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의 문화와 정치] 응원봉과 경광봉, 그 문화적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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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1.17 10:24
  • 수정 2025.01.17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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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SNS/굿모닝충청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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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 윤석열의 내란 이후 촛불혁명은 “빛의 혁명”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20·30세대와 K콘텐츠 팬덤, 그리고 응원봉이 있었다.

원래 촛불혁명은 2002년 한일월드컵이란 문화적 용광로에서 탄생했다. 축구라는 단일 종목의 세계적 이벤트인 월드컵은 한국에서는 90년대까지만 해도 올림픽보다 주목도가 낮았다. 그런데 94년부터 일본과의 자존심을 건 유치 경쟁이 벌어졌고, 급격히 월드컵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또한, 98년 외환위기의 극복을 전 세계에 입증하고 싶었던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면서 명실상부한 국민의 축제로 승격되었다. 특히 초대 민주 정부의 자신감이 배어있는 거리 응원은 그야말로 문화적 충격이었다. 축구 덕후들 모임인 서포터즈 “붉은 악마들”의 주도 아래 시민들은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대한민국을 연호하면서 시민들의 대표 격인 축구팀과 공동체의 일원인 자신들을 응원했다.

여기에 90년대 내내 축적된 공연 제작 역량, 그리고 방송사들의 과감한 투자와 적극적인 정부 지원, 인터넷의 보급과 온라인 커뮤니티의 열기 등이 만나 새로운 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문화 동력이 탄생한 것이었다. 

이 경험은 외환위기로 무너졌던 공동체를 전방위적으로 회복시켰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미군 장갑차에 희생당한 미선이와 효순이를 기리는 촛불집회였다. 이 집회는 2002년 11월 20일에 가해자들의 무죄 판결 소식이 알려지면서 놀랄만한 속도로 준비되어 11월 26일에 첫 집회가 열렸고 이듬해에는 광화문에서 1만여 명이 참여할 만큼 대규모 집회로 성장했다.

이런 폭발적 반응은 우선 월드컵 기간 중 벌어진 사건이라 관심을 쏟지 못했기에 부당한 판결이 나왔다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희생자들을 자기 가족처럼 느끼는 공감이 전제되는 각성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 각성이 전파되는 데에는 이미 시민들의 일상 속에 자리 잡은 인터넷과 메신저의 역할이 지대했다. 

‘촛불’을 집회 도구로 선택한 것은 상징적 의미 때문이다. ‘촛불’은 ‘초’, 즉 밀랍이나 파라핀 가운데 심지를 넣은 도구에 불을 붙인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촛불’은 곧 초가 타면서 만드는 ‘빛’이다. 이 ‘빛’은 어둠을 이기고 주위를 인지하게 만든다. 그래서 ‘지혜’, ‘각성’ 등의 의미로 확장된다. 각성한 사람들이 자신을 상징하는 촛불을 들고 참여하는 집회가 촛불집회라는 것이다. 

또한 ‘촛불’은 자신의 몸에 해당하는 밀랍이나 파라핀 등을 태워야 유지된다. 따라서 ‘희생’, ‘인생’ 등의 의미로 확장된다. 가장 평화로우면서도 가장 혁명적인 집회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자신을 희생하면서 원하는 세상을 만들거나 유지한다는 의미로 확장이 되면 ‘기원’, ‘발원’의 의미가 된다.

‘촛불’을 유지하기 위해 녹아내리는 몸통이 곧 언젠가는 무로 돌아가는 생명체 보편의 모습이기에, 촛불을 밝히는 사람과 촛불은 흔히 동일시된다. 정태춘의 ‘촛불’이나 양현경의 ‘촛불 켜는 밤’ 등은 이런 의미를 확장해서 만든 노래고, 그런 의미에서 ‘촛불’만 켜 두는 집회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2002년의 촛불집회는 여기에 또 하나의 의미를 더하면서 최초의 촛불집회로 기록이 되는데 그 의미가 당대의 시대정신이었음은 2000년에 나온 GOD의 <촛불 하나>라는 노래를 통해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촛불 하나>에서 반복되는 후렴구는 “지치고 힘들 땐 내게 기대, 언제나 네 곁에 서 있을게,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내가 너의 손 잡아 줄게”이다. 
이 노래는 촛불이 연대하면 어떤 힘을 만들 수 있는지 이렇게 노래한다. “작은 촛불 하나 켜보면 달라지는 게 너무나도 많아 아무것도 없다고 믿었던 내 주위엔 또 다른 초 하나가 놓여져 있었기에 불을 밝히니 촛불이 두 개가 되고 그 불빛으로 다른 초를 또 찾고 세 개가 되고 네 개가 되고 어둠은 사라져가고”

