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와 캘리그라피, 문자로 예술을 만든다
서예와 캘리그라피, 문자로 예술을 만든다
학생기자단과 함께 하는 교실 속 NIE, ‘역사 진로직업 체험’
  • 손경화 역사진로 edu-son 대표
  • 승인 2018.07.1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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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와 캘리그라피. 한국 서예를 대표하는 한석봉의 글씨(국립중앙박물관 소장)와 이슬람의 캘리그라피, 글씨예술가 강병인씨의 책 ‘글씨 하나 피었네’의 표지.

[굿모닝충청 손경화 역사진로 edu-son 대표] 문자가 예술인 세계가 있다. 바로 서예(書藝)와 캘리그라피(Calligraphy)다. 언뜻 달라 보이지만 실상은 한 뿌리다. 글씨를 쓰는 도구가 다를 뿐 글씨를 통해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그림을 그려내듯 표현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원래 캘리그라피는 로마글자의 초서(草書)적 서사 예술이다. 아름다운 서체라는 뜻을 지닌 그리스어 ‘Kalligraphia’에서 유래된 전문적인 핸드 레터링 기술을 의미한다. 캘리그라피의 Calli는 미(美)를 뜻하고, Graphy는 화풍, 서풍, 서법, 기록법의 의미를 갖고 있다.

캘리그라피는 직역하면 '손으로 그린 문자'다. 하지만 단순히 의미전달의 수단이라는 문자의 본질을 떠나 유연하고 동적인 선, 글자 자체의 독특한 번짐, 살짝 스치는 효과, 여백의 균형미 등 순수 조형예술의 관점을 아우른다. 서예를 영어로 번역할 때 캘리그라피라고 하는 까닭이다. 이슬람권에서도 중요한 장르다.

서예나 캘리그래피의 표현은 대부분 손에 의한 자유로운 선의 집합체다. 작가의 생각이나 감정을 담을 수 있고, 표현하는 도구에 따라 다양한 이미지를 그려낼 수 있다. 특히 붓을 이용한 표현은 동적이고, 정적인 표현의 다양성과 함께 작가의 개성에 따라 독창적인 표현을 이뤄낸다.

석봉 한호와 추사 김정희, 서예의 한문 서체들.

글씨 예술의 장르는 활판 인쇄술의 발달에 따라 부침을 겪어 왔다. 효율성 때문이다. 아무래도 사람이 직접 손으로 쓰는 것보다 인쇄를 통한 대량 생산이 여러모로 값이 싼 탓이다. 반대로 목판, 금속활자, 타자기, 컴퓨터 자판의 등장 등 혁신적인 활판 인쇄술의 변화를 겪으면서도 글씨 예술이 여전히 사람들에게 각광을 받는 이유는 조형적 예술성 때문이다. 여전히 타이포그라피(typography)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본질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것은 아름답기 때문이다.

서예나 펜글씨가 한동안 생활 주변에서 자취를 감추더니 최근 손글씨가 다시 주목받고, 자격증 과정을 통해 직업군으로 발전하는 모습도 같은 이유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키보드를 활용한 문자로 의사소통을 하는 시대지만 시간이 갈수록 손으로 직접 쓴 글씨에 매료되고, 감정을 이입한다. 자신의 개성을 살린 POP 글씨나 캘리그라피를 통해 아름답고 개성 넘치는 글자체를 만들고, 자신만의 폰트를 창조하고 있다.

서예와 캘리그라피는 광고 미디어 시장에서 더욱 각광 받고 있다. 21세기 문화적 특징으로 거론되는 감성디자인의 감성적 코드에 잘 들어맞기 때문이다. 단순히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의미와 조형적인 의미를 함께 버무려 표현하기 때문에 즉각적인 메시지 전달뿐만 아니라 대중의 시선을 끌어들이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패션디자이너 이상봉 홍익대 패션대학원장의 한글 프린팅 디자인이다.

예술이 산업의 한 영역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서예와 캘리그라피는 전문 직업군을 형성했다. 서예가나 캘리그라퍼는 전문 종사자의 이름이다.

서예가를 상업적 분류에 넣는 것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겠지만 캘리그라퍼는 붓을 이용해 헤드라인과 타이틀, 로고 등의 글씨를 써서 작품화하는 직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캘리그라퍼는 시각디자이너로 분류되고, 미술대학과 서예학과, 디자인관련 학과의 졸업생들이 진출하고 있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글씨 예술인 현판과 가훈, 도장, 비석, 병풍 등.

