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우의 환경이야기Ⅱ] 환경운동가 어머니의 '시 두 편 ’
[염우의 환경이야기Ⅱ] 환경운동가 어머니의 '시 두 편 ’
염 우 (사)풀꿈환경재단 대표, 청주새활용시민센터 관장
  • 김종혁 기자
  • 승인 2024.03.30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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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우 풀꿈환경재단 대표의 어머니. 사진=풀꿈환경재단/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올해 설날이었다. 복대동 부모님댁에 형제자매와 손주들이 모였다. 세배 시간이 되었다. 먼저 큰누나 부부, 작은누나 부부, 다음 남동생과 우리 부부가 돌아가며 절을 했고 인사말과 덕담을 나눴다. 손주들은 합동으로 세배를 했다. 끝날 무렵 어머니(평소 엄마라고 부름)가 복받치는 목소리로 말씀을 보탰다.

“어렸을 때 나에게는 꿈도 많았지. 배우의 꿈, 가수의 꿈. 무대 위에 한 번 서보지 못하고 꿈은 사라졌네.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 꿈은 보이지 않네. 세월 속에 묻혀간 것일까? 강물 속에 흘러간 것일까? 아무리 찾아보아도 찾을 길 없네. 농촌 생활 반평생, 자식 뒷바라지 반평생. 그러나 꿈이 하나 남았네. 자식들의 성공을 바라는 꿈, 보석 같은 꿈. 그 꿈을 기리며 오늘도 허리 굽은 할미꽃은 팔십 고개를 걷고 있네. 보석 같은 그 꿈만을 영원히 간직하리.”

처음에는 2024년 설날을 맞이하여 특별히 준비한 축사인 줄로만 알았다. 듣다 보니 언젠가 들어보았던 문구라는 걸 깨달았다. 7년 전쯤인가, 청주시 평생학습관에서 개최했던 노인교실 시화전 때 전시했던 어머니의 자작시였다. 제목은 ‘꿈’이다. 평생의 소망을 담아냈던 그 시를 기억하고 있다가 낭송한 것이다. 이제 걱정도 없고 바랄 것도 없다고 덧붙였다. 근심과 걱정을 늘 안고 살던 어머니, 행복해하는 모습을 너무도 오랜만에 보았다. 아마도 직전에 이루어진 아들의 박사학위 취득과 손주의 대학 입학이 어머니 마음을 그토록 기쁘게 한 모양이다. 가족들 모두 눈물이 핑 돌았다.

나의 어머니는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 연씨 집안의 11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처녀시절 복스러운 얼굴과 검은 긴머리로 인해 원남 춘향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이십대 어느날 외할아버니가 돌아가셨고 맏딸인 어머니는 서둘러 중매 결혼을 하게 되었다. 음성읍 변두리의 부잣집으로 소문났던 염씨 집안의 차남과 혼례를 치렀다. 꿈 많던 처녀가 가부장제를 고수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대가족에 편입되어 치열한 삶의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결혼 후 뒤늦게 군대에 갔고 어머니는 홀로 남아 시집살이를 겪어야 했다. 시댁은 집성촌이었던 그 동네에서 안집으로 통했다. 제사는 매달 한 번 이상 치렀고, 농사와 집안일은 끝이 없었다. 가정부처럼 일을 도맡아 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억척스럽게 버티며 적응했다. 어머니의 예쁜 얼굴은 점차 햇빛에 그을렸고 뽀얀 손은 흙과 버무려져 굳은살이 박혔다. 큰집에서 분가한 이후에도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다. 수십 필지의 땅 중에서 아버지의 몫으로 돌아온 건 단 한 필지도 없었다. 아버지는 제대 후 마을 이장을 맡았는데, 뭐가 그리 바빴는지 집안일과 경제활동은 어머니의 몫이었다. 당시 시골 아주머니들은 집안일과 농사일 뿐 아니라 품앗이 다니는 일, 겨울철 땔감 잘라오는 일들을 했다. 어머니는 품앗이도 두 탕을 뛰었고, 땔감을 머리 위로 두 단 씩 이고 날랐다. 그러던 어느날 도랑을 넘다 허리를 다쳤고 수십 년을 허리와 다리 통증에 시달렸다.

어머니는 딸 둘, 아들 둘을 낳아 기르셨다. 나는 셋째이자 장남이다. 어머니는 장남인 나에 대한 기대가 특별히 컸다. 태몽에 호랑이가 나왔다고 한다. 혼자 험한 숲속을 걷고 있는데 커다란 호랑이가 나타나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산을 내려 올 때까지 지켜주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천주교 신자였고 세레명은 마리아였다. 행여나 태몽의 효험이 사라질까 걱정되어 오랫동안 냉담 기간을 가졌다고 한다. 내가 대학에 다닐 무렵 청주로 이사를 했다. 자식 뒷바라지를 위해 전세를 얻어 하숙을 치렀다.