그렇다면 “응원봉”은 어떻게 담론을 지배해 온 이 강력한 사유의 힘을 대신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촛불이 가지는 의미를 적극적으로 해석해 내면서 시대정신을 담아낸 2030들의 정체성 때문이었다. 그들은 저성장의 시대에도 극심하게 벌어지는 사회적 경제적 불균형에 치여 오직 생존하는 것을 목표로 견뎌온 사회적 약자들이다.

공동체와 연대를 말하는 것보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 더 절실했기에 매 순간 내가 어떤 특별함을 가졌는지를 되물었고, 다름을 존중하는 것을 배우며 버틴 세대들이었다. 그들이 개성과 취향을 드러내면서 특별한 자신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간이었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아이돌들과 셀럽들의 시각에서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이 곧 위로의 시간이었다. 

그들은 윤석열의 내란을 통해, 오롯이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소비하면서 자기를 자기답게 버티도록 하는 그 시간이 국가폭력 앞에서는 너무도 손쉽게 짓밟힐 수 있다는 자각을 획득했다. 그 공포와 불안을 극복하는 것은 나답게 존재하면서 또 다른 소수들과 연대하면서 공동체의 질서를 회복하는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 전체주의를 응징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 그들이 선택한 것이 자신의 분신인 응원봉이었다. 일종의 의례라고 할 수 있는 콘서트나 팬 미팅에 갈 때만 꺼내는 가장 소중하면서 가장 빛나는 물건이며 나를 상징하면서 내가 속한 커뮤니티를 상징하는 도구이다. 이 새로운 촛불은 바람이 불어도 꺼지지 않고, 각자의 얼굴과 색깔과 모양이 다 표현되면서도 함께 할 때 더욱 특별한 퍼포먼스가 가능하도록 업그레이드된 촛불이다. (실제로 콘서트장에서는 응원봉들에 신호를 쏴서 원하는 빛의 퍼포먼스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더구나 그 도구를 흔드는 때는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응원할 때다.

그래서 ‘빛의 혁명’은 노동자를 응원하고 농민을 응원하고 성 소수자를 응원하고 수많은 사회적 약자를 응원하는 혁명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응원이 또 다른 나를 응원하는 일이기에 곧 나를 외치는 것이다. 가장 이타적인 행위를 하면서도 나를 응원할 수 있다는 것은, 2002년 월드컵의 응원 정신과 맥을 같이한다. 

이런 대열에 대항한다고 극우들이 들고나온 것이 경광봉이다. 경광봉의 상징적 의미는 ‘통제’이다. 위기나 경고를 의미하고 사고의 상황이나 징벌의 상황에 등장해서 공공의 목적을 위해 개인에게 획일적인 행동을 하도록 지시하는 도구이다. 이 도구가 사용되는 집회라는 것은 그 목적이 다른 집단이나 개인을 통제하겠다는 것이고, 그 통제할 권력을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을 반영한다.

그리고 그 권력은 그들이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경광봉을 휘두르는 일은 결국 자신들을 위하는 일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 자를 위하는 일이다. 애초에 경광봉이 자신의 정체성과는 상관없기에, 자발적인 자기표현이 아닌 권력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을 내어 주는 일종의 빙의이자 접신의 현상이다. 

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
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

그들은 전체주의나 일당 독재를 비난하면서 획일적 사과와 행동을 찬양한다. 권력을 흠모하고 권력의 일부를 행사할 수 있다면 더 큰 권력자의 부분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자각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버티는 자와 빙의와 접신을 통해 권력을 행사하고 싶어 하는 자 중에 누가 승리할 것인가? 누가 미래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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