캘리그라퍼들의 작업 과정은 여러 단계를 거친다. 우선 제품 및 광고 의뢰를 수주하고, 제품이나 광고의 특성, 의미, 목적 등을 고려해 글씨의 콘셉트를 결정한다. 붓으로 다양한 형태의 글씨를 써본 후 고객과 협의해 최종적인 글씨의 시안을 결정하고, 해당 글씨를 스캔해 컴퓨터그래픽 프로그램을 통해 틀이나 굵기, 간격, 흐름 등을 정리한다. 마지막으로 고객에게 결과물을 전달하고 고객의 요청에 따라 수정한다. 이외에 전각 업무나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서예와 캘리그라피를 글씨 예술의 한 범주로 묶는다면 조선의 명필 석봉 한호(1543~1605)와 금석학의 대가인 추사 김정희 선생(1786~1856)은 한국을 대표하는 캘리그라퍼인 셈이다.

의외로 우리 생활 주변에는 글씨 예술이 많다. 문자의 홍수 속에서 잘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모든 건물에 간판이 달려있듯이 오래된 사찰이나 성곽의 ‘현판’은 의미 있는 글씨 예술이다. 현판은 글씨나 그림을 새겨 문 위나 벽에 다는 나무판이다. 건물의 중앙문 위나 정자나 사당 따위의 처마 아래에 걸어 놓는다. 현판의 글씨체는 건물과 조화를 이뤄 품격을 더하는 역할을 한다. 하나의 작품으로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살고있는 사람들의 행운과 행복을 기원하는 내용이 많다.

죽은 사람의 이름과 행적을 담은 ‘비석’도 중요한 글씨 예술을 품고 있다. 돌에 새긴 글은 세월이 지나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역사적인 가치를 지닌 비석은 사료적 역할을 하는데 당시에 유행했던 서체를 연구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비석에 새겨진 글과 글씨를 연구하는 학문을 금석학이라고 하며 대표적인 학자가 추사 김정희 선생이다.

집 집 마다 하나쯤 갖고있는 ‘병풍’도 글씨 예술의 무대다. 병풍은 여러 겹의 접이식 판에 비단이나 종이로 마감한 뒤 그림이나 글씨 작품을 붙여 세워놓는 가구의 이름이다. 판의 수에 따라 여러 첩의 병풍을 만들 수 있고, 종류와 용도에 따라 형식이 다양하다. ‘삼국사기’에는 신라의 진골과 6두품에 병풍의 수를 제한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중요한 가구 품목의 하나이면서 예술품으로 사랑받았다.

한 집안의 가르침이나 훈육 지침을 적은 ‘가훈’도 글씨 예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붓글씨로 쓴 두 세 문장 속에서 가족의 윤리적 지향점을 알 수 있고, 도덕적인 가치 덕목을 파악할 수 있다. 집안마다 가풍에 맞는 내용을 다양하고, 독특한 글씨체로 써서 가족 구성원들이 언제든 볼 수 있는 곳에 액자로 걸어두는 게 흔한 형태다.

‘도장’이나 ‘낙관’도 글씨 예술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물건이다. 돌이나 나무, 동물의 뿔, 금, 은, 옥, 수정 등 고가의 재료를 이용해 글씨와 문양, 그림을 조각해 넣은 형태다. 개인이나 단체를 증명하기 위해 도장, 인장, 인감, 낙관, 옥새 등을 만들어 사용한 역사는 문자의 탄생보다 더 기원이 오래됐다.

우리 역사 속에서는 ‘하늘의 신’ 환인이 그의 아들 환웅에게 천하를 다스리고 인간 세상을 구하도록 청동검과 청동거울, 청동방울 등 천부인과 3000명의 신하를 주었다는 신화가 있다. 천손사상을 바탕으로 하늘이 증명하는 민족이라는 의미를 담은 ‘천부인(天符印)’이 바로 도장인 셈이다.

이상봉 디자이너는 한글과 단청, 조각보 등 전통문화 콘텐츠를 활용한 패션디자인을 선보여 왔다. 한글 프린팅 티셔츠를 입고 있는 이상봉 디자이너 모습. (사진출처=Lie Sang Bonh)

중국의 진시황도 자신의 명령을 증명하기 위해 황제를 상징하는 옥으로 된 도장을 만들었다. 훗날 황제나 왕의 도장을 ‘옥새’라고 부르게 된 까닭이다.

도장이나 낙관은 좁은 면적에 함축적 의미를 담는 글씨를 새겨 넣었는데 글씨체라기보다는 그림에 가까운 조형미를 보여주며 창의적인 글씨체의 확장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현대인들은 도장이나 낙관보다 사인(signature)을 즐겨 한다. 사인은 저마다 고유한 글씨체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의 산물이면서 그만큼 누구나 글씨 예술과 밀접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반증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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