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휴일을 맞아 숨을 고르는 정동 골목을 걷다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휴일을 맞아 숨을 고르는 정동 골목을 걷다
(81) 정동
  •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 승인 2018.07.1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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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다음날 장맛비가 다니러 온다고 예고된 일요일 오후의 대전역 광장은 하늘부터 땅까지 온통 회색빛이었다. 그러나 우울하다기 보다는 이제 곧 닥칠 칠월의 더위에 맞서기 위해 서서히 몸을 푸는 느긋한 회색의 거리였다.

이제 비가 오고, 비가 개고, 더위가 닥치면 또 그만큼 생명은 활기차게 여름을 즐길 것이다.

이렇게 오늘은 새로운 여름을 기다리는 골목을 찾았다. 우리에게 익숙하나 활기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거리, 우리와 너무도 가까이 있는 골목이 바로 정동 골목이다.

정동 골목은 대전역에서 나와 만나는 큰길에서 삼성동을 향하는 오른쪽 길 바로 전에 입구가 있는 작은 골목이다. 대전역 광장의 주차장을 끼고 들어가는 이 골목은 행정이름으로는 동구 정동 역전1길이다.

이 길의 첫 느낌은 큰길의 뒷골목이다. 큰길에 정문을 내고 장사하는 업소들이 모두 이 길에 뒷문을 가지고 있다.

편의점, 프랜차이즈 빵집, 분식집, 화장품 가게, 중고책방과 같이 대전역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 업소들의 뒷문으로 골목은 시작한다. 으레 뒷문이 그렇듯 잡동사니와 쓰레기봉투가 연상되지만 최근의 소문대로 길은 깨끗하다.

그리고 눈에 띄는 표지판, ‘청소년 통행금지구역’. 나이가 어리다고 걸을 수 없는 골목이 있다는 것은 도시가 가지고 있는 어두운 얼굴의 증거이다.

붉은 포장을 둘러쓰고 웅크리고 있는 10여 개의 포장마차들. 날이 어두워지면 포장을 걷고 역에서 나오는 고단한 이들의 허기를 달래거나 취기를 더하는 일을 할 것이다. 바로 이어지는 작고 오래된 숙박업소들. 일명 쪽방촌이라 불리기도 했던 이 골목은 마치 30~40년 전에 시간이 멈춰버린 과거의 골목으로 들어서는 기분이다.

이 골목은 최근에 큰 변화를 맞고 있다. 원도심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자는 움직임도 이미 꽤 긴 시간 동안 이어지고 있다.

정동 골목에도 2017년 예술가들이 찾아들었다. 격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소외된 골목길을 문화예술로 다시 꽃 피우자는 예술운동이자 오래된 동네에 관한 생각을 바꾸자는 인식재생 프로젝트이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제목을 달고 많은 예술가들이 이 골목을 찾았다. 오래된 여인숙을 빌리고 작은 창고를 고쳐 9개의 예술 공방이 주민들과 어울려 둥지를 틀었다.

이곳에서는 매일 꿈틀꿈틀 새로움을 만들어내고 있다. 흑백사진전 ‘회상’도 열었고 ‘보물섬’이라는 주제로 전시회도 볼 수 있었다. 대전에 거주하는 다국적 작가들이 모여 독특한 벽화작업도 기억에 남는 일이다. 주민이 함께하는 공연마당도 펼쳤으며 골목 곳곳에서 오래된 시간 위에 덧칠한 예술가의 숨결을 만날 수 있다. 6월에는 ‘정동마켓’이라는 이름으로 프리마켓이 열려 또 떠들썩한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여기에 주목할 만한 일은 사람들이 골목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대전체험여행협동조합에서 주관하는 대전 스토리여행 투어가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주기적으로 정동 골목을 찾는 것이다.

이 투어의 관심은 예술가들이 새롭게 만들어가는 골목의 모습에도 있지만 우리의 시간, 과거 우리가 살던 그대로 골목 모습을 다시 만나는 가치에도 무게를 두고 있다.

대전역을 나오면 왼쪽으로 펼쳐진 원동은 지금은 전통시장이 주를 이루지만 6,70년대에는 서울의 명동과 같은 서비스업이 왕성했던 지역이었다고 한다.

반대로 오른쪽인 정동 지역은 소규모 공장을 비롯해 철공소와 같은 제조골목이었다.

따라서 기술자들이 많이 살았고 정동 골목도 역에서 내린 고단한 여행객이 스쳐가기도 했지만 기술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거주했다.

그래서 주민의 대부분은 30~40년 이상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시어머니 때부터 60년 넘게 같은 곳에서 상점을 열고 있는 ‘정동상회’ 사장님은 오늘따라 몸이 불편하다면 힘겹게 몇 마디 역사를 던졌다.

“여기가 철도 근처잖아요. 그래서 철도청 땅인데 옛날 사람들이 모여 살다가 요즘말로 하면 분양을 받았어요. 그래서 집짓고 사는 거요. 그러니까 오래들 살지.”

40년 동안 한곳에서 손으로 구두를 만들어온 ‘77양화점’은 문을 닫았다. 그 이유도 들려주었다.
“그 양반, 일요일이면 부부간에 운동하러 산에 가요. 평일에 와야 만나지.”

‘노래하는 당신의 옷’은 옷 수선집이다. 한사코 사진은 사양하는 사장님은 정동골목에 들어온 지 5년 되었다. 그리고 예술가와 작업실을 같이 쓴다. 재미있는 가게 외양은 예술가 청년들이 만들었다.

“왜 들어왔겟슈. 살다보니께 흘러들어온거유. 살다보니께.”

일요일 오후 정동의 골목은 한적했다. 바쁘게 돌아가는 요즘의 변화에 한숨 고르고 있는 듯도 했지만 사는 일이 원래 이리 고즈넉하게 저녁을 기다리는 일이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간판이 부서진 ‘정미용실’ 문에는 ‘임대’라는 딱지가 붙었고 수선집 2층 ‘이름 짓는 집’이 자신의 이름마저 희미해지는 시간이지만 그 골목은 지금도 다닥다닥 사람의 숨이 붙어있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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