다. 이들 모두 충청인에게는 ‘자산이자 한계’였기 때문이다.

이들 모두 킹메이커 역할을 했지만, 정작 자신은 왕좌에 오르지 못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김 전 총리는 영남, 특히 T‧K(대구‧경북) 세력에 대한 피해의식이 컸다고 한다. 이것이 충청+호남 연대로 평가받는 ‘DJP연대’의 추동력이 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역주의 정치로 충청권을 고립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그나마 JP가 있었기에…”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50여석의 ‘자민련 신화’ 역시 그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

이 전 총리는 ‘서슬 퍼런’ 호남기반 정당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왔고, 총리에 당 대표까지 지냈다는 점에서 ‘충청도 정치의 한계’를 일정부분 극복한 인물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이 걸어온 길을 현재 충청권 모든 정치인들이 뒤따르고 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이완구 전 총리와 이인제 전 최고위원, 정진석 국회의원(공주‧부여‧청양) 등이 ‘포스트 JP’를 꿈꾸고 있다면, 이 전 총리 뒤에는 양승조 당선자를 중심으로 한 충청권 민주 세력이 포진해 있다고 할 수 있다.

6.13 지방선거를 통해 이 전 총리의 세력이 전면에 나서고 있지만, 정치란 무정형의 생물인 만큼 상황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좌초 위기의 자유한국당을 건질 인물이 충청권에서 나올 수도 있다.

기자는 2022년 대선에서 ‘충청대망론’의 주인공이 이들 중에 배출되길 바란다. 그리하여 김 전 총리도, 이 전 총리도 달성하지 못한 그 무엇을 반드시 이뤄내길 바란다.

김 전 총리가 가진 여유와 낭만, 이 전 총리의 개혁성과 돌파력을 두루 갖춘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덧붙여 이 전 총리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하나 있다. 혹여 마음이 내키지 않더라도 김 전 총리의 빈소에 가서 조문하고 국화 한 송이 올려놓았으면 한다.

고인에 대한 마지막 예우 차원을 넘어 충청권은 물론 대한민국 양대 정치세력의 화해와 상생을 위한 상징적이고 뜻깊은 일을 주저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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