나는 어머니의 꿈이었다. 국민학교 때는 비록 작은 학교지만 공부를 잘했다. 중학교 때도 학업 우수학생으로 넘버3 안에는 들었다. 3학년때 어깨 골절로 입원을 했었는데, 어머니는 그때부터 학업이 뒤쳐졌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는 청주로 나왔다. 거친 남고생들 사이에서 나는, 공부는 잠재력 정도로 미뤄둔 채 평행봉과 근육질 따위에 더욱 신경을 썼다. 그래도 지방 명문대인 충북대학교에 진학했다. 미련이 남아 있어서 휴학하고 재수에 도전했다. 재수 시기에 놀고 마시며 어울리는 것을 배웠다. 재수에 실패한 후 복학을 했고, 무엇이든 다양한 걸 쌓아보자는 경험 지상주의자가 되었다. 하지만 학생운동권은 이런 나를 적절히 캐취했고, 얼마 후 나는 민족의 자주와 민주주의를 쟁취하겠다는 정의감에 사로잡혔다. 수업과 친목은 사치라 여기며 학생회와 데모활동에 전념했다. 구속과 제적, 군복무, 재입학을 거쳐 10년 만에 대학생활을 마쳤다.

아들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가시덤불 속 또는 낭떨어지의 난간을 뛰어다니는 느낌으로 보였을 것이다. 매 순간 절망이 뒤덮었을 텐데 아들이 잘되길 자라는 희망은 결코 버릴 수 없었다. 아마도 어머니가 다시 성당에 나가게 된 것은 기도가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환경공학과를 졸업한 28살의 아들은 곧바로 환경운동에 뛰어들었다. 전업적 환경운동의 삶을 시작한 아들의 월급은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다. 3년 후 아들은 함께 활동하던 후배와 결혼을 했고, 17평 낡은 전세아파트를 얻어 살림을 차렸다. 해솔과 지솔, 두 아들을 낳았다. 하지만 늘 일이 바빴고 술을 많이 마셨으며 경제적으로 궁핍했다. 어머니는 환경운동을 하는 아들을 보며 채무와 건강, 두 가지 문제가 가장 큰 걱정이었다. 그런데 아들은 어느날 부업이 필요하다며 대출을 받아 베이커리를 차렸다. 3년 만에 정리했고 재정적인 데미지를 크게 입었다. 그러니...

그래도 좋은 점이 생겼다. 학생운동 때와는 달리 환경운동을 하는 아들은 뉴스와 방송에 자주 나왔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훌륭한 일을 한다는 칭찬을 듣게 되었다. 어머니는 ‘그래도 우리 애는 듬직하고 의협심이 있은 편’이라며 위안을 삼는다. 그리고 이제는 새로운 핏줄, 손주들을 바라보며 새로운 희망을 품었다.  

87세의 노모 이젠 잘 걷지도 못하고 잘 듣지도 못한다. 총명하고 의리가 있는 분이다. 평생 할 수 있는 당신의 방법으로 경제활동을 이어왔다. 인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고 주변 사람들과도 친밀하게 지내셨다. 그 힘으로 네 명의 자식들을 키웠다. 하지만 아들은 집 한 채 장만하지 못하고 세입자로 살고 있다. 부모를 지척에 두고도 주에 한번을 찾아뵙지 못한다. 속마음과 달리 상냥하지도 않다. 부모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식들을 위한 생활도 버거운 상황이다. 세월은 야속할 만큼 빠르게 흘러간다. 켜켜이 안타까움만 쌓인다. 

국내 1호 위기관리학 박사를 취득한 염우 대표와 가족들. 사진=풀꿈환경재단/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그래도, 실속 없는 아들은 20명의 상근활동가 함께 일하는 풀꿈환경재단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대학 공부를 시작한 지 35년, 마침내 위기관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50대 중반에 시작한 수영 생활은 이제 16개월을 넘겼다. 나름 명예로운 활동과 전문적 지식과 지속가능한 체력을 겸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들의 큰아들은 복학을 했고 할머니·할아버지 집에서 함께 살피며 자신의 학업과 진로를 모색하고 있다. 아들의 작은아들은 입학을 했고 저명한 물리학자를 꿈꾸며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꼿꼿한 아내는 모종의 자기 구상을 준비하며 맏며느리 답게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을 챙기고 있다.

나의 어머니는 이러한 모습이 결코 빛 좋은 개살구로만 여겨지지 않은 모양이다. 비록 최근이지만 자식과 손주들이 큰 탈 없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좋아지신 것 같다. 몇 가지 상황들로 인해 친척들과 지인들로부터 축하 인사를 종종 받으셨다. 이런 기분과 감정이 설날 세배에서 자작시 낭송으로 표출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부모는 베풀어준 사랑을 돌려받아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식이 나아지는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 행복해지는 것 같다.

지난주에 수도꼭지를 갈아드렸고, 고장난 보청기도 고쳐다 드렸다. 잘했다. 오늘은 아내가 무친 부지깽이나물과 음식 몇 가지를 전해드릴 것이다. 앞으로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어머니 얼굴을 꼭 봐야겠다. 그리고 올봄에도 벚꽃 구경 꼭 시켜드릴 계획이다.

다음은 어머니가 지은 또 한 편의 시 ‘빈 둥지’이다.

"깊은 산 숲속에 예쁜 새 한 쌍이 둥지를 틀었네. 둥지 안에는 새끼 새가 예쁘게 자라고 있지. 새끼 새들은 날개 짓을 해가며 온갖 재롱을 다 부렸지. 어미 새는 감격하여 새끼 새 얼굴에 뽀뽀해 주었지. 그러던 어느 날 새끼 새들은 어미 곁을 떠나 버렸네. 자기들의 보금자리를 찾아 모두 떠나 버렸네. 어미 새는 허전한 마음 달랠 길 없어 둥지로 나왔지. 새끼들이 떠나간 허공을 바라보며 오늘도 어미 새는 둥지를 맴돌고 있을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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