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충청 신성재 기자] 충청권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 혐의 방어를 비호하고 있는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을 강도 높게 규탄하며, 즉각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는 단순한 지역의 항의가 아니라, 국가인권위원회의 존재 가치와 헌법 질서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던지는 사건이다.
26일 오전 대전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사무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는 양심과인권-나무, 대전인권행동, 이주민노동인권센터, 충남인권교육활동가모임 부뜰, 세종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참교육학부모회, 차별금지법제정충북연대 등 충청권 200여 개 인권·시민사회단체가 참여했다. 이들은 안 위원장이 윤 대통령을 두둔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국가인권위 수장 자격이 없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번 회견은 단순한 성명 발표가 아니었다. 참가자들은 인권사무소 앞 계단에 올라가 간담회를 직접 요구하며 항의했다. 안 위원장이 취임 이후 한 차례도 시민사회와 간담회를 열지 않았다는 점에 분노한 것이다. "대화 없는 홍보성 순회는 진정한 인권 행보가 아니다"라는 외침은 인권위가 더 이상 시민과 함께하지 않고 있다는 좌절의 표현이었다.

실제로 이날 현장에선 1시간 반가량 대치 상황이 이어졌다. 시민사회는 간담회를 요구했고, 안 위원장은 "반대 입장에 있는 사람들도 4명 정도 함께 참여해야 한다"며 조건을 내걸었다.
이 조건은 시민사회단체들에겐 '대화 회피용 꼼수'로 비쳤다. 결국 이날 오후 12시 40분쯤 시민사회 대표단 4명과의 간담회가 열리긴 했지만, 이는 본질적 대화라기보다 충돌을 무마하기 위한 형식적 수용에 가까웠다.
간담회에서 시민사회는 국가인권위원회 전원위원회를 통해 결정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리 관련 권고안'에 대해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해당 권고안은 윤 대통령에 대한 재판을 불구속 상태에서 진행하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시민사회는 이를 "내란 세력을 두둔하는 반헌법적 결정"이라고 규정했다.
이에 대해 안 위원장은 "헌법재판의 절차적 문제를 걸어 절차를 잘 밟아 하라고 권고하는 등의 내용에 불과할 뿐이지 전원회의 결정이 무리한 결정은 아니다"라며 기존 입장을 다소 완화하는 발언을 내놓았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입장 변화도 없었다. 시민사회가 과거 안 위원장이 차별금지법을 공산주의 혁명의 수단으로 비유한 발언을 문제 삼자, 그는 "옛날에 책을 쓰던 시절, 어떤 사람의 논문을 보고 그런 우려가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라는 식의 모호한 답변으로 논란을 피해갔다. 이는 본인의 신념에 대한 책임 있는 설명이라기보다는, 비판을 모면하려는 궁색한 회피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간담회 지연과 형식적 대응에 대한 사과 요구가 이어졌지만, 안 위원장은 "사과할 수 없다"며 이를 거부했다. 이는 인권의 본질인 소통과 존중을 외면한 오만한 태도라는 시민사회의 비판을 더욱 키웠다.
이병구 양심과인권-나무 사무처장은 "12.3 군사쿠데타 기도 당시 발표된 계엄포고령은 정치적 자유권과 언론·출판의 자유, 노동권을 전면 부정하고, 전공의 파업 참여자에 대한 처벌을 위협하는 등, 인권의 본질을 파괴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며, 해당 조치를 비판하기는커녕 윤석열 대통령을 비호한 안 위원장의 태도에 대해 "인권위의 존재 이유를 부정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 자리가 인권을 위한 자리라면, 12월 3일 국회로 달려가 탱크 앞에 드러누웠어야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안 위원장의 자격을 부정했다. 이는 안 위원장이 단순히 편향된 발언을 했다는 차원이 아니라, 헌법적 질서와 인권 가치의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방기했다는 비판이다.
시민사회의 비판은 안 위원장의 과거 언행까지 폭넓게 겨냥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을 공산주의 혁명의 수단으로 보는 세계관, 진화론을 부정하고 창조론을 옹호하는 반지성주의적 태도, 그리고 성소수자 인권 보호에 대한 무관심은 이미 수차례 문제로 지적돼 왔다.
여기에 더해 최근 인권위 전원회의에서 통과된 ‘계엄 선포로 인한 국가위기 극복 권고안’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이 권고안은 대통령 탄핵 심리를 형사소송 절차에 준해 엄격하게 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윤 대통령의 방어권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내란 혐의로 구속된 전 국방부 장관 김용현에 대한 불구속 재판 원칙을 언급하는 등 사실상 권력자 편에 선 태도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 보호가 아닌 정권 보호의 방패로 전락했다"고 비판하며, 인권위가 제출한 탄핵 심리 관련 의견서가 "헌법기관에 대한 월권이며, 명백한 편향"이라고 지적했다.
안건수 이주민노동인권센터 소장은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권리 보장 사례를 소개하며, "이것이 진정한 인권위의 역할"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안 위원장이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다"며, "지금은 국민 각자가 도생하는 시대지만, 인권위만큼은 약자의 편에 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정은정 세종여성 대표와 조장우 차별금지법제정충북연대 집행위원장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정상적인 인권기구라면 계엄 포고에 대해 즉각적이고 명백한 규탄 성명을 내야 했다"며, "오히려 대통령 탄핵 사건의 절차적 엄격함만 강조하는 인권위는 더 이상 국민의 편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윤석열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인권위원장이 존재하는 한, 인권은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며 “즉각 사퇴하고 인권위 본연의 역할을 회복할 수 있도록 구조적 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번 충청권 시민사회의 집단적 반발은 단지 한 명의 위원장에 대한 항의가 아니다. 그것은 인권위가 인권을 말하지 않고, 권력을 말하고 있다는 데 대한 분노이며, 이른바 ‘내란 세력 옹호’라는 역사적 퇴행에 대한 전면전 선언이다.
시민사회의 최전선에서 울려 퍼진 이날의 외침은, 단지 충청만의 분노가 아니라 오늘날 대한민국 인권의 방향타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가늠케 하는 경고음이다.
우리나라 인권운동의 뿌리를 지키기 위한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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