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목동의 사라져가는 골목길에서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듣다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목동의 사라져가는 골목길에서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듣다
  •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 승인 2018.08.10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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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흔적은 무언가 사라지고 없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흔적마저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들도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그대로일지언정 주변의 모양새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형태가 존재한다. 누구는 그저 변화라고 생각하지만 한 시대의 모양은 한 시대의 문화이기도 하다. 목동3지역, 지금 또 하나의 마을이 사라지고 있다. 재개발로 사람이 떠나고 있으며 한 시절 삶의 형태가 무너지고 있다.

재개발이 결정되어 급속하게 변화를 맞고 있는 지역은 대전시 중구 목동에서 선화동으로 이어져있다. 이중 목동3지역은 충남여자중학교 아래쪽 동네로 목동네거리에서 동서대로로 200여 미터, 목동네거리에서 선화서로로 말망산네거리를 지나는 400여 미터를 변으로 사각형을 이루는 지역이다. 올해 말까지 모든 보상절차가 끝날 예정이고, 그러면 내년부터 재개발 공사에 들어갈 계획인 지역이다.

일단 무작정 동네를 찾았다. 이미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떠나 여기저기 담이 헐린 빈집이 보이고 골목에는 쓰레기들이 쌓여있다. 붉은색 스프레이로 ‘철거’라고 쓴 대문들이 많다. 그러나 아직 이 동네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기에 스산하고 어수선한 떠난 이들의 흔적과 스스로를 다듬고 있는 삶을 같이 찾아볼 수 있는 곳이다.

어수선한 골목을 돌아보고 목동 주민자치센터를 찾았다. 마음 좋은 동네 형 같은 동장님이 반갑게 손을 쥐고 흔들어주고는 흔쾌히 함께 동네를 돌며 이것저것 설명을 덧붙인다.

“사라지는 동네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기록을 남기는 작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젊은 예술가들이나 연구자들이 참여해 다양한 방식으로 사라지는 것들을 기록하고 추억해보고 싶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았어요.”

랑랑이용원
이용원 내부

해맑은 미소로 사람을 맞는 목동의 동장 민찬기 씨는 공무원으로서 정년이 2년밖에 남지 않은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몸도 마음도 젊었다. 도시의 마을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따듯한 공동체로 가꾸어보고 싶어서 동장을 꼭 해보고 싶었다는 목동의 동장 또한 목동의 주민이다.
발길은 목동네거리에서 3지역으로 접어들었다. 가장 먼저 아직도 성업 중인 기름집을 만났지만 연세 지긋한 주인어른은 출타 중이다. 골목을 따라 쭉 들어가면 맞은편에 40년 넘게 동네를 지키고 있던 랑랑 이용원을 만난다. 오래된 이발소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바로 얼마 전 새로운 자리로 둥지를 옮겼다. 세월이 쌓인 나무문을 밀어본다. 깨끗한 사람은 난자리도 깔끔하다.
“지금 목동에는 주요 아파트로 5개 단지가 있어요. 그곳에서 주민의 87%가 살고 있죠. 사람들을 모아 마을 공동체를 살리고 싶어서 작년에 아파트 별로 돌아가면서 포트럭 파티(potluck party)를 열었어요. 자기가 먹을 음식은 자기가 싸와 서로 나눠먹는 모임이죠. 행정적으로 동원하지 않고 관리사무소를 통해 홍보했어요. 간단한 빵이나 떡 과일을 가지고 모이자고 했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였어요. 그런데 빵만 먹으면 재미없으니까 노래 잘하는 사람, 춤 잘 추는 사람들이 나와서 발표도 하고, 그러다 학원에서도 출연하겠다고 하고, 신났습니다. 이곳도 곧 아파트로 바뀌겠죠. 그렇게 또 사람들이 모여 살 겁니다.”

곧 다른 모습으로 바뀔 목동의 골목에서 목동에 지금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옛 외국인 선교사 숙소

이 지역에는 아주 오래된 교회가 있다. 그리고 오래전 외국인 선교사들이 머물던 건물도 아직 모습을 갖추고 있다. 지금은 교회의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이 또한 곧 사라질 것이다.

“올해는 고스톱 대회를 했어요. 목동에 경로당이 7개인데 어르신들이 모여 주로 고스톱을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단체전을 해보자고 했죠. 경로당별로 대표선수 4분을 뽑아 ‘일곱 빛깔 무지개 문화 고스톱 대회’를 열었어요. 팀별로 색색 조끼도 나누어 입고, 경로당 회장님들을 심판위원장으로 모시고, 전국체전처럼 대표 선수 선서도 했습니다. ‘우리는 지역의 어르신으로서 모범을 보이고 건전한 고스톱 문화 보급을 위해 앞장서겠습니다.’ 이런 내용이었죠. 충청도 출신 개그맨 최양락 씨가 하는 프로그램에서 전국으로 전파도 탔습니다.”

대전중앙초등학교 아래쯤인가, 대문 열린 빈집에 들어본다. 집 안에는 누군가 정원석을 캐간 흔적이 있고 곳곳에 큰 나무들도 뽑아간 듯 땅이 패여 있다. 주인 떠난 대문 위에서 혼자 익어가는 청포도가 쓸쓸하다. 널찍한 골목 끝에 잘 정돈된 집으로 발길을 향한다.

“이 집에 사시던 노부부는 대전시에서 ‘백년해로 부부’로 선정하고 시장님이 직접 인사를 드릴 만큼 오래 함께 지내신 분들이 살았어요. 여기서 오래 사셨고 집도 많이 아끼셨는데 지금은 목동의 가까운 아파트로 이주하셨어요. 그리고 여기…….”

동장님은 나무 한그루를 가리킨다.

“호랑가시나무인데 이렇게 잘 자란 호랑가시나무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하더라구요. 더욱이 도시에서 찾아보기는 어려운 경우인데, 어떻게 알았는지 환경과 관련된 기관에서 나무를 이전해 관리하기로 했습니다.”

사람이 살던 곳은 그만큼의 이야기가 있다.

호랑가시나무

이렇게 사라지는 이야기도 있지만 지금 활발하게 움직이는 이야기도 많다.

“주민들이 스스로 움직이니까 일도 많습니다. 자치센터에 작은 도서관이 있는데 주민들을 위해 누군가 기금을 내놓아 북카페로 조성됩니다. 그 자리에는 ‘양치는 목동’이라는 어머니들이 모여 자원봉사하면서 프로그램도 짜고 강사도 섭외하고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또 100년 된 성당에서 청년 음악인들에게 개방하는 평화음악회도 꼭 봐야할 목동의 큰 마당입니다. 목동에 한번 놀러오세요.”

목동에서 사라지는 골목을 돌아보면서 목동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다 꼭 쥔 손을 본다. 목동의 동장님이 쥐어준 작은 음료수 병이 이미 따듯해져 있다. 이 여름의 더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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