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역사 바로알기]동춘 송준길 선생의 가족사랑
[대전역사 바로알기]동춘 송준길 선생의 가족사랑
③ 동춘 송준길 하
  • 김정곤
  • 승인 2014.09.10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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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춘고택의 별묘와 가묘
▲ 동춘선생이 기거하던 사랑채

▲ 김정곤 한국수자원공사 교육원 교수
[굿모닝충청 김정곤 한국수자원공사 교육원 교수] 송준길은 50세가 되던 1655년에 두 살 연상의 정 씨 부인과 사별한다. 30년 남짓 함께한 세월이었다. 부인을 위한 제문이 있다. 송준길은 후일(1669)에 주과포를 준비, 손자(병원)를 데리고 부인의 묘를 찾는다. 생원시에 합격한 손자의 소식을 알리려는 생각이었다.

50세에 정씨부인과 사별
그는 부인에게 “나는 살아서 기쁨을 누리는데 그대는 죽어서 아무것도 모를 것을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기쁘고 한편으로는 슬프구려. 그대의 영혼이 있다면 내 심정과 같을 것으로 생각하오.”라고 말한다.

송준길은 정 씨 부인이 죽고, 부실 이랑(李娘)을 맞았다. 그러나 21세의 나이로 후사도 없이 요절한다. 송준길이 벼슬로 한성에 있을 때의 일이다. 송준길은 묘비에 “이랑은 나의 부실이다. 국성 이동형의 딸로 나에게 시집와서 자식도 없이 죽었다. 신축(1661)년에 나는 소명을 받고 조정으로 가고, 이랑은 시골집에 있다가 겨우 21세의 나이로 병사하였으니, 나는 그를 매우 가엾게 여겼다.”고 썼다.

송준길은 이랑이 죽고, 다시 34세 연하의 여흥 민 씨를 부실로 들인다. 민 씨와는 10년 여 해로하면서 광림 · 광천 · 광영 등 세 아들을 두었다. 민 씨의 기록은 연보나 일기에도 전하지 않는다. 다만 그의 아들 광림의 묘비에 “선비(先妣)는 여흥 민 씨이니 통덕랑 규의 따님이다.(妣驪興閔氏 通德郞揆之女也)”라는 음기만 있다. 민 씨는 송준길이 죽은 후, 40년을 더 살았다. 송준길의 여인들 중 가장 장수했다.

아들·딸 대부분 단명
송준길은 59세 때, 장남(광식)을 앞세운다. 젊은 나이에 죽은 아들을 묻던 날 송준길은 목 놓아 통곡한다. 송시열의 증언(視其就木 同春臨穴而慟)이다. 송준길은 두 딸을 잃은 후, 딸 둘을 더 두었다. 기록상 이들이 장녀와 차녀이다. 장녀는 나명좌에게 시집가고, 차녀는 민유중에게 시집갔다. 그러나 큰딸은 남편이 일찍 죽자, 따라서 자결했다. 민유중의 아내가 된 둘째딸은 숙종의 장모가 됐다. 딸의 딸(송준길의 외손녀)이 숙종의 계비가 된 것이다. 그러나 둘째딸도 단명했다. 생전에 아들(민진후)의 배필을 정해두고도, 며느리로 들이기 전에 죽었다.

아이들 생각하며 통한의 눈물
송준길은 1672년 12월 2일 아침 8시, 송촌동 자택에서 숨을 거둔다. 영예와 회한으로 점철된 67년의 생을 마감한 것이다. 인간 송준길의 가족사랑은 여느 사람과는 달랐다. 송준길은 말년에 죽음을 예견한 듯 어려서 죽은 아이들의 무덤을 집 뒤로 이장한다.

그리고는 비문을 짓고 묘표를 세웠다. 이른바 ‘학당산 묘표’이다. 아이들을 생각하며 통한의 눈물을 뿌린다. 그 처절한 울부짖음이 가슴을 저리게 한다. 누가 아버지는 눈물이 없다고 했던가? 다만 나타내어 울지 못할 뿐이었다. 여기에 눈물의 사연을 소개하는 것은, 오늘 가족 사랑을 되새겨 보려는 생각에서다. 이제 송준길의 사랑의 절규를 들어보자.

“하늘이시어 애통하고 또 애통합니다.”
“너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을 시종 꼼꼼히 생각해 보니 모두 나의 죄이구나. 옛말에 ‘비록 천수라고는 하지만, 인사가 부른 점도 있다.’라고 하였는데, 이를 생각하면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지니,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이냐. 어쩌면 좋단 말이냐.”

“옛사람의 말처럼 머지않아 지하에서 서로 만날 것이라는 기대로 마음을 위안한다만, 황천에서도 과연 이승에서처럼 가족이 단란하게 즐길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아마도 그렇지 못할 것 같다만, 다시 어쩌겠느냐. 어찌하겠느냐.”

“자식이 ‘화’ 못면한 것은 부모의 죄다”
“정일에게 갑자기 병이 생겨 증상이 몹시 위독하였다. 그런데도 제 어린 동생을 품에 안기게 하고는 어루만지며 바라보고, 또 아비의 갓끈을 잡고 마치 영결하듯 잠시 뒤에 죽었다. 아! 애석하다. 자식이 화를 면하지 못하는 것은 부모의 죄이다.”

“아! 나는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형제도 없는데, 죽을 나이에 또 독자마저 잃었으니, 신세가 처량하고 애통하다. 그러나 죽어서도 앎이 있다면 머지않아 지하에서 서로 모이게 되지 않겠는가. 오직 이것으로 자위할 뿐이다. 아! 슬프도다.”

“네 어머니가 나를 버리고 먼저 간 뒤로 지금까지 거의 10년 동안 항상 슬퍼하였으나, 지금에 와서 보니 죽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너의 어머니가 매우 부럽다. 네가 황천에서 혹 너의 어머니를 뵙거든 부디 나의 이런 심정을 전하기 바란다.”

“하늘을 부르며 통곡하면서 빨리 죽어 아무것도 모르게 되기를 원할 뿐이지만 이도 뜻대로 되지 않는구나. 너의 죽음에 길 가는 사람들도 슬퍼하지 않는 이가 없는데, 하물며 나의 마음이야 어찌 견딜 수 있겠느냐. 하늘이시어! 하늘이시어! 애통하고, 또 애통합니다.” 이것이 한 인간으로서 송준길의 가족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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