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르신고민 Q&A] 어느 노인의 유언
    [어르신고민 Q&A] 어느 노인의 유언
    • 임춘식
    • 승인 2018.04.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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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춘식前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사)노인의 전화 대표이사

    [굿모닝충청 임춘식 前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사)노인의 전화 대표이사]  Q. 우리 시아버지(76)는 5년 전에 상처하셨는데 외롭다는 이유로 젊은 여자(57)와 살림을 곧 바로 차리셨습니다. 물론 경제력은 있으시지만 자식들 입장에서는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여, 46)

    A. ‘인생은 고해(苦海)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은 쓰라린 고통의 바다와 같다는 말입니다. 아니 아직도 가야할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한 줄은 우리의 인생이 장밋빛이어야 한다는 어떤 노랫말보다 인간에게 더 깊은 위로와 용기와 힘을 주기도 합니다.

    노인은 남몰래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외로워하고 있습니다. 학대를 받고 차별을 당하는 괴로운 상황에 놓여서,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비극을 당해서 눈물을 흘리는 것만은 아닙니다.

    혼자서 흘리는 노인의 눈물은 과거를 향한 축복일 수 있습니다. 청산하지 못한 과거 일들에 대한 나의 감정들을 추스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유를 만끽하는 인생 후반전을 살아 갈 수 있습니다. 또한 노인의 눈물은 현재와 미래를 향한 축복일 수 있습니다.

    지나간 날들도, 앞으로 남은 날들도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인 것을 깨달은 사람은 매 순간이 숭고해 질 것입니다. 더 아름답게 더 소중하게 내 인생을 가꾸고자 하는 결심을 새로이 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외로움이란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며, 고독이란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기 위한 말입니다.. 외로움에 몸서리치기 보다는 고독 속에서 남은 인생을 잘 살아내는 비법을 터득하는 인생의 달인들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노인의 외로움은 당해 보지 않은 사람에게 아무리 얘기해 봐야 알리가 없습니다. 노인의 외로움은 스스로 노년에 이르러 봐야 그 절박함을 알게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앙상한 가로수 아래로 낙엽을 밟아 가는 노인의 모습은 어쩐지 처량하지 아니한가?

    ‘어느 노인의 유언’ 사례를 음미해 봅니다.

    # 80세를 넘겨 산 한 부자 노인이 죽었습니다. 그는 재산도 많아 남부럽지 않게 살았었습니다. 건강도 죽기 전까지 좋았고, 봉사활동도 많이 해서 사회적으로 명망도 어느 정도 받으며 살았습니다.

    자녀도 서넛이나 두었는데, 모두들 여유 있게 살고 사회적 신분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대부분의 유산을 자신의 후취에게 주었습니다. 집에서 기르던 개에게도 상당한 액수의 재산을 남겼습니다. 자녀들에게는 별로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자녀들이 이에 반발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며 그렇게 유언한 노인을 비난하였습니다. “늙은이가 망령이 들었지.” “후처한테 쏙 빠졌던 거야.” “젊은 마누라 마술에 걸려든 거지.” “후취로 들어갈 때부터 꾸민 계략에 걸렸어.” 특히, 기르던 개한테도 막대한 돈을 준 것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하였습니다.

    자식들이 개만도 못하게 되었다'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노인이 70세가 넘어서 아내가 죽고 몇 달이 지나지 않아서 30대의 젊은 여자를 후취로 맞아들일 때에도 사람들은 말이 많았었습니다. 그때 그는 몸이 불편하지도 않았고, 옆에서 간호해 줄 만큼 병고로 시달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입방아를 찧었었습니다. “늙은이가 주책이지, 그 나이에 무슨 재취야.” “아마 기운이 넘쳐나는가 보지?”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젊은 여자를 맞아들여.” “막내딸보다도 더 젊어요, 글쎄.” “재취를 하더라도 분수가 있어야지.” 그러면서, 모두들 젊은 여자가 틀림없이 재산을 노리고 들어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지금 그것이 현실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많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정한 부녀처럼 서로 재미있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10년을 넘게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80세가 넘어 죽은 그의 유서에는 자식들에게 주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너희들은 나와 가장 가까운 나의 자식들이다. 그래서 너희들은 지금까지 오래 동안 내게서 많은 혜택을 받으며 살았고, 현재도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 물론, 가장 많은 유산을 상속받을 자격이 있는 나의 혈육들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아라. 내가 괴로울 때 누가 진실로 위로해 주고, 내가 아플 때 누가 지켜보며 함께 아파했었는가? 울적할 때 마음을 풀어주고, 심심할 때면 함께 놀아준 게 누구였더냐? 너희들은 아느냐? 예쁜 꽃 한 송이가 얼마나 즐겁게 하는가를. 정겨운 노래 한 가락이 어떻게 가슴을 뛰게 하는지를. 정(情)은 외로울 때 그립고, 고마움은 어려울 때 느껴진다.

    그러므로 행복할 때의 친구보다 불행할 때의 이웃이 더욱 감사한 것이다. 병석의 노인에게는 가끔 찾는 친구보다 늘 함께 지내는 이웃이 훨씬 더 고마운 것이다. 한창일 때의 친구들이 재롱을 피우는 귀여운 자식들이라면, 늙어서의 이웃은 내 어린 시절의 부모와 같은 분들이다.

    그러므로 내게 있어서 너희들은 친구라 할 수 있고, 너희들의 젊은 계모와 검둥이는 내게는 부모와 같은 존재들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왜 친자식인 너희들에게보다 나의 젊은 아내와 우리 개에게 대부분의 유산을 물려주었는지를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 노인은 이런 말을 덧붙였다. “젊은 아내가 못된 계모로 살아도 내게는 가장 소중하고 고마운 분이다. 설령 유산을 노리고 들어왔다 하더라도 그가 내게 잘 하는 이상 내게는 그것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내 인생의 가장 괴롭고 힘없고 외로운 마지막 시기를 그래도 살맛이 나게 하고 위안을 받으며 살 수 있게 해 주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어쨌든, 힘없이 외로이 사는 노인에게는 어떻게 해주는 것이 가장 필요하며, 어떤 사람이 진실로 소중한 사람인가를 깨닫게 해 준 ‘어느 노인의 유언’이 우리 모두에게 교훈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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