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133] 도토리, 임금 수라상에서 야생동물 밥상으로...부여 상금리 상수리나무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133] 도토리, 임금 수라상에서 야생동물 밥상으로...부여 상금리 상수리나무
  • 채원상 기자
  • 승인 2021.09.09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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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글 백인환 기자, 사진 채원상 기자] 선조는 ‘두개의 묵’ 이야기로 유명하다.

하나는 상수리나무와 관련된 도토리묵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바닷물고기 도루묵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20만 일본군이 파죽지세로 한양으로 쳐들어오는 상황에서 선조는 급히 도성을 버리고 개성을 거쳐 평양·의주로 도주했다.

긴 피란길 탓에 배고픔에 시달렸던 선조는 백성들이 먹는 ‘도토리묵’과 ‘생선 묵(목어)’ 맛에 빠져 환궁 뒤에도 음식을 찾았다 한다.

도토리묵은 임금님 수라상에 올라가면서 ‘상수리’가 됐고, 생선 묵은 피란길과 다른 맛에 실망한 나머지 선조가 명명한 ‘은어(銀魚)’라는 말을 회수 당하면서 ‘도루묵’이 됐다.

실제로 수없는 외세 침략과 보릿고개에 시달렸던 우리 민족에게 구황작물 또는 구황음식은 식량안보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감자와 고구마 모두 19세기에 경작이 가능했던 걸 생각하면 탄수화물·단백질·지방이 많은 성분에 저장과 보관, 가공이 우수한 도토리는 신석기시대 유적지와 삼한 시대 토성에 출토될 만큼 우리 민족의 식품으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상수리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잘 자라는 6종의 참나무 중 대표적인 나무이다.

예부터 해발고도가 낮은 마을 주변을 선호하는 상수리나무는 빨리 성장하는 특성으로 도토리를 인가 근처에 파종하여 숲을 만들기도 했다.

서양이나 상수리가 자라는 이웃 일본과 중국이 도토리를 돼지 먹이로 사용할 뿐, 우리는 전 세계 유일하게 도토리를 음식으로 먹는 나라이다.

지금도 상수리나무의 도토리는 우리에게 유용한 자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동물과 해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도토리는 쓴맛의 탄닌 성분을 가지고 있는데, 이 물질이 우리 인체 건강에 매우 유익한 작용을 하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도토리는 웰빙과 다이어트 음식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그러나 도토리가 어디 우리만 먹는 식량이겠는가? 사람이 좋아하는 도토리는 야생동물도 좋아하기 마련이다.

멧돼지가 빈번하게 도시에 출몰하는 것이 근교의 도토리를 싹쓸이한 결과라는 점은 이제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지리산 산골에 방사한 반달곰은 가을부터 겨울 동안 도토리를 주요 먹이로 한다는 점도 인간뿐만 아니라 야생동물에게 도토리는 필수적인 자원이란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도토리 채집을 불법으로 규정하여 관련법에 따라 처벌하거나 도토리의 중요성을 알리는 캠페인을 많이 벌이고 있다.

이제는 산림소유자의 허락없이 길에 떨어진 도토리라도 함부로 줍게 되면 과중한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무엇보다 도토리가 야생동물의 밥상임을 알려주는 캠페인이 보다 효과적인 것 같다.

대전의 한밭수목원 참나무 숲에도 도토리 저금통을 여러 개 설치한 결과, 아이들이 가을부터 떨어지는 도토리를 열심히 주워 담아 저금통은 금세 채워졌다.

이제 가을이다.

부여 상금리 마을 입구에는 임금님 수라상을 기대할 만큼 아름드리 상수리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과거 서낭당과 서낭 숲으로 이뤄진 곳이었으나 현재는 400여 년의 풍상을 버틴 상수리나무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이다.

1980년대 초 태풍에 줄기가 부러져 허리가 휘어진 모습으로도 빼곡히 매달린 도토리를 가볍게 이고 있는 모습이 건강해 보였다.

나무 아래로 포장도로가 지나간다.

추석을 쇠면 상금리 보호수에서 떨어지는 도토리 소리가 도로의 딱딱한 표면에 부딪혀 “따따딱” 하고 늦가을 소나기처럼 들릴 것 같다.

노인만 있고 농사가 끝나면 적막한 농촌에 홀로 남은 상수리나무에게 다른 임무를 줄 필요가 있다.

아이들과 함께 상금리 도토리 저금통을 만들어 도토리 저금을 하는 일부터 말이다.

올 가을부터는 주변의 초등학생과 유치원아들이 참여하고, 명절에 찾아오는 손주들도 떨어지는 도토리로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실천하는 일부터 시작하는 게 어떨까 싶다.

부여군 부여읍 상금리 139-1(마을회관) : 상수리나무 1본 412살(2021년 기준)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청남도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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