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문화와 ‘막걸리’
대학문화와 ‘막걸리’
  • 김현정
  • 승인 2016.04.16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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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정 문학평론가, 세명대 교양과정부 교수

[굿모닝충청 김현정 문학평론가, 세명대 교양과정부 교수] 기나 긴 겨울방학이 지나고 3월이 되면 마음이 설렌다. 겨우내 봄을 준비하고 있던 만물이 소생하여 봄소식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향기 가득한 봄나물과 연초록빛 새잎이 돋기 시작하는 나무들, 매화를 시작으로 진달래, 개나리, 벚꽃, 목련꽃 등에서 봄의 싱그러움을 만끽할 수 있다. 이러한 자연과 더불어 우리를 설레게 하는 것은 대학에 갓 입학한 신입생들의 풋풋한 모습이다.

그들의 한껏 뽐낸 수수한 옷차림, 생기있는 얼굴, 싱그러운 웃음소리 등이 캠퍼스를 가득 메워 우리를 한없이 설레게 한다. 여기저기에서 그들을 환영하는 다채로운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몇몇 대학에서 일어난, ‘막걸리 환영식’ 때문에 많은 논란이 되고 있다. 학과나 동아리에서 ‘액땜’하기 위한 하나의 의식으로 선배들이 신입생들의 머리 위에 막걸리를 들이부어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전북의 한 대학의 학과에서는 2, 3학년의 선배 십여 명과 신입생 27명이 참석한 신입생환영회가 벌어졌는데, 이 행사 과정에서 선배들이 신입생들의 머리에 수십 통의 막걸리를 부은 것이다.
‘개강 열림 굿’이라고 부르는 이 행사는 수능이라는 고된 난관을 뚫고 들어온 신입생들에게 대학 4년 동안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액땜하라고 막걸리를 뿌리는 것이라고 했다.

희망자에 한해서 했다고 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신입생들에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많은 고통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부산의 한 대학의 동아리에서 동아리 창설 기념일을 맞아 선배들이 신입생들에게 막걸리를 뿌린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 동아리도 신입생 중 희망자에 한해 김치와 두부 등이 섞인 막걸리를 머리에 붓기도 하고 대야의 술을 통째로 몸에 뿌렸다고도 한다.
신입생환영회는 대학에 갓 들어온 신입생들에게 즐거움을 통해 소속감을 심어주는 자리여야 하는데, ‘막걸리 환영식’은 이러한 즐거움이 사라진, 엄숙주의만을 강요하는 고통의 자리가 된 것이다.

문득 30여 년 전 대학 시절 신입생환영회가 떠오른다. 문학을 공부하는 스터디그룹이었는데, 캠퍼스가 아닌 야외에서 신입생을 환영하는 행사가 벌어졌다. 고운 모래와 자갈이 깔린 강변에서 선배들과 후배들이 원모양으로 둘러 앉아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그런 다음 대표를 맡은 선배가 코펠에 막걸리를 따라 먼저 마신 뒤 돌아가면서 막걸리를 한 모금씩 마시게 했다.

코펠에 담긴 막걸리를 선·후배가 함께 마시며 자연스럽게 선후배간의 정을 나누게 되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막걸리를 마신 뒤 함께 노래를 부르고 함께 공동체놀이를 하며 공동체의식을 배웠다.
이처럼 ‘막걸리’는 선·후배간의 정과 공동체의식을 갖게 해주는 중요한 매개역할을 했던 것이다.

막걸리가 오래전부터 농민들을 비롯하여 많은 민중들의 갈증과 배고픔을 잊게 해준 순기능으로 작용해왔듯, 대학에서도 ‘막걸리’는 선후배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소속감을 갖게 하는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한 것이다. 이처럼 막걸리는 사람에게 붓거나 뿌려짐의 대상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어우러지게 하는 소중한 대상이었던 것이다.

귀천(歸天)으로 유명한 천상병 시인은 막걸리에 대해 이렇게 예찬한 바 있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밥이나 마찬가지다/ 밥일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더해주는/ 하나님의 은총인 것”(?막걸리?)이라고 말이다. 그에게 막걸리는 “밥”이었고, “즐거움”을 제공해주는 대상이었던 것이다.

막걸리를 대학 신입생들에게 붓거나 뿌리는 ‘막걸리 환영식’은 더 이상 신입생들에게 ‘환영’받을 수 없다. 이 환영식이 대학 4년 동안의 안녕을 기원하고, 액땜하라는 아무리 좋은 취지에서 행해진다고 해도 서민들의 밥이자 즐거움을 제공해주는 ‘막걸리’를 뿌리거나 붓는 것을 신입생들은 엽기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안하고 고통스런 심리 속에서는 옛 선배들이 막걸리를 함께 마시며 선후배간의 정을 느끼고 공동체의식을 배우던 순기능적인 측면이 배태될 수 없다. ‘막걸리’가 우리 조상들의 ‘밥’이었고, 즐거움의 대상이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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